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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무엇인가(수전 울프, 박세연

객관적인 가치가 정말로 필요한가

삶의 의미에 대한 고민은 추상적인 차원에서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가꿔나가고, 자녀의 인생을 어떻게 이끌어줄지에 대한 의사결정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잠재적 본성을 실현하는 것이 개인의 행복에 기여한다면, 그래서 자기이익을 이루는 요소로 본다면, 어떻게 삶의 의미를 가져다줄 수 있을지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어떤 사람이 본성의 한계를 뛰어넘거나 본성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훌륭한 업적을 이뤄냈다면, 그런 삶을 의미있는 삶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말인가?   나는 스스로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삶의 의미라는 개념이, 객관적으로 가치있는 일에 대한 적극적인 관여로부터 모습을 드러낸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는 무엇이 객관적인 가치를 담고 있는지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주장을 반드시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어떤 것이 객관적인 가치가 있거나 없는지에 대해 판단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 이와 관련해 하이트 교수는 많은 철학자들이 발견하고 싶어하는 객관적인 가치와 같은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객관적인 가치와 같은 것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어떤 활동과 대상에 그런 가치가 포함되어 있는지 결정하는 과정에서 쉽게 오류를 범하고 만다. 삶의 의미를 객관적인 가치와 연결하는 나의 입장은 어떤 사람의 삶이 의미 있는지에 대한 판단에는 본질적으로 위험이 내포되어 있다고 본다. 앞서 우리는 한 사람의 삶을 오로지 시를 쓰거나, 자녀를 키우거나, 금붕어를 돌보거나, 승마에 몰두한  삶으로 묘사했다. 이처럼 특정한 한가지 활동이나 과제에 몰두해 있는 삶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우리는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의 삶에 대해, 보다 단순하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개념을 설명하고 적용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의 삶은 더욱 복잡하고 다양하다.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활동 및 과제중 일부는 도구적인 것들이다. 그런 도구적인 일들은 우리가 다른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준비하게끔 도와준다. 또 다른 일들은 전적으로 즐거움을 위한 것들이다.  반면 도구적 기능이나 즐거움을 목적으로 하는 다양한 일 역시 어느 정도는 독립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다양한 요소로 이뤄진 삶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삶의 의미는 하나의 바구니 속에서 몽땅 들어 있는게 아니다. 다채로운 현실적 삶을 구성하는 모든 활동 및 과제가 삶의 의미에 기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랫동안 자신이 열정을 바친 활동속에 가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강한 성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중요하게 여긴 대부분의 일이 정말로 가치 있다고 믿는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활동이나 과제에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면 충분히 그럴만한 어떤 근거가 그 속에 존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도전 의식을 자극하거나, 대단히 아름답거나, 도덕적으로 중요한 일일 것이다.

 

어떤 활동이 처음에는 별로 가치가 없어 보여도 열정을 쏟는 과정에서 가치있는 다양한 활동들의 그물망을 형성하고 이와 관련된 역량들을 개발하고, 잠재력을 실현해 나가면서 인간적인 관계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확대, 강화해 나갈 수 있다. 농구라는 스포츠가 그 자체로는 그다지 가치 있는 활동이 아니라고 해도 우리는 그 속에서 정말로 많은 것들을 이끌어낼 수 있다. 농구를 하면서 우리는 관련된 기술을 개발하고 인맥을 넓히고 이에 대한 열정과관심을 함께 나눌 수 있다. 어떤 활동에 대한 사소한 관심과 흥미가 탁월함과 창조성 그리고 사회성을 향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우리는 하나의 대상으로부터 시작되는 가치의 연장선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한 사람의 삶에서 특정 활동이나 대상의 가치는 그것을 중심으로 이뤄진 다양한 관계 그리고 그 관계가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다.

 

삶의 의미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객관성'이라는 개념은 우리 모두가 가치 판단에서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제로 삼고 있다. 한 사람이 어떤 대상을 좋아하거나, 그것이 가치있다는 판단을 내린다고 해서 가치가 불쑥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대상을 싫어하거나, 가치가 없다고 판단을 내린다고 해서 가치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한걸음 나아가 한 사회가 특정 대상을 좋아하거나 가치 있다는 판단을 내린다고 해서 가치가 창출되는 것도 아니다. 농구와 시에 대한 사례들은 개인이나 집단이 특정 대상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특별한 가치가 없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의 열정과 관심을 시작으로 새로운 가치들이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나는 다만 삶의 의미에 관한 논의를 이끌어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용어와 개념을 정의하고자 했다. 삶의 의미가 자기이익이나 도덕성과는 다른, 가치있는 삶을 이루는하나의 범주이며 열정적인 마음으로 객관적인 가치를 지닌 대상에 관여할 때 모습을 드러낸다고 주장함으로써, 나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보다 생생한 개념으로 제시하고자 했다. 또한 철학과 대중문화속에서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다양한 개념들과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했다. 그래야만 우리는 열정과 성취감의 원천을 제대로 이해하고, 우리의 도덕적, 가치 평가적 판단을 정확히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어떤 활동이 가치가 있고 어떤 삶에 의미가 있는지 해답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