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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성장 보고서(EBS 제작팀)

아기의 언어습득

놀랍게도 아기들은 엄마 뱃속에서부터 음악소리와 소음, 말소리의 차이를 알아챈다고 한다. 아기가 옹알이를 거쳐 하나의 단어를 말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고,  그 과정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능력들이 요구된다.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능력은 사람의 말소리와 다른 소리를 구분할 줄 아는 것이다말소리를 알아 듣는 아기들은 더 이상 작게 쪼갤 수 없는 언어의 최소단위인 음소도 구분할 줄 안다. 쉽게 말해 자음과 모음을 구별하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일반적으로 잘 구별하지 못하는 영어 자음 r과 l의 차이를 일본 아기들은 구분할 줄 안다. 음소를 구별하는 아기들의 능력은 생후 6개월이 되면 서서히 사라진다. 주위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에 빠르게 적응한다아기가 음소의 미세한 차이를 아무리 잘 감지한다해도 단어와 단어의 경계를 인식하지 못하면, 알아들을 수가 없다. 말을 이해하려면 각 단어를 인식할 줄 알아야 하는데 다행이 아기들은 본능적으로 단어를 구분하는 능력을 가졌다. 아기들은 특정 언어에 집중적으로 노출되는 경우, 어떤 음소들이 어떤 방식으로 조합되어 그 단어의 음절들을 만들어 내는지를 직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후 12개월 미만의 아기들도 언어를 그저 무의미한 소리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의미는 모르더라도 최소한 서로 구별이 되는 단어의 연속으로 들을수 있다는 말이다. 일단 단어를 인식하면, 아기들은 그 단어에 의미를 연결하기 시작한다.

 

다트머스 대학의 라우라 페티토 교수는 ‘사이언스’와의 인터뷰에서 ‘신생아의 옹알이는 뇌의 언어학습센타에서 나오는 신호가 음성화된 것으로 무의미한 소리가 아니라 아기가 언어를 익히는 첫단계다. 라고 했다. 겨우 단어를 구별할 뿐인 아기들은 어떻게 '우유'에 '우유'라는 의미를 '꽃'에 '꽃'이라는 의미를 일치시켜 연결할 수 있게 되는 걸까? 어른 눈에는 우유는 우유이고 꽃은 꽃인 사실이 당연하지만 말을 배우지 못한 아기들에게 생소한 언어와 이미지로 가득한 세상은 혼돈 그 자체일 뿐이다. 어른들이 생전 들어보지 못한 말을 들었을 때그 단어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워하듯,  아기들도 생소한 단어의 의미를 알아내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아기들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들러싸여 있더라도  단어와 그 의미를 성공적으로 연결시키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아기들은 새로운 단어를 들었을 때 어떻게 혼란스러워하지 않고  단어에 그 의미를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일까? 첫 번째 비법은 바로 단어는 사물의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능력이다.  아기에게 이라는 단어는 전체 대상,  즉 컵 전체를 가리키는 명칭일 뿐이다. 이렇게 대상을 단순화시켜 생각하기 때문에 단어를 쉽게 파악하고, 상상을 초월할 만 효율적으로 새로운 단어를 습득할 수 있는 것이다. 두번째 비법은 알고 있는 단어로 비슷한 사물을 일반화 시키는 능력이다자신이 알고 있는 단어의 이미지와 비슷한 상황에 놓이면, 자연스럽게 사물 혹은 상황을 일반화 시키는 것이다.  아기가 수족관 기포를 보고 '콜라'라고 했다. 그러나 아기가 기포가 콜라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기들은 '기포'라는 어를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알고 있는 단어 '콜라'라는 단어로 일반화 한 것이다.

