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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무엇인가(수전 울프, 박세연

가치의 형태

 

엘리트주의에 대한 우려가 어떤 대상이나 활동 속에 객관적인 가치가 있는지를 놓고,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믿음의 위험성을 지적한다면, 이 우려는 보다 철학적인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과 같은 것이 정말로 존재하는지 의문을 던지고 있다.  완전히 자기 중심적이고 오로지 자신의 행복에만 집착하며, 자신의 이익과 무관한 어떤 일도 실현하지 못한다면 그런 삶은 의미가 없고, 나만의 가치가 아닌 나와 무관한 가치에 관여할 때 가치는 모습을 드러낸다. 자녀에게 음식과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고, 배우자가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죽음의 위기에 직면한 동료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면, 왜 자기자신을 위해 음식을 마련하고 스스로를 돌보고 치료하는 일은 가치가 없다는 말인가?  자신을 돌보고 스스의 행복을 추구하는 노력은 분명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있는 일이다. 다만 어떤 삶이 의미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우리가 외적인 관점으로,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 볼 때 유효하다.

 

로스쿨을 갓 졸업한 변호사가 비윤리적 기업을 위해 열정적으로 변호하는 행위를 고귀한 정의실현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다. 이들은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고, 자신의 영웅을 위해 헌신하는 삶이 의미 있다고 믿을 것이다. 밥딜런의 어머니가 아들이 기타치면서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고 한탄하는 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다.  엄청난 문화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톨스토이의 삶을 떠올려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톨스토이는 어쩌면 자신의 삶의 의미를 가져다줄 훌륭한 업적을 세웠다고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런 사례들로부터 다른 사람들이 가치 있다고 인정하는 활동을 정작 스스로는 가치가 없다고 판단을 내리게 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런 가치판단에서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고려할 때 우리는 주체 독립적인 가치판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할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일이 가치 있는 일인지 판단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범할 수 있으며, 우리가 가치있는 일이라고 인정한다고, 그 대상의 가치가 높아지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 가치가 초자연적인 존재라거나 아니면, 존 매키의 표현대로 세상의 구조상의 존재라는 주장을 지지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실 가치에 관한 다양한 관점들은 극단적인 주관적 관점과 극단적인 객관적 관점 사이 어딘가에위치하고 있다. 극단적인 객관적 관점과 극단적인 주관적 관점 사이에 존재하는 관점들도 애매모호하긴 마찬가지다. 어떤 대상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이 그와 같은 존재의 긍정적인 반응이라고 이해할 때 이 관점은 그 자체로는 충분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추가적인 설명과 근거가 더 필요하다. 어떤 대상이나 활동 및 과제에 많은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고 있다면, 그런 느낌을 자극하는 특정한가치가 그 속에 존재할거라고 나는 기대한다. 그 속에 도전의식을 자극하거나  대단히 아름답거나, 도덕적의로 중요한 가치가 포함돼 있을 것으로 본다.

 

수많은 사람들이 별의별 희한한 일들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잔디깍기 기계로 경주를 벌이고, 음식 빨리 먹기, 시합을 하며 TV리얼리티 쇼 프로그램에 열광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일들에 그토록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할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일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구체적인 지침도 못주면서 의미있는 삶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요컨대 어떤 삶이 의미있는 삶인지 판단하는 과정에서 ‘삶의 의미’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정의하는 작업이 왜 중요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