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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전쟁 (하랄트 벨처 , 윤종석 옮

변화된 현실에서 변화된 인간들

어떤 사태의 전개과정에서 어느 시점이 중대한 시점인지 하나의 결정이 어떤 수준으로부터는 더 이상 철회할 수 없는, 과연 어떤 순간에 재난이 발생하는지 이런 것을 지금 결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스터섬의 사회적 재난이 마지막 나무가 잘렸을 때 시작되지 않듯이 마찬가지로 홀러코스트 역시 아우슈비츠에 최초의 가스실이건립될 때 시작하지 않았다. 사회적 재난들은 잘못된 결정의 방향들이 잡혔던 시점에서 시작한다. 우리가 임의로 1999년, 2000년 등과 같이 끄집어내는 것처럼 사건들이 가리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이다. 즉 인간들이 재난에 대해 발전시키고 있는 망각인데, 사실 인간들이 재난을 직접 당한 것이 아니고 그저 미디어를 통해 지각하고 있는 것이다. 기상현상들도 점점 더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것들은 사람들에게 정성적인 것으로 여기지게 되었고, 주목의 강도가 뉴스가치와 마찬가지로 감소하고 있다. 사람들은 원래 자연과 별로 관계없는 것도 점점 더 자연상태라고 간주하고 있다.

 

'바탕교체' 환경심리학자들은 이런 식으로 부르고 있다. 그러한 환경상태를 자연상태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종의 다양성의 감소를 매우 태연하게 바라보는가? 바탕교체는 물론 우리가 어떻게 위협들과 상실들을 지각하고, 가치평가 하는지 따라서 우리가 무엇을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또 무엇을 그렇게 하지 않는지에 대한 결과들이다. 역사가 일어나는 순간에 인간은 현재를 경험한다. 역사적 사건들은 비로소 그 의미를 사후에 나타낸다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완전히 다른 종류 일이고,  다시말해 그들에게는 그것이 절대적인 죽음이라는 그런 점을 간파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일단 지각하고 있는 것들에 의존한다그 사태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지식은 논리상 동시대인들이 그런 지식을 가질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각각의 시점마다 당시 알았던 것이 무엇인지를 기록하기 위해, 사람들은 어느 정도 자신의 고유한 역사적 지식을 유예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현재의 조건들 아래서 결코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미래를 규정하는 그런 것을 알아내는 것이다.

 

모든 민족적 학살 과정은 아직 아무도 그것이 살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그런 지점에서 시작한다그것은 대다수 주민들이 문제를 느꼈던 바로 그곳에서 시작한다.  사회적 진행과정들은 - 사람들이 서로 얽혀 있는-  형태적으로 매우 복잡한 구조의 변화들에서 오는 것이지 결코 누군가가 A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A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비록 어제 이루어진 행위의 결과들이 오늘날 행위의 조건들이기는 하지만 반대로 오늘날의 행위의 조건들이 반드시 어제 이루어진 행위의 결과들인 것은 아니다. 그 때문에 결과들로부터 반드시 그 조건들로부터 환원시킬 수는 없으며,  특히 결과들로부터 그 조건들에 부과된 사고와 의도들은 결코 환원 시킬 수 없다. 반유대적 조치들은 나치와 전혀 상관없는 그런 사람들로 이루어진 민간단체와 협회 그리고 지역사회 에서도 대체적으로 동의와 지지 아래 관철되었으며, 저항이나 반대도 없이 실행되었다.  나치와 직접 관계없는 사람들조차 인간 간의 교류형식과 관련한 엄청난 가치전환을 의미했던 이 조치들에 대해 나치초기에도 결코 어떠한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리안 인종지배이론을 실제 집행할 때 아주 높은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심라학적으로 볼 때, 전혀 놀랍지 않다. 법률과 조치들 속에 용해된 이 이론 때문에 그동안 사회적으로 차별받거나, 배우지 못한 노동자들도 이론상으로는 유대인 작가나 배우 혹은 사업가들보다 우월감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어떤 사람에게는 점점 악화되있던 반면, 다른 사람에게는 점점 더 좋게 느껴졌다. 유대인들은 화물차에 태워지거나, 무장병력에 이끌려 호송되었다. 당시 현장주민들이 어떻게 반응했느냐와는 상관없이 강제이주는 그 자체가 일반적으로 인식되었고, 그 어떤 이성적인 반박도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박수와 환호했고, 어린 학생들이 소리를 지르고, 조롱하고 비방했다. 당사자들은 현실 지각, 도덕적 태도,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력, 친사회적 태도와 반사회적 태도 등이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한다.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에 의식적으로 그리 많이 동참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유대인 박해는 정상적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젊은 독일인들은 패전직전인 1945년 4월까지도 여전히 좋은 결말을 열어줄지 모르는 최종적 승리와 기록적인 무기를 믿었다.

