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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낯설다 (티모시 윌슨지음·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하고 있지?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과 감정과 행위의 원인을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코르사코프 증후군'은 기질적 기억상실의 한 형태로, 이 병에 걸리면 새로운 경험을 기억으로 만드는 능력을 잃게 된다. 코르사코프 증후군에 걸리면 당신의 의식이 하나의 영화와 비슷한데, 그 영화는 수백편의 다른 영화에서 찢어낸 장면들로 이어져 있다. 그 장면들은 그 전이나 그 후의 장면이 전혀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 그에게는 앞선 장면들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기 때문에 불연속의 느낌조차 전혀 없다. 그는 새로운 경험 하나하나를 설명할 수 있는 줄거리를 창조해냈다. 자기 주변의 세계를 말하자면 언제나 변하기만 하는 모습과 상황으로 이루어진 꿈과 같다. 최면후 암시가 주어지면, 그 이유를 의식적으로 전혀 자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 암시 대로 행동한다. G.H. 에스타브룩스는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그 사람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변명을 찾고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 변명들이 완전히 거짓일 수도 있는데 정작 그 사람은 그것을 믿는 경향을 보인다'고 주장한다.

 

분할 뇌환자들도 그렇고 최면에 걸린 사람도 그렇고, 모두가 자신의 행동이나 환경을 설명하기 위해 곧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설명이 허구의 결과라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 우리 모두가 그들처럼 설명을 가공해내는 경향을 갖고 있다. 언어로 나타나는 자아는 우리가 특정 행동을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할 때가 자주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매우 그럴싸한 설명을 창조한다는 주장이다. 사람의 행동이 본인의 암묵적 동기와 이 세상에 대한 비의식적인 면에는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비의식이 우리의 행동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까맣게 모른다. 우리 모두는 적응무의식적인 성격에는 관여하지 못하고 있다. 성격만이 행동의 원천으로 유일한 것은 아니다. 사람의 느낌과 판단, 행동은 그때그때 사회적 행동으로부터도 그들의 성격 못지 않은 영향을 받는다.

 

물론 성격과 사회적 환경사이의 구분은 인위적이다. 사회적 상황이 성격 차이를 압도해 버릴 수도 있다. 강도가 권총을 들이대면 '가진 돈 다 내놔'라고 하는 경우가 그렇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매 순간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탐지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엄청난 이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인간존재가 자신의 정신작용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내용의 주장이면, 어떤 것이든' 틀렸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들은 자신에 관한 엄청난 정보에 접근하는 특권을 누린다. 지금 이 순간 그들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내용물과 추억, 관심의 대상이 그런 정보에 속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정신의 내용물일 뿐이다. 결코 정신작용은 아닌 것이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진정한 행위는 내용물이 아니라, 감정과 판단과 행동을 낳는 마음의 작용이다. 정신의 내용물과 정신작용 사이의 구분이 그렇게 명확하지 않다.

 

니스벳과 윌슨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다.

* 인간의 판단과 감정, 생각, 행동중 많은 것은 적응무의식에 의해 생겨난다.

* 사람들이 적응무의식에 의식적으로 접근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의 의식적 자아는 자신이 특정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들을 꾸며낸다.

 

인간의 반응중 어느 정도가 적응무의식의 산물이고, 어느 정도가 의식적인 사고의 산물일까? 우리의 행동중 상당히 많은 것이 적응무의식의 결과인 것은 명백하다. 우리는 어떤 생각끝에 행동이 따르면, 그 행동을 일으킨 것이 그 의식적인 생각이라고 단정한다. 실제로는 제3의 변수인 비의식에서 나온 의도가 의식적 사고와 행동 모두를 낳을 수도 있다. 예컨대 비만인 사람을 본 것이 건강에 조금 더 좋은 음식을 생각하게 한 원인일 수도 있고, 치킨 샌드위치를 주문한 원인일 수도 있다. 의식적인 생각이 그런 행동을 일으키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얼핏 그런 생각이 있어서 행동이 일어났다는 판단도 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착각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의식적인 사고의 인과론적인 역할은 지나치게 높이 평가되어 왔다. 그것은 적응무의식에서 나온 반응에 대한 전후맥락을 잘못파악한 설명에 지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일상의 기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부탁한다고 가정해보라. 당신이 설명을 만들어 내는데 사용할 수 있는 정보 유형이 있다.

