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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과 이성( 리처드 래저러스, 버니

감정의 논리

감정에 기초를 두고 결정을 내리는 것을 하등동물의 속성이라고 깔보기도 한다. 반면 이성은 인간같이 발달한 지적 존재의 특징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나쁜 결정을 내릴때는 그 결정들이 감정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좋은 결정을 내릴 때는 오직 이성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부주의한,  그러나 흔한 표현이다. 감정들은 늘 이성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감정은 사실상 우리 삶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우리가 개인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의 산물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의미 없이는, 평가 없이는 감정도 없다. 감정을 뜻하는 말은 passion이었다.  근대에 들어서 emotion이라는 말로 대체 되었다.  그리스 사상가들은 이성이 감정과는 대조적으로 자발적인 정신의 자유의지를 가진 활동이라고 말한다.  이성은 우리가 짐승과 달리 계획을 짜고, 하는 일을 통제하도록 해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성과 의지에 대한 관념들을 문화적으로 상속 받으면서 감정적인 반응을 이성에 종속시키고 경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동물은 감정에 의존해 살고, 이성과 의지는 우리의 원시적 감정을 억제해준다고 한다. 감정에서 이성이 차지하는 역할을 이해하려면, 감정 과정의 연속적인 성격에 대해 구분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1단계 감정유발: 자신과 세상에 대해 어떤 목표와 믿음을 가진 사람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이 부정적 이거나, 위협적이거나, 유익하다고 평가할 때 감정이 일어난다. 2단계 감정의 통제: 우리는 가장 좋은 방침에 대해 결정을 내린다. 감정이 일어났을 경우 그것을 표현하느냐 마느냐, 표현한다면 어떤 식으로 하느냐 하는 것은  보통 그것이 우리와 다른 사람들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하는 맥락에서 통제된다. 우리는 감정이 일어나는 데만 이성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표현되는 방식을 통제하는 데도  이성을 이용한다.  파괴적인 격노나 공포는 직면한 경우 사회적 현실에 대한 지식에 의거하여 통제되어야 한다. 이것은 종종 이성이 감정적 충돌과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는 뜻이다.  강한 감정에서 야기되는 강력한 충돌에 에워싸일 때는 효과적으로 감정을 통제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낭만주의를 인간의 창조성, 지혜, 선, 고상한 이상들, 부지런함, 인내를 높이 평가하고 숭배하는 관점이라고 규정하고 싶다. 낭만주의자들은 인간이 정신의 확장에 의해 존재의 황량한 현실을 극복한다고 믿는다. 낭만적인 전통에서 루소는 인간에게 자연으로 돌아가 본래의 감정적 동물의 모습이 되라고 촉구했다.  낭만주의의 전성기 이전에 지배적인 관점은 이성의 시대, 다른 말로 하면 계몽주의에 의해 형성되었다. 19세기와 20세기에는 과학에 대한 강조가 점점 커져갔다.  과학은 면밀한 관찰과 냉정한 추론을 통해 인간 지식의 진보라는 과제를 수행한다는 의미였다. 세상만물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수 있는 기본적 규칙들을 찾자는 것이다.  느낌들이 이성과 사회적 규칙들에 종속되어 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부분 그것을 제대로 깨닫고 그것에 반응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이야기 되었다. 낭만주의는 이성이 감정보다 우위라는 고대 그리스의 믿음을 역전시킨다. 낭만주의는 삶이 이성에 의해 지배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대신, 감정이 생활의 지배적인 특징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합리성이라는 관념을 몇가지 이유에서 매우 중요하다. 감정은 상황이 복지에 대해 가지는 의미에 대한 판단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감정들 뒤에 놓여있는 추론을 살펴보지 않고는 감정들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감정을 비합리적이라고 보는 관점은 감정이 실제로는 우리가 생존하고 번창하는 것을 돕는데 중요한 자원인데도 감정을 신뢰하지 못할 것이라고 깍아내리는 것이다. 감정은 자신에 대한 지식과 인생을 어떻게 여행하느냐에 대한 정보의 극히 중요한 원천이다. 감정들이 제공하는 메시지들은 복지에 매우 중요하다.  감정 생활의 특성은 종종 고통과 기능장애 원천이 되며,  그것 때문에 심리치료를 받으려 할 수도 있다.  감정은 그럴듯해 보인다.  우리는 일과 그것에 대한 우리의 느낌에 대해 나름대로 개인적인 이유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감정이 일어나는 논리에 대해 결론을 끌어내기전에 합리성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가지고, 씨름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합리성과 비합리성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에 대한 어떤 지속적인 기준, 모든 상황에 적용될만한 기준은 없다.

 

어떤 사람이 결정을 내릴 때 그 목표와 생각들은 매우 복잡하고 또 감추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것을 확인하려면 체계적으로 신중하게 탐사할 필요가 있다. 무엇이 합리적인가하는 정의밑에 깔린 가치들과 관계가 있다. 많은 심리학자들에게 합리성이란 원하는 것을 얻는데서 성공의 가능성을 극대화 하고, 손실을 극소화하는 것을 뜻한다. 무엇이 합리적인 행동인가에 대해 서로 다른 많은 가치들이 있다는 것이며, 이것들은 무엇이 좋은 삶을 구성하는가에 대한 서로 다른 전제에 기초한다는 것이다. 이것들은 개개인이 그들의 사회적, 직업적 생활에 부여하는 다양한 가치, 목표, 믿음의 집합체이며 또 그들의 감정에 영향을 준다.  어떤 사람의 감정반응이 현실상황에 어울리지 않아 이해가 안될때 우리는 그 감정이 비합리적이거나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어떤 가정으로 너무 강하게 반응하여 스스로에게 해를 끼치면, 이 역시 비합리적 으로 보인다. 어떤 사람들의 개인적 이유들을 생각해 보면, 비록 결과가 형편없다해도 그 사람의 목표나 믿음을 고려할 때, 그의 추론이 논리적이었다는 것을 알게되는 경우가 아주 많다.

 

감정의 논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그 논리가 작동되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사람들 자신이 원하는 것, 자신이 믿는 것, 상황에 대한 평가를 통해 어떻게 감정을 경험하는가 하는 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우리는 이 논리 즉 심리의 논리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것이 감정이 일어나는 기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뭔가를 원한다. 그러나 그것을 얻는 것이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것을 얻고자 노력한다. 원하는 것을 얻거나 아니면, 그 과정에서 좋은 진전을 이룩하면 긍정적인 감정을 경험할 것이다. 이익을 본 것이다.  실패하면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할 것이다. 피해를 본 것이다. 중요한 목표가 걸려 있지 않으면 감정도 없을 것이다. 피해나 이익도 없다. 감정들은 추론의 패턴에 의해 일어난다. 이 추론의 패턴은 어떤 상황에서 중요하다고 판단된 목표를 향한 노력에 기초한다. 이 판단이 지혜롭지 못할 수도 있고, 어리석을 수도 있고, 역효과를 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기초하고 있는 목표와 믿음들을 고려할 때, 일어나는 감정은 그 사람이 원하고 믿는 것에 비추어 늘 합리적이다. 만일 우리가 어떤 사람의 감정적 상태를 안다면, 거슬러 추론하여 감정의 원인이 되는 조건들을 이해할 수 있다. 즉 그런 감정을 자극한 목표, 믿음, 사건, 그리고 개인적인 해로움이나 이익에 대한 특정한 평가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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