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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낯설다 (티모시 윌슨지음·

자아 이야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주장했다.  ‘ 사람은 먼저 미덕을 행동으로 옮기면서 미덕을 익히고... 공정한 행위를 실천함으로써 공명정대한 존재가 되고, 자제를 실천함으로써 자제심을 발휘하는 존재가 되고, 용기 있는 행동을 수행함으로써 용기 있는 사람이 된다’. 윌리엄 제임스도 그와 비슷한 조언을 내놓았다. ‘ 당신이 품은 그 모든 결심을 바탕으로 행동할 수 있는 첫 기회를 잘 포착하라. 그러면 당신은 감정적 자극이 일어날 때마다 당신이 얻고자 하는 그 버릇이 점점 깊어가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우리의 비의식적인 기질을 바꾸는 첫단계는 우리 행동을 바꾸는 것이다. 

 

행동은 두가지 면에서 무의식에 변화를 꾀할 수 있게 된다. 첫째 사람들 앞에서 논의한 자기지각의 과정에 따라 자신의 행동에서 스스로 편견이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비의식적으로 추론해낼 기회를 부여한다. 둘째, 사람들이 한가지 행동을 실천에 옮기는 횟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 행동이 무의식적이 되고 자동적이 되는 법이다. 그런 행동을 하는데 요구되는 노력이나 의식적인 관심이 더 적어지게 되는 것이다. 추구하는 목표는 의식적인 서사와 비의식적인 마음 상태를 동시에 변화시키는 자기 개선이다. 사람들의의식적인 서사와 그들의 적응무의식에 동시에 변화를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우리가 조금 더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훌륭한 행동을 하라. 그러면 훌륭한 존재가 될 것이다' 라는 전략을 따라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그들을 보살피는 행동을 하다보면, 우리는 스스로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사람들을 보살피는 존재로 보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행동을 바꾸면, 어떻게 해서 감정과 성격이 크게 바뀔 수 있는지를 이해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의 경우는 언제나 내성적 존재라고 생각해 왔다.  나의 비의식적 성향과 기질이 수줍음을 타는 편이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몇년전에는 그에 대한 해답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조금이라도 더 외향적으로 행동하는 것뿐이라는 결정에 이르렀다. 나의 적응무의식은 나도 외향적인 사람이라는 추론을 끌어낼 확률이 높아진다. 이 추론이 결국에는 나의 의식적인 자기 서사의 한 부분을 이룬다. 나의 자아 정의가 변하면 변할수록, 나 자신도 모르게 외향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더 쉬워진다. 무의식에서 저절로 일어나는 자아들은 무의식적인 행동을 낳는다. 음주 관련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의 세계적인 모임인 알코올릭스 어노니머스의 신조 하나는 '음주를 극복할 때까지 음주를 감추도록 노력하라' 이다. 알코올 중독이 다스리기 어려워 보이고 극복하기가 힘들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알코올에 중독된 사람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른다. 그런 경우에는 작은 것부터 이를테면 마치 그 알코올 문제를 잘 다스리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유익하다. 행동상의 작은 변화들이 그 사람의 자기지각에 작은 변화는 그 다음 행동의 변화를 더 쉽게 만든다.

 

만성적으로 우울증으로 보이는 사람을 치료하는 데도 똑같은 전략이 이용될 수 있다. 심리치료사 테렌스 릴은 치료에서 중요한 부분은, 먼저 행동하고 그 다음 감정이 따르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십대 소년과 소녀들을 대상으로 금욕과 임신조절에 대해 교육하는 것도 그런 접근법이다. 십대들의 성적행동을 직접적으로 바꾸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십대들의 자기지각에 변화를 주도록 노력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만약에 십대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공동체에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더 능력이 있고 더 어른스럽게 느낄수 있는 길을 찾는다면, 아마 그들이 위험한 성적행동을 피할 가능성이 더 커질 것이다. 십대들이 자신에 대한 관점을 바꾸도록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폭넓은 간섭을 통하여 사람들의 성격과 자아관을 바꾸는 일 자체가 결코 이룰수 없는 과업처럼 보인다. 실제로 보면 해답은 오히려 간단하다. 먼저 십대들의 행동에 변화를 주는 것이다. 그들이 능력있는 어른처럼 행동하면 된다. 거기에는 사람의 자아관은 그 사람의 행동과 일치를 이루게 되어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미국청소년들의 건전한 발달을 돕는 틴아웃리치라는 프로그램이 취하고 있는 방침이 바로 이런 접근법이다. 십대들이 자원봉사를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다. 병원이나 양로원에서 보조원으로 활동하기도 하고, 동료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자신을 소외되고 쓸모없는 존재로 여겨왔던 십대들이 스스로를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유능한 존재로 보게 되는 것이다. 훌륭한 일을 하라. 그러면 훌륭한 존재가 된다는 원칙은 심리학이 내 놓을수 있는 가장 소종한 교훈중 하나이다. 행동의 변화가 어려울 때가 종종 있다. 그것이 중독을 극복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보상이 따르는 행동을 바꾸는 일일 때에는 특히 더 어렵다. 사람들에게 자신에 대해 조금 덜 생각하고, 그 대신에 자신의 행동을 변화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조언을 내놓는다는 것이 조금 이상하게 비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만족스럽고 역할을 제대로 하는 자기 서사를 다듬어 내 바람직한 패턴의 비의식적 반응을 확고히 만들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다. 최선의 조언은 '실천 하고, 실천하고 또 실천하라'이다.

 

자기 서사를 만족스럽고, 유익하고, 적응성 높은 것으로 만드는 요소는 무엇일까?  가장 분명한 기준은 뭐니뭐니 해도 정확성이다. 자기 서사를 그 자체의 정확성이나 역사적 진실을 바탕으로 판단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상충하는 사회적 힘들이 서로 엇갈리며 작용하는 현대의 삶에서는, 사람들이 특정한 인간관계나 문화적 상황에 맞는 내러티브를 여러개 구성한다. 자아 이야기들은 한 가지 간단한 의미에서 정확해야 한다. 그것들은 그 사람의 비의식적인 목표와 감정, 기질들의 본성을 정확히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그 이야기와 그 사람의 적응무의식 사이에는 어느 정도 조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그대로 자신에 대한 의식적인 인식과 비의식적 동인들이 일치를 보이는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훨씬 더 행복하다.

 

그 사람의 인생에서 중요한 사실들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어야  그 주인공의 내면의 목표와 기질 등을 포착할 수 있다.  비의식적인 목표들을 인식함으로써 사람들은 그 목표들을 더 쉽게 달성하거나,  목표에 더 쉽게 변화를 줄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된다. 적응무의식에 직접적으로 닿는 파이프라인은 그 어디에도 없다. 적응 무의식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전기를 훌륭하게 쓰는 작가가 되어 추론해 내야 하는 대상이다. 사람들은 아직 제대로 동화되지 않는 부정적인 사건들을 설명하기 위해 이야기들을 수정한다그러면서 그 사건을 반추하는 시간을 줄이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에서 그 죽음이 신의 뜻이었다거나, 생명의 자연스런 순환의 한 부분이라는 식으로 의미를 발견한 사람들은 그 상실에서 아무런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빨리 회복한다.  사람들이 반드시 추구해야 하는 신뢰성이라는 기준이 있다.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 자아전기 작가는 자신이 말하는 이야기를 믿어야만 한다. 만약에 우리가 자신의 자아관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이야기와 적응무의식을 동시에 변화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당연히 그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작은 걸음이 큰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자신이 되고자 원하는 그 사람처럼, 행동할 능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