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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지리학 (하름 데 블레이, 유

아프리카에 희망은 있는가? (2)

노예라는 의미의 슬레이브slave는 민족 이름인 슬라브slav에서 나왔다. 이는 무슬림 투르크인들이 노예로 삼은 동유럽인들을 가리킨다. 유럽인들이 서아프리카 등지에서 노예무역을 시작하기 이전에도, 아랍인들은 동아프리카에서 수백만년 동안 노예교역을 하였다. 1700년부터 1810년까지 교역이 이루어진 노예의 수는 1200만에서 2400만을 추산된다. 노예 사냥꾼의 습격이나 그에 뒤따른 전투로 인해 지역 전체가 초토화 되었음은 물론이고, 종족간의 적개심에 불을 붙였다. 아이들은 고아가 되고, 농작물은 추수도 못하고 방치되고 황폐화 되었고, 모든 곳에서 질서는 해체되었다. 노예무역이 중단되고, 우월한 위치를 점했던 유럽인들이 동아프리카에 남은 아랍 노예시장을 폐쇄했을 때 노예무역이 아프리카 사회에 미친 피해는 헤아릴 수 없다. 이를 자행했던 외세는 계속 아프리카에 남아 또 다른 목표를 추구했다. 

 

유럽인들은 노예무역을 개시하기 오래전부터 아프리카의 형편을 살피고 있었고, 노예무역이 끝나고 나서도 오랫동안 점령자로 군림하였다. 포르투칼 선박들이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으로 들어갔고, 네덜란드는 케이프타운에 동인도 무역을 지원하는 공급기지를 세웠고, 영국과 프랑스가 들어왔고, 나중에 벨기에, 독일, 이탈리아가 차례로 도착하여 아프리카 제국을 자기 영토로 선언했다. 이런 활동은 대부분 아프리카 해안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19세기에 들어서도 내륙지역은 탐험가, 선교사, 노예 사냥꾼들과 이따금씩 들어오는 무역상들만이 오가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서로 경쟁하는 식민열강들끼리 갈등을 해소하고, 아프리카를 분활하기 위해 1884년 운명적인 베를린 회의가 소집되었을 때도 아프리카 내륙지역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각국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를 규정하는 경계선이 그어졌지만, 많은 지역에 대해서 현지 주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판단할 충분한 정보가 없는 상태였다. 어떤 곳은 하나의 종족이 서로 다른 구역으로 쪼개졌고, 적대시 하던 집단끼리 하나로 묶이기도 했다. 일부 지역은 계절에 따라 이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동경로가 차단 되어버렸고, 목축민들은 가축떼를 먹일 물과 초지를 하루아침에 빼앗기기도 했다. 식민화는 착취를 의미하며 착취는 공포를 필요로 한다. 테러리즘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한 세기전에

유럽 식민주의자들이 아프리카인들을 공포로 위협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통제를 유지하는 주된 수단은 공포였다. 유럽인들의 목표는 아프리카 천연자원을 착취하는 것이었다. 고무를 채취하고, 상아를 얻기 위해 코끼리를 죽이고, 도로를 내기 위해 토목공사를 벌였다. 식민시대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문화적으로 대단히 다채로운 지리영역이었다. 아프리카 종족영역을 표시한 머독지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프리카 전망은 나아 보이는듯 하였다. 1950년대 아프리카인들의 저항이 거세졌고, 아프리카와 유럽인들이 맞붙었으며, 아프리카의 정치는 부족적 색채를 띠게 되었다. 냉전을 벌이며 경쟁하던 초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소련은 좌파 성향을 보이는 아프리카 집단들을 지원하였고, 아프리카 독립을 지지하던 미국은 소련의 구상을 방해하였다. 냉전 대리전이 휘몰아치면서 수십만 명의 아프리카 민간인들이 전쟁, 굶주림 , 혼란으로 목숨을 잃었다. 냉전중이던 미국은 아프리카 통치자들이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것이 확실하다면, 폭정을 자행하더라도 눈감아 주었다세계화는 국제무역의 장벽을 부수고 상거래를 고무하며, 경제를 부흥시키고, 사회, 문화, 정치 교류를 촉진하는 과정이다. 부유하고 강한 나라에서는 세계화를 열성적으로 지지하고, 그런 특권을 갖지

