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질학자들이 현재1만년이 넘게 계속되고 있는 온난한 시기를 홀로세라고 부르지만, 물론 이것이 실제로 하나의 세(世) -신생대 빙하기가 끝난 뒤의 새로운 시기-라는 증거는 아직 없다. 우리가 아는 한 홀로세는 플라이스토세 간빙기중의 하나이다. 호미니드는 대략 수백만년, 인류는 아마도 17만년간 존재해 왔지만, 홀로세에 일어난 인구학적. 문화적 폭발은 전례가 없는 것이었다. 홀로세가 현재의 환경적 특징을 갖추고, 기후도 안정되기 이전에 북아메리카의 최북단에서 최후의 빙상이 대서양을 향해 미끄러져 들어가면서 바다는 더 차가워졌고, 지중해 해수면이 빠르게 높아져 흑해로 범람하였다. 흑해 수면이 하루에 15센티미터씩 상승했다. 7000년 전부터 지구의 환경조건이 오늘날과 비슷해졌다. 약2000년 전부터 쾌적한 시기로 이어지면서 유라시아 고위도지방에 주거지가 확장되고,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 일부 지방까지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3260년전 트레타 북쪽에 있던 오늘날 그리스의 티라라는 화산섬 토바산과 비슷한 폭발을 일으켰다. 지중해 동부의 넓은 지역이 온통 독성이 강한 잿더미로 뒤덮이고, 여러 날 동안 하늘이 검게 물들었으며 지진파로는 인해 바닷물이 뒤집어졌다. 기후대가 극지방을 향해 이동하고 토양이 비옥해졌으며, 동식물이 이동하면서 수천년간 환경을 변화시켰다. 몇몇 사회는 좋은 입지를 차지하는 행운을 잡아 안정과 팽창과 부강을 누렸다. 오늘날 중동에 위치한 일부 초기 국가와 도시들은 강이 말라붙고, 사막이 잠식해 들어오면서 생계기반이 파괴 되었다. 중세 최적기는 동시대에 존재한 두 제국, 로마제국과 중국 한나라에게는 확실히 좋은 시절이었다. 한의 수도였던 장안은 중국의 로마였고, 로마는 지중해의 장안이었다. 실크로드는 동양과 서양 사이에 상품뿐만 아니라, 화려하고 강대한 두 나라의 이야기를 실어날랐다. 최적기의 시기가 지나고, 겨울은 더 추워지고, 5월에 서리가 내리는 등 지난 수세기동 안 보지 못했던 일이 비일비재해졌다. 초가을에 서리가 내리면서 국지적으로 기근이 발생했다.
유럽 일부지역은 계속해서 가뭄이 들었고, 어떤 지역은 파괴적인 홍수가 졌다. 영국의 와인산업은 한랭화로 인해 불과 수십년만에 붕괴했다.14세기로 들어설 무렵 알프스의 빙하가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린란드의 소규모 취락은 오래전에 사라졌고, 아이슬란드도 버려진 땅이 되었다. 갑자기 기록적인 한파가 몰아치다가 타는듯한 여름 더위와 성난 태풍이 닥치는 등 날씨가 극과 극을 오가곤 했다. 자연은 플라이토세에 그토록 자주 일어났던 기후의 역전이 또다시 준비되고 있는듯 했다. 심해지는 추위, 줄어드는 강수량, 혹한의 겨울, 생육기간이 짧아져서 줄어드는 수확량, 바다도 고기를 잡으러 나가기에는 너무 험악해졌다. 게다가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도시에 많이 밀집한 시기에 맞추어 기근이 유럽 전체를 강타했다. 1300년이후의 시기를 재빙기로 규정할 수 있다. 몽골인들은 쾌적한 환경에 힘입어 번성하고 확장하여, 결국 중국에 몽골제국을 세웠으며, 여세를 몰아 서유럽까지 침입하였다.
그 과정에서 몽골 이주민들과 말을 탄 대상들은 임파선종 박테리아의 변종을 옮겨왔으며, 그 매개체인 벼룩은 쥐와 사람들을 타고 그에 앞서 유럽으로 건너왔다. 흑사병이 이미 쇠약해진 유럽을 휩쓸어 인구 절반 혹은 그 이상을 살해했다. 몽골제국 멸망이후 소빙기의 본격적인 충격이 나타났다. 명나라초기의 통치자들은 북부의 밀농사 지대와 중부의 쌀농사 지대가 대운하를 비롯한 여러 수로로 연결되어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리고 있었다. 중국에서 소빙기 최초의 참사는 유럽보다 늦게 일어났지만, 그렇다고 덜 심했던 것은 아니었다. 내륙에 비가 오지 않고 강이 말라붙어 밀 수확량이 급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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