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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에 대하여(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화는 마음속 전쟁이다.

아무도 자신의 화로부터 안전하다고 여겨서는 안된다. 화는 천성이 부드럽고 온화한 사람에게 조차 야만적인 폭력을 끄집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체격 좋고 건강한 사람도 역병에는 당할수 없듯이 화는 침착하지 못한 성격에게나 차분하고 편안한 성격에게나 똑같이 위험하다. 먼저 화를 내지 않아야 하고 화가 나더라도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멈추는 것이며 화에 굴복하지 않아야 한다. 화는  자신에 대한 지나친 과대평가에서 비롯되기에 스스로를 기개가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은  시시하고 좀스럽다.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보다 열등하며, 정신이 고매하고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복수하지 않는다왜냐하면 그가 그것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너보다 약하다면, 그를 한시름 놓게 하라. 만일그가 너보다 강하다면 너 자신이 한시름 놓아라.

 

우리는 데모크리토스의 유익한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마음의 평정은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우리 능력을 벗어난 대부분의 활동을 피함으로써만 얻어질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수많은 거래를 처리하며 부산하게 움직이는 사람은 누군가로 인해, 혹은 어떤 일로 기분이 상하거나 화가 나지 않고 무사히 지나가는 날이 단 하루도 없을 것이다. 뒤죽박죽 산만한 인생을 살아갈 때, 우리는 수많은 장애물을 만나게 되며 따라서 숱한 불만이 생기게 마련이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들은 계획대로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시도를 할 때, 항상 예외없이 운이 따라줄 만큼 운명의 특별한 총애를 받는 사람은 없다. 마음을 고요히 다스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벗어나는 너무 많은 일, 너무 중차대한 일로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리거나 지치게 해서는 안된다.

 

온화한 기후와 풍토가 건강이 안좋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듯이, 마음도 힘을 얻고자 하면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둠으로써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온갖 이유들로 당신에게 그와 같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오만한 사람은 남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말을 신랄하게 쏘아 붙이고, 제멋대로 사는 사람은 남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독살스러운 사람은 그 앙심으로, 공격적인 사람은 툭하면 벌이는 싸움질로,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은 허황됨을 당신의 감정을 상하게 할 것이다. 당신은 의심 많은 자가 공연히 당신 쳐다보는 것을, 고집쟁이가 당신을 이기려고 기를 쓰는 것을, 잘난 체하는 자가 당신을 무시하는 것을 참지 못할 것이다. 솔직하고 마음씨 좋고,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을 당신의 친구로 곁에 있다면 당신의 정신을 건강하게 해줄 것이다. 성격이 본래 까다롭고 격한 사람도 옆에서 달콤한 말을 해주는 사람에게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다정하게 어루만지는 손길에 끝까지 거칠고 난폭하게 구는 동물은 없다. 토론이 입씨름으로 번지려고 할 때 격해지지 않도록 첫 단계에서 제동을 걸어야 한다. 언쟁은 그냥 두면 저절로 커지며, 한 번 빠진 사람은 붙들고 깊은 곳으로 끌고 들어간다. 그러나 싸움의 한복판에서 뒤로 빠지기보다 처음부터 싸움을 삼가는 것이 더 쉽다.

 

화를 잘내는 사람은 부담이 과중한 일은 피하거나, 설사 그런 일을 맡게 된다하더라도 기진맥진 하지 않는 선을 지켜야 한다. 학문을 하더라도 너무 어려운 주제에 매달기보다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는 분야가 좋다. 매력이 있는 노래는 마음을 풀어주고, 눈이 피로할 때 녹색을 바라보면 도움이 된다. 너무 밝은 빛은 우리 눈을 아찔하게 하고, 즐거운 취미는 쇠약해진 정신에 위안을 준다. 육체적 피로에 신경을 써야 한다. 몸이 지치면 우리 내면의 고요하고 온화한 기운이 모두 소진되고 날카로움만 남는다. 피곤한 사람은 싸울 거리를 찾아다닌다는 옛말이 있다. 배고픈 사람, 목마른 사람, 뭔가 불만이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상처가 있으면 누가 스치기만 해도, 아니 스친다는 생각만 해도 아프듯이 마음이 약해지면 사소한 일에 상처를 받는다.

 

모든 것을 보고 듣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설혹 자신이 좀 손해 본 것처럼 느껴져도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두자. 대부분을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간다면, 그만큼 고통도 없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싫은가? 그렇다면 매사에 시시콜콜 파고들지 말라.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 뭐라고들 하는지, 어떤 고약한 소문이 떠도는지, 게다가 비밀스럽게 묻어둔 것까지 굳이 들춰내는 사람은 자기감정을 선동하는 것이다. 더러는 그냥 무시하고, 더러는 웃어넘기고, 그래도 남는 것들에 대해서는 용서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해서 부당한 피해를 입었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개 참아내느냐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근거도 없는 의심으로, 사소한 일을 크게 부풀리면서 스스로 불만거리를 생산해낸다. 화는 종종 우리를 찾아오지만 사실은 우리가 제 발로 그것을 찾아가는 때가 많다.

 

우리가 스스로 화를 불러들이는 일이 없어야 한다. 누군가 어떤 행위를 했을 때, 그가 왜 그런 행위를 했느냐가 아니라, 모두들 그 행위 자채를 문제 삼는다. 우리는 행위자의 의도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우리가 화를 내고 있는 상대의 입장에서 보자. 그러면 우리가 화가 나는 것은 우리 자신에 대한 잘못된 평가 때문임을 알수 있다. 화에 대한 최고의 치유책은 유예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처음 끊어오르는 기세는 누구러지고 마음을 뒤덮었던 어둠은 걷히거나 최소한 더 짙어지지 않게 된다. 일단 화가 밖으로 표출되는 것을 허락 하면, 그 다음부터는 그것이 우리의 주인이 된다. 사악한 행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분노는 감출 수 있고, 속마음과는 전혀 다른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고통을 속으로 삭이는 것도 필요하다. 때로는 네 가족이 죽어가는 동안에도 미소지어라. 이것이 칙이다. 인생이라는게 그만한 대가를 치르고라도 살 가치가 있느냐에 대해서는 차후에 생가해보기로 하자. 그것은 또 다른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