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은 매우 감정적이고, 괴로운 마음 상태이다. 따라서 그 의미를 바꾸는 것이 우울을 극복할 수 있는 주요한 전략이다. 우울은 신체의 생화학적인 비정상의 결과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고, 삶의 문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 요즘에는 우울에서 주로 자기 삶의 환경에 대한 무력감과 낙담, 즉 사실상 희망 없는 상태를 강조한다. 시무룩한 느낌을 바꾸려면 자신과 삶의 한경을 보는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우울에 빠지는 경향 또한 사람들의 기질에 굳어져 있는 한 부분인 것 같다. 감정대처 방법은 개인적 의미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거리두기와 부정이다. 거리두기를 할 때 우리는 어떤 상황의 괴로운 의미에서 자신을 감정적으로 떼어낸다. 정신분석에서 의사는 동의나 못마땅함을 드러내지 않고, 환자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해석을 하기 위해 너무 자주 개입하지도 않는다. 무표정한 태도를 보인다. 만일 거리 두기가 습관적이 되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늘 과도하게 자신을 통제하고 거리를 두는 스타일로 가기 쉽다.
'부정'에서는 위협적인 것을 인정하기를 거부함으로써 개인적 의미를 바꾼다. 현실의 거부인 부정은 회피와는 다르다. 회피의 경우,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하지만, 그래도 위협적인 현실을 인정하기는 한다. 앞서 불쾌한 일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 처지를 이해하는데 대해 언급했다. 이런 대처과정은 실패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대부분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다른 식으로 이해할만한 그럴듯한 근거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을 부정하게 되면 삶에서 중요한 결정을 엉터리로 하는 위험한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 허구를 믿음으로써 삶은 조금 견딜만해진다. 우리 대부분은 살면서 자신과 세계에 대한 많은 신념들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런 신념들이 허구라는 것을 의식하며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그 신념들이 착각이라는 것을 인식하면, 대부분은 그것을 거부할 것이다. 허구가 믿을만한 신념이 되는 것은 다른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로 친숙한사람들, 종교집단, 같은 문화집단, 공동체, 가족을 온 세상의 측도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무조건 현실과 직면해야 한다는 생각은 극단적인 견해다. 현실을 부정하는 것은 물론 위험한 것이다. 우리는 각각 일리가 있는 이 두가지 관점을 조화시켜야 한다. 정신분석학자이자 작가인 앨런 휠리스는 ‘착각없는 사람’에서 어떤 착각도 없는 남자 헨리는 착각이 전부인 여자 로러벨과 결혼한다. 훨리스는 우리에게 착각이 삶을 꾸려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해준다. 늘 그것은 착각이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고개를 돌린 반면 '이제 다른 것은 없어'하고 말하면서 그대로 머물게 된다. 행복하게 살았다 말할 수는 없지만, 좋은 날도 겪고 나쁜 날도 겪으면서 살았다. 임상학자들은 우리 대부분이 부정, 특히 착각을 대처전략으로 이용한다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부정은 우리가 삶의 조건에 의해 상처 받고, 그것들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을 때 보이는 가장 일반적인 반응이다. 위험을 부정하는 불안수준이 낮은 환자들이 위험을 경계하며 닥쳐올 수술에 불안해 하는 환자들보다 회복도 빠르고 합병증도 적다. 현실이 너무 참담하여 환자가 대처할 수 없을 수도 있다. 차라리 멍하거나 희망을 품은 상태로 남아있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언제 부정이 적응에 도움이 되거나 유익하고, 언제 적응에 도움이 안 되고, 해로운지에 대한 규칙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상황에 대해 그리고 삶 전반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며, 폄하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분노, 죄책감, 수치심, 우울을 겪는 것이 일반적이다. 죽어가는 환자에게 자기 죽음의 불가피성을 부정하고, 긍정적인 사고에 몰두하라는 미묘한 압력을 넣을 수도 있다. 이런 압력은 환자 자신의 감정적 고통을 하찮게 만들어 버린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근심을 상실할 가능성에 위협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가족이 자신을 단념하기 시작했다고 하는 임박한 상실에 대처하고자, 자신에게 감정적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고 느낄 수도 있다. 환자들은 자신의 심경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자신을 돌봐줌으로써 지원과 위로를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쫓아버리게 될 것이라고 믿게 된다. 그들 자신에게 진짜라기보다 가짜라고 여겨지는 방식으로 자신을 내보일 수 밖에 없게 된다. 마치 정당한 고통을 겪고있는 자아를 드러내면, 계속 사랑을 받을수 없는 것으로 되어버리고, 오히려 불행한 진실에 직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을 보호해주어야 하는 것처럼 되어버린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직면하는 이런 딜레마 때문에, 그들과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가장 필요한 바로 그 시기에 둘 사이에 틈이 벌어진다. 이런 경우 부정은 가장 불필요한 것이 되고 만다.
나쁜 대처전략 중 하나인 '소망적 사고'는 나쁜현실을 수용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멀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소망적 사고는 부정과 다르고, 회피와 비슷한 면이 있다. 부정적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정과 마찬가지로 환상 속에 사는 것은 행동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노력을 훼손하게 된다. 부정적인 상황을 바꾸지는 않고 단지 상황이 나아지기만 바란다면, 건설적인 일을 하려는 의지를 가질 수 없다. 상황이 나아질 거라고 소망을 품거나, 환상을 품는 것은 건설적인 행동을 방해할 때만 해롭지,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을 때는 해로울 것도 없다. 어떤 대처 전략이 늘 또는 보통 효과가 있고, 어떤 것들은 늘 또는 보통 효과가 없거나, 역효과를 낸다고 말하기는 불가능하다. 효과가 있는 것은 당사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다르고, 삶의 조건에 따라서도 크게 다르게 때문이다.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은 상황을 바꾸고자 하는 직접적인 행동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환경과 조화를 이루어 살기보다는 그것을 통제하고, 바꿔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전통은 자연과학의 전통이다. 최선의 대처는 문제해결과 감정중심 대처가 혼합된 형태라고 결론을 맺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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