못한 지역에서는 쉽게 참여하기가 힘들며, 많은 이들이 세계화를 기회가 아닌 위협으로 보고 있다세계화가 전세계적으로 미치는 충격을 분석했을 때, 이 과정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대부분 국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미 비교적 부유하거나 상대적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나라일 경우에는 나름대로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화에 개장하는 것이 분명히 유리한 반면, 무분별한 관세와 기타 무역장벽으로 허약한 경제를 간신히 지탱하는 빈곤한 나라일 경우에는 오히려 더더욱 뒤처지게 된다. 따라서 세계화는 빈곤한 나라와 부유한 나라 사이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더욱 벌려 놓는다. 아프리카에 불완전하게 침투한 세계화는 부패를 더욱 부추기고 연약한 문화와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리더들 역시 실패지만, 국제공동체 역시 아프리카를 저버렸다. 유럽의 과거 식민국가들은 자기들과 거래 중인 국가를 통치하는 독재자들의 비행을 모른척 했다. 무자비한 폭군이라도 우리 편이라면 원칙보다 우선했다. 콩고 북동부의 열대우림, 원자시대의 우라늄, 휴대폰에 쓰이는 재료, 화학연료 시대의 석유에 이르기까지 아프리카는 전세계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보유하고 있다. 빈민들의 취약성, 신식민주의로 인한 좌절, 기독교 신앙과 제국주의 역사의 관련성, 세계화의 공포 등이 아프리카의 이슬람 옹호자들에게 기회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는 세계의 이데올로기 지도를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아프리카인들은 자급농으로든, 상업농으로든 여전히 농사를 지어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상업농의 경우 만약 자유시장에서 불공정 경쟁을 벌이게 되면, 그 결과는 처참하다.

 

미국 같은 다문화국가의 입장에서 아프리카는 또다른 측면으로도 중요하다. 미국은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가진 적이 없지만, 미국에 거주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수를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각국의 인구와 비교하면 여섯 번째로 많다. 사실상 아프리카는 유럽 다음으로 미국의 제2문화적 고향이다. 그러나 아프리카 소수민들이 미국화 하면서 아프리카와 미국내 아프리카계 이주민 사이의 유대가 약해진 것이다. 아프리카는 지난 수천년간 불행을 겪었지만, 그 문화의 역동성과 세계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은 크다. 

 

에필로그

미국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지금, 세계역사는 중대한 전환기에 놓여 있다. 급속한 기후변동, 강대국간의 경쟁, 테러리즘, 대량 살상 무기, 거대한 인구성장, 에너지 부족에 대비한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다. 또한 종교적 근본주의가 떠오르고 있고,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지역과 빈곤하고 힘없는 지역 사이에 불균형이 완강히 버티고 있다.

 

강대국간 경쟁이 지배를 추구하는 인간욕망의 불가피한 귀결이라고 볼 때, 이 경쟁자들 중에서 미국이 승자로 떠오른 것은 전세계에 다행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은 대량 살상무기를 사용할 능력이 있었으며, 자신의 의지를 전세계에 강요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은 탈식민지화와 민주주의를 신봉하면서도 세계 최악의 몇몇 독재자들과 냉전이라는 명분을 공유하였다. 미국이 이슬람 국가의 유전에서 나는 석유와 천연가스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이 지역이 불안해지면 공급이 위협 받게 되며, 석유공급은 지정학적인 취약성을 띠게 된다. 매장력이 가장 큰 유전들은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아랍에미레이트, 쿠웨이트에 몰려있는데 생산량이 줄어들고 있다. 무슬림 세계 바깥에 위치한 비교적 소규모 유전들 또한 급속히 고갈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새로운 유전이 발견되겠지만, 접근하기 힘든 장소이다. 따라서 석유탐사 및 채굴비용은 점점 높아지고 구하기도 어려워질 것으로 추측된다. 에너지가 부족하면 갑작스런 기후변화에 대처하기란, 그보다 훨씬 어렵다. 사실 우리는 이미 에너지 부족에 대한 경고를 체험한 적이 있다. 서유럽에서는 비옥하던 농경지가 황폐해졌고, 곤궁한 농민들이 도시로 몰려들어 질병이 유행하고, 사망률이 치솟았다. 초강대국들은 제국으로서 다른 나라를 정복하든지, 이데올로기를 강요한다든지, 약소국을 전력적으로 갈취한다든지 하는 부정한 짓을 저지르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기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