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혹시 네비게이션을 믿고 그대로 운전하는 편인가? 이전에 여러번 가본적이 있던 길도 네비게이션 없이는 이제 길을 찾느라 나는 진땀을 흘린다. 여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다. 예전에 나는 한번 갔다온 길은 언제든 다시 찾아갈 수 있었다. 과거에 사람들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만 가고자하는 방향도 알 수 있었다. 오랜 시간 일을 하고서 지친 몸으로 퇴근해서 집열쇠를 어딘가에 던져놓고 계속해서 일 생각을 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다른 무언가에 다시 빠져있던 사람은 열쇠를 놓아둔 장소를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저장해 두지 않은 것일 뿐이다. 열쇠를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버리고, 사람들의 이름을 잊어버리는 것은 다행스럽게도 정상적인 일이다. 그러나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모른다는 것은 전형적인 치매증상으로 분류된다.
자신이 누구인지는 아는데, 지금 있는 곳을 모르는 사람도 그다지 좋은 상태는 아니다. 시간적, 공간적, 인적인 위치파악은 인간의 정신적 기본 능력에 속한다. 치매 환자는 정확히 이 순서대로 해당능력이 사라진다. 시간, 장소, 사람 순으로 잊어버리는 것이다. 정신적인 붕괴상태에 처한 사람은 자기자신과 삶에 대해 제어하려는 노력과 지금이라는 상황과의 상관관계를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치매가 있는 사람은 날짜와 시간에 대해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집밖으로 잘 나가지 않고, 주변세계 즉 주변상황과 넓은 세계에 대한 이해력이 점점 떨어지며, 언젠가는 자기자신도 더 이상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에는 사람의 겉모습, 빈껍데기만 남게 된다.
치매환자는 모든 것이, 도대체 무엇에 관한 것인지 더 이상 깨닫지 못한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역시 서서히 해체된다. 과거와 미래에 대한 의식도 지워진다. 치매환자들은 시간적 방향 상실에 시달리는 것 뿐만 아니라 시간감각 자체가 완전히 사라진 채 매 순간을 살아갈 뿐이다. 공간적인 위치파악 능력이 학습과 얼마나 긴밀하게 관계되어 있는지는 런던 택시기사들의 사례에서만 확인 되는 것이 아니다. 인도의 산스크리스트어 학교에서 자란 아이들은 공간적인 위치파악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산스크리스트어의 역사는 3000년이 넘으며 다양한 문헌에 기록되어 있고, 기원전 수백년전에 이미 체계화 되었다. 산스크리스트어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공간에 대한 개념이 8개방위라는 도식으로 각인되어 있다. 지구 중심적인 산스크리스트의 공간 이해는 이보다 일상적인 삶의 다양한 활동까지 꿰뚫고 있다. 산스크리스트어 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에게 8개방위에 대한 지식의 전달이 매우 적극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들에게는 공간에서의 방향과 문화적 의미가 단순전달되는데 그치지 않고, 매일 아침과 저녁기도에 응용되는 것과 같은 일상의 연습을 통해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나는 위치파악이라는 과제를 기계에 맡겨 놓았고, 그 기계는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이면서 이전에는 혼자 수행했던 위치파악과 방향설정이라는 정신적인 과제를 기계에 위탁한 것이다. 훈련을 하는 근육만 성장한다. 우리 뇌도 마찬가지다. 뇌를 집중적으로 사용했을 때 전체 크기가 커지는 것이 아니다. 뇌의 회색질(뉴런)이 정보를 전기자극 형태로 처리한다. 전기자극은 신경섬유를 통해 신경세포에서 다른 신경세포로 전달되는데, 전달받은 신경세포 말단부는 시냅스에 위치해 있다. 사람의 뇌 그러니까 뇌에는 약 1000억개에 이르는 신경세포가 있으며, 각 세포는 다른 신경세포들과 최대 1만개에 이르는 연결부를 가지고 있다. 다시말해 뇌에 있는 이 연결부, 즉 시냅스의 수는 약 1000조개에 이른다. 왜 시냅스가 있는 것일까? 시냅스는 사용여부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한다. 근육은 집중적인 훈련 이후에는 두꺼워지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지만, 뇌는 오랜기간 정신적 훈련을 받은 후에도 근육처럼 불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시냅스는 부하를 받으면 두꺼워지고, 사용하지 않으면 수축되어 결국에는 사멸한다. 뇌는 정적이지 않다. 오히려 지속적으로 작업이 이루어지는 공사현장과도 같다. 변화하는 외부의 자극에 따라 지속적으로 뇌의 정보처리시스템 구조를 적응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정신활동에 따라 당신의 뇌는 계속 발전한다. 그렇게 때문에 당신이 심장이나 신장을 가지고 있는 것과는 달리, 뇌는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뇌는 그 자체로 존재할 뿐이다. 당신을 만들고 있는 것은 육체적인 껍데기가 아니라 당신의 생활과 당신의 경험이며, 이 모든 것은 이미 당신의 두뇌에 저장되어 있다.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라이프니츠는 무한히 작은 수를 무한대로 더하는 인테그럴이라는 계산법을 고안해 냈다. 라이프니츠는 이러한 모든 일을 더하면, 결과적으로 남는 것은 '우리'라는 사람이라고 결론지었다. 이로써 라이프니츠는 뇌가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무의식적인 프로세스 즉, 학습이라는 본성과 우리의 개체정이라는 본성이 진행됨을 밝혀냈다. 당신의 경험 느낌, 생각 그리고 행위는 뇌에 자취를 남긴다. 기억흔적이라는 명칭은 이미 100년 전에 붙여졌다. 신경연결부 시냅스를 통해 전기자극을 보냄으로써, 이 시냅스가 변하면서 자극이 더 잘 전달되는데 이러한 현상은 장기적으로, 자극이 우리의 뇌에 비포장도로를 내는 역할을 한다. 이 비포장도로는 구조적 흔적으로 아직 실체가 아니다. 이 흔적 형성을 '신경가소성'이라 한다. 이를 지칭하는 아주 쉬운 이름은 '학습'이다. 살면서 많이 학습한 사람은 뇌에 많은 흔적이 있으며, 이 흔적은 이 세상에서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 효과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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