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유럽연합회원국들의 '역외국경 작전명령을 위한 관리처'라는 기구가 출범했다. 이면에는 유럽연합 바깥쪽 국경선의 감시를 더욱 철저하고 효율적으로 담당하는 대단히 역동적인 조직이 숨겨져 있다. 이 기구의 공식 명칭이 복잡하기 때문에 '프론트엑스'라고 불리며, 프론트엑스는 유럽연합 경찰과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다. 앞으로 기후변화 때문에 상당히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난민들의 유입을 막기 위해, 유럽연합 바깥 외곽 국경선을 지금보다 과연 어떻게 더 효과적으로 지킬수 있을까 하는 것이 관건이다. 내전을 피해 도망쳐 수용소나 라고스 같은 대도시에 임시 거주하는 난민들이 많다. 나이지리아 항구도시 라고스에서는 300만명이 슬럼에서 살고 있으며, 그런 곳은 식수는 물론 하수시설도 갖추어져 있지 않다. 그들은 자신의 경제적 상황에 맞지 않는 엄청난 금액의 밀항비를 지불하고 밀항선 한 자리를 얻는데, 대개 엄청난 정원 초과로 도저히 대양을 건널 능력이 안되는 배들이다. 돌아오는 표도 없이 긴 여행을 견딜수 없는 여건에서 높은 위험을 감수하고, 막연하게 밀항한다. 겨우 카나리아 제도에 도착하지만, 이들 때문에 그 지역 보안당국과 여행업계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많은 수의 피난민들이 바로 건너편에 있는 스페인이나 포르투칼 해안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으며 도착한다 해도 바로 송환될 것이다.
프론트엑스가 효율적으로 일하면 일할수록 더 위험해지는 이 밀항루트를 피하고자 하기 때문에 국경경비의 이상적인 형태는 유럽연합의 바깥쪽 외곽국경선을 아프리카로 옮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야 피난민들이 아예 처음부터 아프리카에서 탈출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06년에만 약110만명이 미국-멕시코 국경에서 체포 되었다. 미국과 유럽은 기후변화로 예상되는 수백만 난민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쇄도할 것에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굶주림, 물문제, 전쟁, 그리고 사막화는 복지낙원인 서유럽과 북미의 국경선에 대해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을 정도의 압박으로 근심 거리가 될 것이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8억5천만 명이 영양부족 상태인데, 향후 기후변화로 경작 가능한 농지면적이 더 줄어든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숫자는 현저하게 증가할 것이다.
기후변화는 현재의 가장 커다란 사회적 도전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수백만명의 생존기회를 위협하고, 이들을 대규모 난민행렬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수단 북부에서는 지난 40년 동안 그 전에는 비옥했던 남쪽지방으로 100킬로미터나 사막이 확장되고 있다. 한편으로 강수량이 계속 줄어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초원지대 방목으로 초지가 황폐화 되고, 숲이 남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발생한 토양침식이 이 땅을 불모지로 만들었다. 수단에 대한 기후예측모델에 의하면 2030년까지 0.5도 C, 2060년까지는 1.5도 C의 기온상승이 예상된다. 동시에 강수량은 연평균 5%씩 줄 것이리고 한다. 이는 식량생산이 70%가 감소함을 의미한다. 기후변화가 폭력과 내전의 한 원인으로써 확실하게 나라 전체가 전란에 휩싸인 최초의 사례가 수단이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기후변화가 간접적이라 생각했지만, 생존이 전적으로 위협받는 곳에서 미미한 변화 조차도 거대한 폭발력을 지닌다. 짐승을 방목하는 유목민들은 짐승들에게 풀을 먹일 수 있는 토지가 필요하고, 농부들도 자신과 가족들의 생존을 위해 농사 지을 땅이 필요하다. 만약 사막이 확대된다면 유목민들은 농지를 침범할 것이고, 그 반대의 경우도 일어날 수 있다. 생존에 대한 이해관계 때문에 폭력밖에는 그 어떤 것으로도 관찰되지 않는 그런 비관적인 경우도 있다.
세계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였던 니콜라스 슈테른경은 기후온난화에 제동이 걸리지 않았을 때의 비용은 전세계 1인당 수입액의 5%에서 20%사이 정도이며,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2050년까지 현 수준에서 안정된다면, 사회적 총생산액의 1%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하는데, 이는 현재의 경제발전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변화하는 환경조건들에 인간이 적응한다. 분명한 것은 적응이 반드시 행태를 변화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또한 문제들에 대한 우리의 지각도 변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다가오는 기후문제들을 돈벌이 기회로, 막연하고 모호한 가능성으로, 혹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지각할 수 있다. 문제에 대해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어떤 사람이 문제를 의식하게 되면 그는 더 이상 그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아무 생각이 없거나, 혹은 무기력하게 대처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은 문제에 대한 자신의 태도는 변화시키지만 그 원인을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나는 유대인 인종말살 전쟁에서 대량학살을 실행한 사람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어떻게 학살자들이 살인과 도덕을 조화시키느냐에 관해 밝히고자 한 바 있다. 그들은 어떤 정신적 지시의 프레임 안에서 자신의 좌표를 설정함으로써, 그들 행위들의 불가피성과 정확성에 대해 전혀 의문이 들지않도록 하는데 성공했다. 이런 사람들은 변화된 정신 프레임을 형성해 기존에 그들에게 익숙했던 사회적 연관으로부터 벗어나 행동했으며, 그들 사이에서 발전시키고 서로가 서로를 확신시켰던 규범들이 외부 비판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일상의 삶에서는 흔히 있는 서로가 역지사지하고, 사회적 접촉과 요청들을 통해 행위를 서로 수정하거나 갈등하며,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그런 사회적 이질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도 전쟁이 끝난 뒤에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고, 성공적으로 전후 독일 사회에 통합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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