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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E.H. Carr, 김택)

역사가와 그의 사실(1)

세계종말 예언은 다수의 사람들은 전혀 그것을 믿지 않는다.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여 아기를 갖고 자식을 낳아 참으로 헌신적으로  키운다. 사적으로든 공적으로든 다음 세대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한 건강과 교육에 엄청난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새로운  에너지원이 끊임없이 개발되고 있다.  새로운 발명들이 생산의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계종말 같은 것들에  관심이없다.  가까운 장래 세계가 멸망할 것이라는 믿음은 오늘날  그것의 유포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불만에 가득찬 지식집단에만 국한되어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싶다. 영국은 19세기의 화려함과 20세기의 우중충함이, 19세기의 우월함과 20세기의 열등함이 함께 있다. 어떤 시대든 여러가지가 함께 섞여 있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진다. 모든 전망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배제해 버리는 오늘날의 회의주의와 절망의 조류는 엘리트주의의 한 형태  -   위기에 의해서 자신들의 안전과 자신들의 특권을 가장 현저하게 침식 당해온 엘리트 사회집단의 산물,  그리고한동안 세계의 나머지 지역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확실한 지배권을 박탈 당해버린 엘리트 국가들의 산물- 이다.

 

지식인들의 지배적인 경향으로부터 내 자신을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이 어떻게 길을 잘못 들었는지를, 그리고 왜 길을 잘못 들었다고 내가 생각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어쨌든 미래에 대한 보다 건전하고 보다 전망잡힌 전망을 주장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영국의 역사가 액턴은 1896년 10월 보고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지금이야말로 풍부한 지식을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장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기록할 수 있는 더 없는 기회이다. ..  우리는 어떤 정보든지 입수할 수 있고, 어떤 문제든지 해결가능하다.... 과거의 지식은 한 사람 혹은 여러 사람의 정신을 통해서 계승되어 왔고, 그것에 의해서 처리되어 왔으며... 모든 역사적 판단에는  인간과 관점들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 판단은 저 판단과 마찬가지로 옳으며,  따라서 객관적인 역사적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교리 속으로 도피한다. ”

 

우리가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답하려고 할 때 우리의 대답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로든 우리 자신의 시대적 위치를 반영하게 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관해서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가’라는 더욱 폭 넓은 질문에 대한 대답의 일부가 된다. 과학 으로서의 역사를 열렬히 주장하는 실증주의자들은  사실 숭배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사실들은 감각적인 인상과 마찬가지로 외부로부터 관찰자에게 부딪혀 들어오며 또한 그의 의식과는 독립해 있다. 그 수용과정은 수동적이다. 역사는 확인된 사실을 모아놓은 것이다. 역사가는 그것들을 모은 다음 집에 갖고 가서 자기 마음에 드는 방법으로 그것들을 요리하여 내놓는다. 우리는 과거에 관한 사실 모두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하는, 혹은 역사가에 의해서 그렇게 취급되지 않는다고 하는 어려움에 빠진다.  역사의 사실과 과거의 사실이긴 하되  그렇지 않은 사실을 구별해 주는 기준은 무엇인가?  역사적 사실이란  무엇인가? 어떤 역사가를 정확하다는 이유로 칭찬하는 것은,  어떤 건축가를 잘 말린 목재나 적절하게 혼합된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집을 짓는다는 이유로 칭찬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그의 작업의 필요조건이지만 그의 본질적인 기능은 아니다.

 

'모든 수많은 사실들 중에서 극소수의 선택된 사실만이 살아남아 역사의 사실 전부가 되었을까?' 하는 문제를 검토해 볼 생각은 나에게 전혀 없다. 나는 오늘날에 와서까지도 고대사나 중세사가 매력을 끄는 이유중 하나가 그것이 우리에게  모든 사실은 우리가다룰 수 있는 범위 안에 있고,  우리의 처분에 맡겨져 있다고 하는 환상을 가져다주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역사는 분실된 조각들이 많은 거대한 조각그림 맞추기라고 말해져 왔다.  우리의 그림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특정한 견해에 물들어 있었던 그리고 그 견해를 뒷받침해 주는 사실을 보존해야할 가치가 있는 것을 생각하던 사람들이 우리를 대신하여 이미 선택하고 이미 결정한 것일뿐, 우연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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