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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왜 짧은가? (세네카, 천병희

부富

나는 내 재산을 인색하게 지키지도 않을 것이고, 마구 탕진하지도 않을 것이오. 나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다기 보다는 선사받은 것으로 여길 것이오. 나는 받을 만한 사람이 받은 것은 결코 많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오. 나는어떤 것도 남의 평판 때문에 행하지 않을 것이며, 내 양심에 따라 행할 것이오. 내게는 먹고 마시는 목적이 자연의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있지 배를 채우고 비우는 데 있지는 않소. 나는 친구들에게 상냥하고 너그러울 것이며. 간청을 받기 전에 간청을 들어줄 것이오. 언젠가 자연이 목숨을 돌려달라고 요구하거나 또는 이성이 내게 목숨을 버리라고 권한다면, 나는 기꺼이 세상을 떠나날 것이오. 왜 그는 재산을 경멸해야 한다면서도 재산을 갖고 있는가?  왜 그는 삶을 경멸해야 한다면서도 살고 있는가?  그러나 이는 그런 것을 갖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그런 것들이 곁을 떠나게 되면 담담하게 바래다 주지요. 

 

어떤 것들은 그 자체로는 보잘 것 없고, 또 가장 중요한 선에 피해를 주지 않고도 제거될 수 겠지만, 그래도 미덕에서 생겨나는 지속적인 기쁨에 이바지 하지요.  바다를 항해할 때 순풍이 그러하듯, 겨울 혹한에 좋은 날씨와 양지바른 장소가 그러하듯 말이오. 우리가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들도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어떤 것들은 다른 것들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오? 부가 그대와 나에게 똑같은 자리를 차지한다면, 어째서 그대는 나를 비웃는 것이오?  부가 나에게서 사라지더라도 부는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갖고가지 않겠지만, 그대는 부가 그대 곁을 떠나고 나면 어리둥절할 것이며, 버림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겠지요. 부는 나에게서는 어떤 자리를 차지하지만, 그대에게서는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요. 간단히 말해 나는 부의 주인이지만 그대는 부의 노예이지요. 남들이 저마다 제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이 많을지라도, 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베푼다는 것을 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해지요. 그때그때 기분 내키는 대로 흩뿌리는 것이 아니라 ,신중하게 나눠주려면 여러가지 여려움이 따른 법이지요.  이 사람에게는 내가 먼저 공을 세우는 것이고, 저 사람에게는 되갚아 주는 것이지요. 이 사람은 내가 도와주는 것이고, 저 사람은 동정하는 것이지요. 그대는 내가 원칙에 충실하기를 요구하지 마시오.  나는 어느 때보다 까다롭게 나를 만들고, 형성하고, 공양하고 있으니 말이오. 내가 계획했던 만큼 나아가게 되면, 그때는 내 말이 행동과 일치하기를 요구하시오. 내가 악인의 마음에 들지 않는데 이미 성공했다면, 그것은 내가 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증거지요. 나에게 부는 선이 아니오. 부가 선이라면 사람을 선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오. 그러나 악인도 갖고 있는 것은 선일 수 없으므로, 부는 선이라고 할 수 없소.  물론 부를 소유하는 것은 허용되며, 부가 유용하고 인생에 큰 편의를 제공한다는 점은 나도 시인하오.

 

하루하루가 내 뜻대로 되어가고 축하연이 이어진다 해도, 그런 이유로 내가 나를 더 마음에 들어하지는 않을 것이오. 그런 시운이 기울고 바뀌어 여기 저기서 손실과 슬픔과 온갖 사고가 일어나 마음을 뒤흔들고, 한시도 불평없이 지나가지 않는다 해도, 그 때문에 나는 가장 비참한 처지에서도 나를 비침하다고 하지 않을 것이며, 그 때문에 어떤 날을 저주하지는 않을 것이오. 내리막 길을 내려갈 때는 몸을 붙잡아주고 오르막 길을 오를 때는 몸을 밀어주어야 하듯이, 미덕도 어떤 것은 내리막 길을 내려가고, 어떤 것은 오르막 길을 올라야 하오. 의심할 여지 없이 참을성, 용기, 끈기, 그 밖의 여러 가지 어려움에 맞서 운명을 극복하려고 하는 미덕은 위로 오르고, 버티고 몸부림칠 것이오. 우리가 가난할 때는 싸움에 능한 더 용감한 미덕을 사용해야 하고, 부유할 때는 발걸음을 떼어놓을 줄 알고, 제 무게를 지탱할 줄 아는 더 조심스런 미덕들을 사용해야 하오.

 

부는 현인에게는 종노릇을 하지만, 바보에게는 주인 행세를 하지요. 그대들은 하는 일 없이 부를 갖고 놀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지 못하지요. 그대에게는 남의 결점을 찾아내어 누군가를 심판할 여가는 있다고요?

 

스토아 철학(옮긴이 천병희)

 스토아 철학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거대 제국을 건설하면서 도시국가라는 자족적인 활동공간을 빼앗기게 된 개인들이, 새로운 사회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대응 가운데 하나였다. 거대제국과 상대적으로 왜소해지고 몰락한 개인의 불균형을 시정하려면, 인간을 더 중시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첫번째 택한 것이 스토아학파이고 두 번째가 에피쿠로스 학파이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철저한 유물론의 신봉자들로 세계는 원자들의 우연한 결합외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었다. 거기에는 계획도 섭리도 없었다. 죽음은 원자들의 이산일 따름이다.간은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 인간 자력으로 행복, 즉 쾌락을 추구해야 하지만 부동심을 훼손할 정도로 추구해서는 안된다. 에피쿠로스 학파의 우주가 무정부적 이라면, 스토아 학파의 우주는 질서정연하다. 우주 또한 자연은 이성에 의해 지배되며 이성은 신, 운명 또는 섭리와 같은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은 신적인 이성에 따른 것이므로 인간은 꿋꿋하게 참고 견뎌야 한다. 이런 진리를 알고 있는 현인이 추구해야 할 일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 기꺼이 받아들이고, 자연에 맞게 사는 것이다. 그 밖의 외적인 가치들은 중요하지 않다. 외적인 가치를 갖지 못한 현인은 행복하지만, 외적인 가치를 갖춘 왕일지라도 현인이 아니면 행복하지 못하다. 스토아철학은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그것을 개인의 자아완성으로, 또 개인의 자아완성은 도덕적 수양으로 한정하고 있다.  그리고 행복과 불행은 현실 자체보다는 현실에 대한 태도가 결정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스토아 철학은 퀴프로스 섬 키티온시 출신인 제논에 의해 창시 되었다. 기원전 311년 경 아테네로 건너가 학교 부지를 살 제원이 없어서 채색주랑 ( Stoa Poikile: 아테네 공공건물)에서 강의한 까닭에, 그 제자들은 스토아 학파라고 불렀다. 3세기에 스토아 학파는 점점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으나, 그들의 이론은 신플라톤 주의와 기독교 교부들에 의해 일부 수용됨으로써 많은 서양의 사상가의 삶과 사상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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