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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에 대하여(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화는 두려워할만한 것인가?

어둠이 너무 깊어서 한걸음 떼어놓기도 어려운 사람에게 화를 낸다면 어떻겠는가?  귀가 어두워 명령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낸다면 어떻겠는가?  귀가 어두워 명령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낸다면? 또래와 어울려 철없는 장난을 하며 노느라 정신이 팔려, 할 일을 소홀히 한 아이들에게 화를 낸다면?  늙고, 아프고, 지친 자에게 굳이 화를 내야 한다면?  우리 마음을 채우고 있는 어둠, 어쩔수 없이 저질러지는 잘못 뿐아니라, 곁길로 나가는 것을 오히려 더 좋아하는 인간의 속성은 죽어야 할 운명과 같이 인간이 안고 있는 불리한 조건들이다. 개개인에게 전부 화를 내지 않으려면 당신은 모두를 한꺼번에 용서해야 한다.  인간은 어차피 잘못을 저지르게 될테니까? (용서는 인간의 숙명적 의무이다. )이것들은 인간이 타고난 조건이자 운명이다. 육체의 병 못지 않게 마음에도 온갖 질병이 걸리는 존재, 자신이 가진 재능을 악용하는 데는 분명 느리지도 둔하지도 않은 존재, 서로가 서로에게 악덕의 본보기가 되어주고 있는 그 모든 사람들, 누군가가 앞서간 사람들을 따라서 잘못된 길로 나아가고 있다. 그는 그저 많은 사람들이 걸어갔던 평범한 공공도로를 따라 갔을 뿐이다.

 

데모크리토스는 남들 앞에서 항상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이 진지하게 추구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그에게는 전혀 심각하게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화가 끼어들 자리가 어디 있는가?  세상에 오직 우리가 울어야 할 일이거나 웃어야 할 일들 뿐인데.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라면 자연을 향해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삼림지의 가시나무에 왜 열매가 열리지 않고, 가시 돋친 찔레덤불에 왜 과일이 어울리냐고 성화를 부리는 것은 얼마나 쓸데없는 일인가? 현자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집을 나선다. 나는 오늘도 만나게 될 것이다. 술에 빠져 살고, 탐욕으로 가득하고, 감사할줄 모르고, 야망의 노예가 된 수많은 사람들을’. 그 모든 행동들은 그는 환자를 대하는 친절한 의사의 마음으로 바라볼 것이다. 없어지지 않고 자꾸 생겨나는 악에 맞서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은 악을 근절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우위를 차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반론: 사악한 자들이 우리를 무시하지 못하게 하고, 그들이 두려움을 갖고 물러나게 하기 위해서 화가 필요하다.

 

만약 우리의 화가 남에게 위험이 될만큼 강력하다면, 그것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며 사실 그 때문에 우리는 증오의 대상이 된다. 무시 당하는 것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위험하다. 반면에 우리의 화가 별로 힘이 없다면 오히려 남들에게 경멸당하고, 조롱거리가 될 뿐이다. 어떤 것이 남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고 해서 더 강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야수에게나 무기가 된다. 어리석은 것들은 어리석은 것에 놀란다. 마차의 움직임과 바퀴가 빠르게 회전하는 모습에 놀라 사자는 자기 우리로 되돌아 가고, 코끼리는 돼지 울음소리에 놀란다. 사람들이 화를 두려워 하는 것은 어린아이가 캄캄한 어둠을 무서워하고, 짐승들이 붉은 깃털을 무서워하는 것과 같은 이유다. 그 안에 확신이 있고 견고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다만 공허한 마음에 영향을 미칠 뿐이다.

 

어떤 격정도 훈련으로 완전히 길들이지 못할만큼 격렬하고 제멋대로인 것은 없다. 인간이 자신의 마음에 그 어떤 금지 명령을 내리면 마음은 그것은 지킨다. 그것이 편리해서라든가 혹은 어쩔수 없다고 말하면서 의무를 버리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에는 어떤 변명이나 구실도 있을 수 없다. 스스로 마음만 먹는다면, 자연이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줄 것이다. 마음의 평화보다 더 편안한 것이 있는가? 화를 내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 있는가? 자비보다 마음을 느긋하게 하는 것이 또 있는가? 잔인함보다 마음에 부담을 주는 것이 또 있는가?  정숙함은 그 자체로 한가로우며 정욕보다 더 분주한 것은 없다. 이성으로는 도저히 말을 듣게 할 수 없는 자들에게 공포감을 주는 것도 때로는 필요하다. 그러나 화를 내는 것은 걱정하거나 비탄에 잠기는 것 못지 않게 쓸데없는 일이다. 최고의 레슬링 감독인 피로스는 선수들에게 절대 화를 내면 안된다고 수시로 일렀다고 한다.  화는 기술을 흔들리게 하고 오로지 상대를 해칠 생각에만 몰두하게 한다는 이유에서였다이성은 인내를 권하지만, 화는 복수를 재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