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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왜 짧은가? (세네카, 천병희

사는 법을 배우는 일

분주한 자는 웅변이든 예술이든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어요. 산만한 정신은 아무것도 깊숙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모든 것을 마치 억지로 집어넣은 양 도로 토해내기 때문이지요. 분주한 자들이야 말로 사는 것에 가장 관심이 적지요. 사는 것처럼 배우기 어려운 일도 없지요. 사는 것을 배우는 데에는 평생이 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죽는 것을 배우는 데도 평생이 걸린다는 것이오. 자신의 인생을 사람들에게 많이 빼앗긴 자에게는 주어진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겠지요큰 성공에 무겁게 짓눌린 자들 대부분은 정말 못살겠다고 가끔 외치는 것을 들을 수 있을 것이오. 그야 못 살 수밖에 없지요. 자신을 위해 그대를 부르는 자들은 그대에게서 그대를 앗아가는 데 어찌살 수 있겠어요? 저 피의자들은 얼마나 많은 날들을 그대에게서 빼앗아 갔는지요?

 

만일 지나간 세월을 셀 수 있듯이 다가올 세월도 일일이 셀 수 있다면, 자신의 세월이 얼마남지 않은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얼마나 두려움에 떨 것이며, 그 세월을 얼마나 아껴 쓸까요?  아무리 적은 것이라 하더라도 양이 정해져 있다면, 절약하려하지요. 그러나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것은 더 신중하게 관리해야 하오. 아무도 그대에게 세월을 되찾아주지는 않지요. 인생은 처음 시작한 그대로 흘러갈 것이고, 진로를 되돌리거나 멈추지 않을 것이오. 인생은 소란도 피우지 않고, 자신의 속도를 상기시키지도 않은 채 소리 없이 흘러갈 것이오. 인생은 첫날 출발한 그대로 계속 달릴 것이며, 어디서도 방향을 틀거나 머물지 않는다오. 하지만 그대는 분주하고 인생은 달려가고 있소 . 그 사이 죽음이 다가오면, 그대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죽음을 위해 시간을 내야 할 것이오.

 

세상에 자신의 선경지명을 자랑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짓이 또 있을까요? 그들은 먼 미래를 내다보며 계획을 세우지만. 그것은 인생에서 가장 큰 손실은 뒤로 미루는 것이지요. 뒤로 미루는 것은 다가오는 족족 하루하루를 앗아가고, 멀리 있는 것을 약속하며 현재를 낚어채 가지요. 기대야말로 내일에 매달리다가 오늘을 놓쳐버리게 하니 인생의 가장 큰 장애물이지요.  그대는 운명의 여신의 수중에 있는 것을 탐내다가 그대의 수중에 있는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오그대는 무엇을 원하며 어디로 향하고 있지요? 분주한 자들에게 가장 좋은 날이 맨 먼저 도망가지요. 그들은 아무 준비도 없이 무장도 하지 않은 채 노년을 맞으니까요. 그들은 아무런 대비도 없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노년이 되어 버렸으니 노년이 날마다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지요. 여행자가 대화하거나, 독서하거나 골똘하게 무엇을 생각하다가 어느새 목적지에 와 있는 것을 발견하듯이, 자나깨나 똑같은 속도로 계속되는 더없이 빠른 인생여정도 분주한 자들은 그 끝 무렵에야 알차리게 될 것이오.

 

인생은 과거, 현재, 미래의 세 시기로 나누지요. 그중 현재는 짧고, 미래는 불확실하며, 과거는 확실해요. 왜냐하면 과거에 대해서는 운명도 힘을 잃었고, 과거는 어느 누구의 자의(恣意 :형태분석 ) 에도 종속될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분주한 자들은 이 부분을 놓치고 있어요. 과거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이미 봉헌된 신성한 부분이며, 인간에게 닥칠 수 있는 모든 우연을 초월하여 운명의지배에서 벗어나 있지요. 과거는 궁핍에도 두려움에도 질병의 엄습에도 동요하지 않지요. 과거는 방해받을 수도 빼앗길 수도 없지요. 과거는 지속적이고 근심 걱정 없는 재산이지요. 현재의 날들은 하루씩 다가오고, 그 하루는 순간순간 다가오지요. 그러나 과거의 날들은 그대가 명령하기만 하면 모두 한꺼번에 다가와서 마음대로 관찰하고 붙잡도록 내버려둘 것이오. 하지만 분주한 자들은 그럴 시간이 없지요.  아무리 많이 쏟아 부어도 그것을 받아서 간직할 그릇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듯이 시간이 아무리 많이 주어져도 머물 곳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현재의 삶은 매우 짧지요. 현재는 언제나 움직이고 급히 흘러가기 때문이지요. 창공이나 또는 쉬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결코 한곳에 머물지 않는 천체들과 마찬가지로 머무는 것을 허용하지 않지요. 분주한 자들은 너무나 짧아 잡을 수 없는 현재 시간하고만 관계가 있으니, 여러 가지 일로 마음이 산만한 그들에게서 슬그머니 빠져나가 버리지요. 늙어빠진 노인은 몇해만 보태달라고 기도하고 구걸하며 실제보다 더 젊은 체 하지요. 마침내 어떤 노쇠현상이 죽음을 상기시키며, 겁에 질려 죽어가지요. 마치 인생에서 걸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끌려나가는 것처럼 말이요. 그래서 지금까지 삶을 후회하며 제대로 살아보지 못했으니 이번 병고에서 벗어나면, 여가를 즐기며 살 거라고 기염을 토하지요.

 

모든 분주함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사는 사람들의 인생은 당연히 길지 않겠어요?  그들의 인생은 남에게 맡긴 것도 없고 이리저리 흩어진 것도 없고 우연에 맡겨진 것도 소홀함으로 인해 사라지는 것도 없으며, 선심을 쓰느라 낭비된 것도 없으며 남아도는 것도 없으니 말이오. 그들의 인생은 짧다 해도 충분하고도 남지요. 어떤 자들은 여가중에도 분주하지요. 그들은 시골휴가지에서나, 침상에서나 고독 속에서도 모든 곳에서 벗어났기를 바라겠지만, 사실은 자신에게 짐이 되고 있지요. 그들의 인생은 여가를 즐기며 사는 것이 아니라, 일없이 분주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자신의 여가를 의식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여가를 즐기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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