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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왜 짧은가? (세네카, 천병희

쾌락과 미덕

미덕이 쾌락을 준다면 쾌락은 미덕의 부수 현상일 뿐이지요. 미덕이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추구하다가 쾌락도 얻게 되는 것이지요. 마치 파종을 위해 갈아놓은 들판에 꽃들도 함께 자라지만 씨뿌리는 사람의 의도는 다른 데 있고, 꽃은 덤이지요. 그것이 즐겁게 해주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들기 때문에 즐거운 것이지요. 무엇 때문에 미덕을 추구하느냐고 물으면, 그것은 잘못된 질문이지요. 내가 미덕에서 무엇을 바라느냐고 묻는 것인가요?  미덕 자체지요.  미덕은 더 나은 것을 갖고 있지 않고, 미덕 그 자체가 상賞이기 때문이지요.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요? 무엇보다도 오만,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 다른 사람위로 잔뜩 부풀어 오른 거드름, 자기 것들에 대한 지각 없고 맹목적인 편애, 축 늘어진 사치,  사소하고 유치한 이유에서 기고만장 하는 것, 수다, 남을 모욕하기 좋아하는 교만, 태만, 마음의 무기력은 나쁜 종류의 쾌락을 유발하지요.

 

미덕은 이 모든 것을 몰아내고, 주의를 주고, 쾌락을 주기 전에 평가를 하지요. 미덕은 그것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절제하는 것을 좋아하지요. 그대는 쾌락을 즐기지만, 나는 이용한다오. 쾌락의 지배를 받으면서 어찌 노고, 위험, 가난, 인간의 삶을 맴도는 위협 등에 맞설 수 있겠소? 미덕을 맨 선두에 서게 하고, 미덕의 깃발을 들게 하시오. 우리는 쾌락의 주인 노릇을 하며 쾌락을 조절할 것이오. 쾌락을 쫓는 자들은 결국 곤경에 처하게 되고, 잡힌 것들이 그들을 잡게 되지요. 쾌락이 다양하고 많아 보여 행복하다고 부르짖는 자일수록, 오히려 여러가지 의미에서 노예로 전락하고 말지요. 쾌락을 쫓는 자도 모든 것을 뒤로 미루면서 자유를 바치지요. 그는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쾌락에게 자신을 파는 셈이지요.

 

자유란 자기보다 더 값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 때에만 완전해지지요. 자발적으로 따르느니 차라리 끌려가겠다면 미친 짓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무엇이 없다거나 가혹한 일을 당했다고 해서 괴로워하거나, 또한 나쁜 자들과 선한 자들에게 똑같이 일어나는 일들 이를테면 질병, 죽음, 재난 등 인생의 걸림돌이 되는 일을 당했다고 해서 호들갑을 떨거나 불쾌하게 여긴다면, 이 역시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고, 제 처지를 모르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우주의 법칙에 따라 참아야 하는 것은 의연하게 참아야 하오. 행복하게 사는데 미덕이면 충분한가요?  모든 소원을 초월한 자에게 무엇이 부족하겠어요? 자기의 모든 것을 자기안에 갖고 있는 사람에게 그 밖에 무엇이 더 필요하겠어요?  인간으로서의 모든 사슬을 풀기까지 아직 인생과 더 싸워야 하오? 그래서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이지요?  더러는 매여있고, 더러는 묶여있고 또 더러는 꽁꽁 묶여있지만, 아직은 자유롭지 못하지만, 자유로운 것이나 다름없지요그대는 내가 가장 탁월한 자와 동등해지기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사악한 자보다 더 낫기를 요구 하시오. 매일매일 내 악덕 가운데 어떤 것을 제거하고, 내 과오를 자책하는 것으로도 내게는 충분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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