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삶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세상살이에 대한 성찰로 이끄는 나지막한 권유를 담으려 한다. 이 책은 개인의 자격으로 자신의 삶과 마주하고, 나누었던 독백의 기록이다. 1%에 속하는 특별한 사람과 그에 속하지 못하는 99%의 평범한 삶으로 갈라지는 양극화의 광풍으로부터 대학도 안전하지 않다. 사회학은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닐 때 존재의 이유가 있다. 만약 사회학이 어떤 한 개인의 삶도 설명할 수 없다면, 혹은 그 연구 대상이 사회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으로부터 완벽하게 유리되어 있다면, 사회학은 학자라는 전문가 집단의 호사스러운 말잔치가 만들어 내는 신기루에 불과할 것이다. 호사가들의 허망한 지식 견주기나 현란한 사회테크닉에 의해 살해당할 지경에 처한 사회학의 그 마지막 비상구를 사회속에 살고 있는 구체적인 사람들의 삶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의 회복에서 찾을 수 있다. 직접적으로 사회에 유용한 그 어떤 것도 생산해 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학자의 존재가 무익하다고 판단되지 않는 이유는 사유의 기능이 학자라는 전문집단에게 위임되어 있기 때 이다. 학자의 전문성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희한한 조어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아니라 보편적 삶에 대한 성찰을 대리할 수 있는 능력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한다.
삶의 평범성이 학문적 보편성 근원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존중한다. 학문의 보편성이란 자연과학의 법칙처럼 역사적으로 변하지 않는 초역사적인 법칙을 의미하지 않는다. 학문의 보편성은 그 사람이 교양독자든, 전문학교수든 혹은 학생이든 상관없이 누구나 노출되어 있고, 공유할수 밖에 없는 삶의 평범성에 있다. 세상은 만만하지 않다. 우리는 살면서 자기 뜻이 이뤄지는 순간보다 좌절하는 순간을 더 많이 경험한다. 때로 세상은 마땅치 않다. 도덕 교과서의 주장과 달리 선함이 항상 대접을 받지 않는다. 사악하다고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사람이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돈까지 거머쥐곤 하는게 세상이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은 절대 유쾌한 정서를 선물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에게 삼통을 내기도 하고, 누군가 정서적 보상의 대상을 찾아내어 그 사람을 욕하고 저주하기도 한다. 안으로 밖으로 심통을 부려도 헛헛함이 사라지지 않으면, 돈 몇푼으로 가능한 소비에 기대려 한다.
한편의 잘 만들어진 영화에서 세상 근심을 벗어나고, 맛있는 음식은 미각세포를 즉각적으로 흥분시키고 옷 한 벌이 황홀경으로 이끈다. 하지만 소비는 풍요를 뜻하는 듯해도 또다른 소비로 이어지는 채워지지 않는 독과 같다. 욕망은 채워질 수 있다는 기대로 포장된 유혹이다. 욕망은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혹은 채워질 것 같은 그 순간 또다른 욕망으로 치환되기 때문에 욕망에 저당 잡힌 인생행로는 끝이 없다. 풍요는 좋은 삶을 누리는 사람에게만 허락된 행복이다. 풍요로운 곳은 좋은 옷, 희귀한 음식이 넘쳐 흐르는 곳이 아니라 좋은 삶이 펼쳐지는 터전이다. 좋은 삶은 특별한 삶이 아니다. 성공하지 못한 사람에게 특별한 삶은 오르지 못할 나무에 불과하다. 풍요로운 사회는 세속적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행복을 꿈꾸는 사람에게 좋은 삶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곳이다. 좋은 삶은 삶의 주인의 오랜 습관으로 만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이다. 현실은 선한 의지만을 가진 사람을 겉으로는 칭찬하지만, 그 사람에게 좋은 삶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권모술수에 능한 사람은 부유한 삶을 살 수는 있어도 좋은 삶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좋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교할해서 는 안되지만 영리할 필요는 있다. 영리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아야만 우리는 좋은 사람을 지키기 위한 방어술을, 그리고 좋은 삶을 훼방놓는 약한 의지의 사람을 제압 할 수 있는 공격술을 모두 터득할 수 있다. 좋는 사람은 그래서 공격과 방어의 기술을 요구한다. 좋은 삶은 공격과 방어의 기술을 능숙히 사용해서 세상과 교류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들이 얻을 수 있다. 각자의 삶에 대해 우리는 더할 나위없이 절실하다. 각자는 이 우주 속에서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에 가장 진지하게 몰입하는 주체이다. 고통, 회의, 기쁨, 사랑, 의심, 기대, 분노, 질투 등등으로 버무려진 삶이라는 맥락에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절실하게 반응한다. 그 절실함은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하도록 만드는 눈에 씐 콩깍지이기도 하다. 누구나 자신의 삶의 경험에 근거해 세상에 대한 해석을 내린다. 절실함이 지니치면 때로는 기억 자체가 왜곡된다. 절실함으로 세상의 이치를 파악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에서 기억하고 싶은 요소만 기억하고, 기억하고 싶지 않는 요소는 걸러낸다. 이 왜곡을 통해 파악된 세상 이치는 그 당사자 이외의 사람들로부터는 공감을 확득하지 못한다. 세상은 아름다운만큼 추하고, 사람들은 선한만큼 악하다.
공통감각을 상실한 애절한 신세타령이 아니라 삶의 보편성에 의한 공명을 지향하는 사회학은 이럴 때 쓸모있는 학문이다. 사회학에 대한 근거없는 ‘ 희망’이나 ‘하면된다’와 같은 사실상 거짓말에 가까운 헛된 기대가 아니라, 철저하게 삶의 리얼리티에 뿌리를 두고 있는 학문이다. 자신의 처지를 공통감각과 연결시키지 못하는 한 자신의 삶에 대한 절실하고 치열한 생각은 팔자타령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비판이란 본래 투덜되지 않으면서도 세상에게 불만을 말할 수 있는 능력이다.
'세상물정의 사회학( 노명우 지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사, 기술 (0) | 2014.09.04 |
---|---|
여론의 흥망성쇠 (0) | 2014.09.02 |
선진국, 군중 (0) | 2014.08.31 |
맥도날드에 대한 명상 (0) | 2014.08.28 |
상식, 럭셔리 (0) | 2014.0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