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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물정의 사회학( 노명우 지음)

맥도날드에 대한 명상

화학조미료를 탓하기보다 천연재료로 만들었어도 화학조미료를 투하해 미각을 마비시켜 맛있다고 느끼도록 만들어 내는 게 중요하다. 그게 의미 있는 스타일 변화다.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학자들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하면, 모든 베스트셀러를 마음속 깊이 경멸하는 동료 학자들로부터는 학자의 체면을 구기는 품위없는 짓이라고 외면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용기 있는 사람들은 늘 존재한다. 합리화는 근대의 특징을 낳은 거대한 전환의 과정이다.  합리화는 인간의 행위를 규정하는 원리가 종교나 주술이 아니라, 예측 가능성과 계산 가능성에 의해 지배되는 과정이다.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의 저자 조지 리치는 햄버거 체인점의 테이블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한다.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제각각의 이유로 햄버거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온다.  햄버거 체인의 모든 것은 표준화되어 있다.  점포의 인테리어는 어느 지점에서도 표준에서 어긋나지 않게 통일되어 있고 메뉴도 예측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동일하며, 어느 지점에서 주문하더라도 같은 가격에 같은 품질을 기대할 수 있다.

 

햄버거 속에는 베버가 합리화의 핵심이라 지적했던 표준화를 통한 효율성 높이기와 예측 가능성이라는 모든 요소가 오이 피클과 치즈 처럼 들어있다. 낯선 도시에서 도대체 무엇을 먹어야할지 알 수 없을 때 낯익은 햄버거 프랜차이즈 체인점을 만난다면, 심지어 반갑기까지 하다.  사람들은 맥도날드라면 의외의 제품을 제공 받을 일이 없으리라고 믿기 때문에 편안함을 느낀다. 맥 도날드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현대 사회에서 유일하게 확실성을 보장하는 예측가능한 장소이다. 햄버거를 만드는 모든 요소들은 미리 계산되어 예측가능하게 통제된다. 우리는 맥도날드화 된 곳에서 종업원이 손님을 어떻게 접대할 것인지조차 예측할 수 있다.  이 예측 가능성은 종업원들의 외모, 행동, 사고까지도 예측 가능한 것으로 맥도날드화한 결과이다.  교육 프로그램은 종업원들에게 맥도날드식 태도와 업무처리 방식같은 기업문화를 주입하도록 짜여있다. 

 

맥도날드화는 패스트푸드업 뿐만 아니라 교육, 노동, 의료, 여행, 여가, 다이어트, 정치, 가정 등 사실상 사회의 거의 모든 부부에 영향을 주고 있다. 유통의 선진화를 구실로 내세운 대자본 마트는 전국을 체인망으로 뒤덮고, 골목길의 미세한 틈에까지도 유통의 합리화라는 희소식을 전한다. 어느 체인망이든 표준화된 품질과 예측가능성을 목표로 내세운다.  맥도날드화 된 커피집이 등장하면서, 마담이 단골손님과 한담을 나누던 동네 다방은 사라진다. 모든 것이 표준화 되지 못하고 엿장수 맘대로 였던 어두운 과거는 이제 안녕이다.  칙칙한 다방 대신 뉴욕과 동일한 분위기를 제공하는 스타벅스에선 뉴요커들이 마시는 것과 동일한 커피를 마실 수 있다. 프랜차이즈체인이 장악한 도시의 풍경은 서로가 서로를 복제한 듯 비슷해진다. 가맹점옆 가맹점 또 그옆의 가맹점이 연속으로늘어선 풍경에선 삶의 다채로움이 빚어낸 지역특색이 아니라, 자본 축적과 유동만을 읽어낼 수 있다.

 

세련된 국제수준의 표준화 된 간판과 실내 인테리어 그리고 포장지까지 화려해졌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삶은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다. 체인망이 제공하는 일자리는 고작해야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뿐이다. 합리화 끝에서 만나는 어이없는 비합리성은 피해갈 수 없다. 퇴직금이 전 재산인 전직 회사원은 자녀의 학비와 생계유지, 게다가 노후보장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상황에서 프랜차이즈의 문을 두드린다. 하나하나의 합리성이 모여 비합리성을 연출하는 순간이다. 작은 합리적인 선택이 쌓여 빚어낸 거대한 비합리성 속에서 자본의 지배가 확대되면 우리는 자본의 울타리로부터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는 쇠감옥에 갇힌 꼴이 된다. 자본은 모세혈관을 도시 곳곳에 심어놓기에 바쁘고, 그 모세혈관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가련하게도 마주보고 있는 빵집끼리 서로 경쟁하느라 나란히 붙어있는 서로 다른 편의점 덕택에 마주 보고 있어도 곁에 있어도, 서로 이웃일 수 없는 비합리적인 무한의 생존경쟁을 반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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