 

두루 통하는 인과관계 이론들: 사람들의 반응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는 여러 가지가 있다. 떨어져 있으면 그리워지는 법이다.라든가, 월요일엔 사람들의 기분이 울적해진다는 이론들이 그런 류이다. 만약 사람들이 특정 반응을 즉각적으로 설명할 이론을 갖고 있지 않다면, 그들은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문화적 지식들을 바탕으로 스스로 설명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어떤 사람의 반응과 선행조건 사이의 관계관찰: 사람들은 자신의 반응을 관찰할 수 있고, 그 반응을 일으킨 것이 무엇인지 추론할 수 있다. 어떤 음식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자신의 체내 소화과정을 직접적으로 관찰한 결과 그런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특정 음식을 먹는 것과 알레르기 반응사이의 인과관계를 관찰함으로써 자신의 알레르기를 알아내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에 완벽하게 접근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의 의식적 생각과 느낌과 기억에 대해서는 상당히 우월적인 지식을 누릴 수 있다. 그런 지식을 바탕으로 누구나 자신의 행동에 대한 원인을 유추할 수 있는 것이다.

 

전화번호부를 들추며 아무렇게나 선택한 이방인이 우리의 행동을 보고, 그 행동의 원인을 우리 본인 만큼 알 있다는 말이 어떻게 진실일 수 있을까?  분명히, 우리가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엄청난 양의 ‘내적정보’는 본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정말이지 우리한테는 자신에 대한 정보가 엄청나게 많다. 그러나 이 정보를 바탕으로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는 원인을 정확하게 가려내는 일이 언제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앞에 열거한 정보중에서 이방인은 오직 두루 공유되는 문화이론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상관성에 관한 정보와 독특한 이론들, 사적인 지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장점이 되면서도 장애가 될 수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가진 독특한 정보의 엄청난 양이 오히려 어떤 행동의 원인을 정확히 꼬집어 내는 일을 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문화적 이론에 의존하는 이방인들이 그 사람의 행동을 보고, 그 행위의 배경을 더 잘 분석해낼 수도 있는 일이다.

 

연구원들은 대학생들에게 5주일 동안 매일 자신의 기분을 체크해 달라고 부탁했다. 5주가 끝나는 시점에 대학생들은 자신들의 기분과 예측 변수의 관계가 어느 정도 인지를 판단했다. 예를 들면 수면시간이 일상의 기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지를 학생들에게 적도록 했던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요인이 자신의 기분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자신의 기분이 그랬던 원인을 파악하는 정확도가 그저 그런 수준이었다. 관찰자로 나선 대학생들의 짐작이, 실험참여자 본인들이 자신의 기분을 좌우하는 요소들에 대해 내놓은 짐작 만큼이나 정확했던 것이다.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엄청난 양의 정보, 특이한 이론들과 개인적인 지식, 자신들의 기분과 선행조건들 사이의 상관성의 관찰 등이 참여자 본인의 정확성을 이방인보다 조금도 더 높여주지 못했다.

 

사람들이 자신의 반응의 원인과 예측 요인들을 놓고 추론할 때, 개인적인 생각과 느낌같은, 이방인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정보를 이용한다. 이것보다 조금 덜 명백한 결론은 개인적인 정보는 본인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고, 방해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자신의 기분을 좌우하는 요인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면, 당신은 당신 자신과 당신의 역사에 대한 엄청난 양의 지식에 의존하느니보다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묻는게 낫다. 사람들이 자신의 반응을 놓고 하는 추론도, 그들이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놓고 하는 추론만큼이나 억측이라는 것이다. 중요한 설명이 하나 더 있다. 우리가 내면에 갖고 있는 정보의 양이 오히려 그릇된 확신을 품게 한다는 것이다. 확실성이라는 착각은 어떤 판단을 내릴 때 이용하는 개인적인 정보의 양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우리가 본 것처럼 사람이 제시하는 설명의 정확성은 그들이 개인적으로 동원하는 정보의 양에 따라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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