 

도대체 왜 인간들이 밖에서 볼때는 전혀 이해할 수도 없는, 섬뜩하고 경우에 따라서 심지어 자해이거나, 자기 파괴적인 태도를 결정하는지 이해하고 싶다면, 바탕교체가 결정적인 열쇠이다.  인간폭탄들이 태어난 가정들은 몇십년 전만 하더라도 자식들이 이런 방식으로 목숨을 버리는 것에 대해 감격할 줄은 감히,  생각 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 코란도 자살을 금지하고 있다. 자살테러리스트들의 이미지들은 자기파괴에 대한 사회적 가치전환을 의도적으로 유도하는 과정의 표현이다. 팔레스타인 순교자의 우쭐한 부모들은 자식들의 행위에 대한 광고를 부고가 아닌 결혼식란에 게재한다. 현대 미디어들은 이러한 가치전환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인간폭탄이 태어난 가정은 경제적 후원도 받는데, 실제로 가족 1명당 2만 5천달러까지 받고, 그 밖에 가전제품이나 보석 등의 선물도 제공된다. 이데올로기는 사회적 공간의 이러한 실제적인 변혁에 대해 거의 아무 역할도 수행하지 않는다. 인간들이 그들의 가치들을 변화시키는데 왜냐하면, 그들의 세계가 변화되기 때문이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주민 70%이상이 자살 폭탄테러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했다. 이슬람 근본주의 측면에서 생각할 수 조차 없었던 폭력이 일상화 되고 있듯이, 다른편 즉 공격당한 서구편에서도 이슬람 근본주의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규범들이 변화해 왔다. 사회들이 서로 함께 형성하고 있는 긴장구조들의 한부분에서의 변화들은 이 긴장구조의 다른 부분에서도 변화의 압력을 야기한다.  테러 같은 공격은 우연히 그 공격을 당한 사람들의 죽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테러공격은 커뮤니케이션 행위로서 동시에 무수히 많은 다른 사람들의 안전의식도 함께 변화시킨다. 테러공격은 공격당한 자들에게 안전욕구를 상승시키고, 안전을 위해 자유를 기꺼이 제한 시킬 수도 있다는 자세로 나온다. 감지된 테러주의적 위협이 증가되고 가령 더 큰 테러사건이 터지면, 사람들의 우선순위가 자유에서 안전으로 또 다시 이동한다외부로부터의 위협에 대한 국가의 정상적이고 신중한 반응인 국민감정이 환경난민들의 숫자가 증가하고 거대한 안보문제가 국경에서 야기된다면,  과연 어떻게 변할 것인가? 외부로부터 감지된 위협이나 실제적 위협들이 더욱 심화된 내부 결속감을 강화한다.  테러 위협은 집단의 정체성 형성에 아주 유익하다집단의 정체성은 누가 타인인지에 관한 네가티브적인 확인 없이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위협-반응에서 항상 뒤따르는 정체성 확인의 필요성, 즉 누가 우리 이고, 누가 그들인지에 관해 규정할 필요성이 더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