 

세 번째 단어습득 비법은 하나의 사물에는 한가지 이름만 있다고 생각하는 능력이다. 영남대학교 유아교육과 이현진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아기는 자기가 알지 못하는 대상에 새로운 이름을 적용시키기 때문에 굉장히 빠른 속도로 단어를 베워간다.  이를 '상호배타성 제약'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단어를 습득하는 초기단계에서 작동한다.  왜냐하면 하나의 대상에 하나의 이름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실을 아기들은 많은 단어를 습득하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네 번째 단어습득 비법은 단어가 주제에 관련된 사물들을 가리킨다고 생각하는 능력이다. 즉 아기들은 단어를 주제별로 분류할 수 있다. 단어가 같은 범주의 사물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을 '분류학적가정'이라고 한다. 분류학적 가정은 주제에 맞춰 사물을 묶는 성향이 강한 아기들에게 새로운 단어를 제시했을 때 나타난다. 이러한 분류학적 가정은 생득적인 것이라 볼 수 있으며, 단어 학습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기들이 습득하는 단어 수가 처음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처음 한달은 열단어 정도로 천천히 증가하다가 18개월이 되면 50개에 이르면,  그때부터 놀라운 속도로 단어의 수가 늘어난다.  아기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이때부터 6세까지 아기는90분당 한 단어를 습득한다.  생후 18개월 경에 단어폭발이 일어나는 것은 단어과 관련이 있는 좌뇌가 이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억이나 판단 등을 담당하는 뇌의 영역이 이곳 저곳에 퍼져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좌뇌는 우리 뇌의 언어기능의 95%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언어를 담당하는 영역 중에서 단어,  특히 명사의 저장과 재생을 담당하는 부위를 '베르니케 영역'이라고 한다. 베르니케 영역이 없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할 뿐더러 상황에 맞는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여 조리있게 이야기하지 못할 것이다. 베르니케영역은 아기들이 새로운 단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활동량이 늘어나고, 18개월이 되면 왕성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핵심적인 언어기능은 좌뇌가 처리하지만, 감성을 주관하는 우뇌는 말의 운율을 담당한다. 프랑스 언어학자 자크 멜레르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아기들은 좌뇌로는 단어를 더 잘 알아듣고, 우뇌로는 음악 소리를 더 잘 알아 듣는다고 한다. 아기는 어른과 다른 언어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단어 폭발로 아기가 습득하는 단어의 수가 증가하면 아기는 단어를 조합하여 문장을 만든다. 두 단어를 조합하여 문장을 말하는 시기는 생후18개월에서 24개월경이다. 익숙한 것보다 새로운 것에 더 흥미를 보이는 아기들의 특성상, 다른 구조로 이루어진 문장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은 본능적인 행동이다.  아기들은 선천적으로 문장 구조를 파악하는 능력뿐 아니라, 문장을 쉽고 효율적으로 만들수 있는 독창적인 문법규칙도 가지고 태어난다. 아기들이 자발적으로 찾아낸 중요한 것은 맨 앞에 둔다는 문법규칙을 과잉 적용하여 무조건 부정어 ‘안’을 문장 앞에 둔다. 이것은 문법적으로 오류이지만, 덕분에 아기는 혼돈하지 않고 쉽개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된다. 갖가지 문법규칙을 염두에 두지 않는 아기들의 한계가 오히려 아기들의 언어습득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다. 아기들이 독창적인 문법규칙을 이용하여 별 어려움 없이 말을 한다. 이러한 문법규칙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면,아기들은 수많은 문법 규칙을 마스터하기 전까지 말을 하는데 있어 수많은 장애를 느끼고,  결국 좌절해 버리고 말 것이다.

 

아기가 단어를 익히고, 문법규칙을 습득하여 정확한 말을 구사할 때까지 좌뇌가 깊이 관여한다. 특히 언어중추의 핵심인 베로니케 영역과 브로카 영역이 제대로 발달해야 성인처럼 문법적 오류없이 유창하게 말을 할 수 있다. 베로니케 영역과 달리 좌뇌의 앞부분에 위치해 있는 브로카 영역은 우선 말을 생산해 내는 역할을 한다. 베로니카 영역에서 말을 해석하여 단어를 만들어내면,  이 단어들의 정보가 브로카 영역으로 전달되고 브로카영역은 이 정보를 다시 인접해 있는 일차 운동중추, 특히 얼굴, 입술, 턱, 목구멍의 운동을 조절하는 중추로 보내 말이 나오게 한다. 브로카 영역이 담당하는 또 다른 역할은 문법적인 기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