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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에 대하여(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화를 내어 이기는 것은, 결국 지는 것이다.

화를 일으키는 조건에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신이 위해를 당했다는 느낌이다. 나머지 한가지는 자신이 부당하게 그런 일을 당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사안에 대해 부당하다고 할 때, 어떤 사람들 에게는 자신이 그런 일을 당해서는 안되었다는 것이 기준이 되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예상치 못했던 사건인지 아닌지가 기준이 된다. 우리의 바람과 기대에 반해서 일어나는 일들로 인해 매우 언짢아진다. 우리가 가정에서는 아주 사소한 일을 가지고도 짜증을 내게 되고, 친구의 무신경을 잘못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그래서이다. 우리를 화나게 만드는 것은 무지와 오만이다. 악한 사람이 악한 행동을 하는 것이 어떻게 이상한 일인가? 적이 우리를 해치고, 친구들이 우리에게 상처를 주고, 자식이 실수를 하고, 노예가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이 무어 새로울 게 있는가?  우리는 모든 일이 고려할 수 있어야 하고, 매사에 마음을 놓지 않고 경계해야 한다. 인간의 본성이 남을 배신하고, 은혜를 모르고, 욕심스럽고 불경한 마음을 낳는다.

 

당신이 어떤 한 사람의 성격에 대해 판단을 하려 할 때는 인간의 본성을 생각해라.  모든 것이 평화롭다고 느껴질때 미래의 위험요소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만 은신하고 있는 것이다. 뭔가 당신의 감정을 상하게 할 만한 일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라. 처벌은 절대로 과거의 생각에 적용되어서는 안되고, 반드시 미래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것은 화가 아니라, 경고의 의미를 갖는다만일 비뚤어지고 못된 성격을 가진 사람을 하나하나 벌주어야 한다면, 거기서 자유롭게 헤어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복수중에 가장 모욕적인 복수는 상대를 복수할 가치도 없다고 보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복수를 하려다가 사소한 피해를 더욱 가슴깊이 새기게 된다. 위대하고 고귀한 사람은 강아지들이 캥캥 짖어대는 소리에는 관심도 없는 맹수와도 같다. 우리보다 힘센 자가 우리에게 부당한 행동을 한다면 우리는 그저 묵묵히 참는 것이 아니라, 웃는 얼굴로 참아내야 한다. 한 번 자신들의 악행이 성공했다고 믿으면 그 짓을 또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화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 동료와 싸우면 이런저런 식으로 갈등이 생긴다. 윗사람과의 싸움은 미친 짓이고, 부하라면 창피한 일이다. 서로 화를 내면 언쟁을 하게 되고, 갈등이 생긴다. 먼저 물러나는 자가 더 나은 사람이다. 만일 우리의 근육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인다면, 어딘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팔다리가 제멋대로 움직여서 자기가 뛰고자 하는데 걷는 사람은 나이 많은 노인이거나, 몸이 쇠약한 사람이다. 마음이 가장 건강하고 건전하게 움직일 때는 자기 마음대로가 아니라, 우리의 의지에 따라 움직일 때임을 잊지말아야 한다. 마음에서 화를 없애는 방법, 혹은 최소한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 것은 아직 악덕이 미약할 때이다하지만 악덕의 불길이 너무 거세고 뜨거워서 오히려 그것을 가로막는 장애물 앞에서는 더욱 사나워질 뿐이라면, 그 작업은 (상대가 눈치 채지 못하게)은밀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간곡한 부탁에 마음이 움직이고, 어떤 사람은 상대가 유순하면 괴롭히고 학대한다. 어떤 사람은 겁을 주면 잠잠해질 것이고, 어떤 사람은 꾸짖음을 당하면, 또 어떤 사람은 상대가 죄를 고백하고 참회하면, 화가 진정된다. 어떤 사람에게는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잠시 화를 지연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다.

 

화의 폭력성은 그것이 일단 자극을 받아 활동에 나서면, 천천히 조금씩 나아가는 법이 없고, 처음 부터 완전히 무르익어서 걷잡을 수 없이 달음질 친다. 그것은 마음에 자제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어쩔수 없다면 모두 함께 망하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을 마구 몰아낸다. 화는 성공을 거두면 의기양양해지고 좌절되면 미쳐버린다. 화는 '이정도면 충분하지, 이제 그만두자'고 말하지 않는다어떤 민족은 가난함을 타고난 덕에 사치를 모른다. 어떤 민족은 힘든 유목생활을 이어가야 하기에 개으름을 모른다.  어떤 민족은 문명으로부터 격리되어 거칠고, 야만적으로 사는 탓에 배신과 사기, 그 밖에 ( 범죄에 대한 재판이 이루어지는) 광장에서 비롯되는 그 모든 악덕을 모른다. 그러나 화를 모르는 민족은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화를 옹호하는 입장이며, 그것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을 말리고 있다. 그는 화가 미덕을 자극하는 역할을 하기에 그것을 제거하면, 마음이 해이해져 너무 무기력하고 나태해져 큰일을 도모할 수 없게 된다고 말한다. 상대를 파괴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파괴되는 것도 불사하고, 상대를 난파시키기 위해 자신도 그들과 함께 익사해도 어쩔수 없다고 한다.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제멋대로 날뛰는 악마에게 휘둘려 폭풍에 휩쓸린듯 행동하는 사람을 정말 제 정신아라 할 있겠는가?  화가 어떤 때는 혹은 어떤 장소에서는 가끔 유용할 때도 있을거라고, 사람들이 믿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화의 포로가 되는 사람은 결코 힘있는 사람이라 할 수 없으며, 심지어 자유의 몸이라 부를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