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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공부하는 이유 (사이토 다카시

내 인생을 이끌어줄 공부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위기를 맞이한다. 각오했던 것보다 취업이 늦어지기도 하고, 예상치 못하게 회사를 그만두어야 할 상황에 마주치기도 한다. 예상치 못한 위기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좌절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면 불안에 짓눌리고 굳어버려 무감각해져서 현실을 외면하고, 자신의 세계안에 틀어박혀 버리게 된다.  사회를 살아가는 과정이 너무 힘들다 보니 자신의 뜻과 달라도, 만족할 수 없어도, 뭔가 개선해 나가려고 하기보다는 순응하는 쪽을 택한다. 공부는 미래를 내다보는 확고한 안목을 키울수 있게 도와주고 인생의 방향을 잡아준다. 인생의 정답이란 없을지도 모른다.그렇지만 적어도 지금 내가 가는 길이 어떤 길인지, 앞으로 어떤 길로 가야할지 알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사람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노년 이후 삶을 어떻게 살것인가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그만큼 나이가 몇이 되든,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인생 2막을 열어야 할 시기에 사는 의미를 모르겠다며 뒤늦게 방황하는 중년이 많다. 이때 은퇴를 하고 자녀들이 가정을 떠나는 시기라 어쩌면 '내 인생이 대단한 것이 아니었는지 모른다'거나 '이 세상에 진정으로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식의 상실감과 허무감, 외로움을 느끼기 쉽다. 게다가 늙어간다는 것, 막연했던 죽음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는데 대해 실질적인 두려움과 불안도 덮쳐 온다. 특히 정년을 맞은 후의 남성들은 정체성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진다. 그전까지는 자신이 속한 조직과 직위만으로도 존경을 받고 필요한 사람으로 대우 받았는데, 은퇴를 하면 소속이 사라지고 나를 원하는 곳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외로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밖에 없는 인생, 그 자체의 고독이다. 돈이 많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배움의 행위가 가져다 주는 기쁨'을 경험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배움의 기쁨은 삶을 다시 충만하게 채워주기 때문이다. 배울게 아직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 새로운 무언가를 배울 생각에 설레는 사람은 어딘지 모르게 빛이 나게 마련이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에는 아직 배울게 많다는 자세를 갖기란 쉽지 않다. 그동안 살면서 쌓은 경험과 보고들은 것들이 많기 때문에 '이쯤은 나도 알고 있다. 거기에 대해서라면 나도 할 말 있다'라는 식으로 행동한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무언가를 배울 일은 뜸해지기 마련이고, 철학이나 문학, 예술과 가까워지기는 더더욱 힘들다. 하지만 이미 산전수전 겪으면서 인생의 단맛 쓴맛을 다 봤기 때문에, 배움이 주는 순수한 즐거움은 더욱 가치가 있다. 인생에서 남아있는 사간을 공부를 중심으로 살면, 내가 온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 같은 자존감을 얻을 수 있다.

 

죽음이 가까워지고 인생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철학이나 불교에 대해 공부한다면 철학자들의 이야기가 현재의 고민에 대한 답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야말로 공부가 내 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다. 고민과 공부가 함께라는 생각이다.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에 따라 더 공감이 가고, 그 동안 보이지 않았던 의미가 새롭게 찾아지기도 한다. 중년 이후의 삶이라면, 인간의 죽음과 행복, 삶의 의미를 진지하게 탐구하는 인문학과 궁합이 잘 맞는다. 배움의 기쁨을 알면 혼자 남는 고독의 시간도 견딜수 잇게 된다. 현대인은 유난히 고독을 두려워 한다. 그래서 휴재전화나 인터넷을 통해 다른 사람과 쉴새없이 대화룰 주고 받으며, 고독에서 벗어나려 몸부림 친다. 공부에 몰입하는 동안 외로움 을 느낄 새도 없이, 배움이 주는 즐거움에 빠지게 된다. 공부하는 사람으로 살게되면, 나만의 공부에 빠져들수 있는 조용한 시간이 반갑게 느껴진다. 또한 공부는 가장 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효율적인 활동이다. 물질적인 소비로 만족감은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인간의 물질적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에 하나를 손에 넣으면, 곧 바로 또다시 뭔가를 갖고 싶어진다.

 

춘추전국시대 유명한 악사 사광은 앞을 보지 못햇다. 진나라왕 진평공은 사광의 재주를 아껴서 친구처럼 대했다. 하루는 진평공이 이런 말을 했다. “내 나이가 일흔을 넘었으니 배우고 싶어도 너무 늦었구나” 사광이 이렇게 답했다. “ 날이 저물었으면 촛불을 켜면 되지 않겠습니까? 제가 듣건대 소년이 배우는 것은 해 뜰때의 별빛과 같고, 장년에 배우는 것은 한 낮의 햇빛과 같으며, 노년의 배움은 촛불의 밝음과 같다고 했습니다. 촛불이 밝은데 어두움이 어찌 함께 하겠습니까?” 사광의 말대로 어둠속에서 갑자기 켜진 촛불이 한 줄기 희망이 되는 것처럼, 공부는 남은 인생 길을 안내해 주는 고마운 등불이 될 수 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는 정도, 그저 '오늘은 이걸 베웠지' 정도면 된다. 그리고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는 성취감, 새로운 의미를 얻었다는 기쁨을 만끽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