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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관한 생각 (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대한 마무리

두 인물에 대한 이야기로 책을 시작했다. 이 후 두 종족에 대해 이야기했고, 두 자아를 설명하면서 끝냈다. 두 인물은 빠르게 사고하는 시스템1과  더디게 사고하면서 시스템1을 감시하고 제한적인 자원으로 최선을 다해 통제를 유지하는 수고를 하지만, 속도는 더딘 시스템2였다. 두 종족은 이론의 땅에 사는 이콘과 실제 세계에 사는 인간이다. 두 자아는 생활하는 경험 자아와 점수를 매기고 선택하는 기억 자아이다. 다른 누군가를 대신해서 선택하는 객관적인 관찰자는 분명 고통받는 사람의 경험 자아를 선호하면서 짧은 노출을 선택할 것이다.  우리가 자신을 위해 내린 선택은 잘못으로 묘사된다.  지속시간 무시, 절정과 법칙은 모두 옹호 불가능하다. 마지막 순간들로 전체 이상을 평가한다든가, 어떤 인생이 더 바람직한지 결정할 때, 지속시간에 무게를 두지 않는다는 것은 옳지 않다. 기억 자아는 시스템2가 만든다.

 

지속시간 무시와 절정과 종결의 법칙은 시스템1에서 시작하며, 반드시 시스템2의 가치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지속시간이 중요하다고 믿지만, 우리의 기억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절정과 종결법칙과 지속시간 무시가 결합되어, 장기간 보통 행복했던 기간보다 단기간 강렬한 기쁨을 주었던 기간을 선호하는 편향을 유발한다. 지속시간 무시는 우리가 장기간의 약한 불쾌감을 더 수용하는 경향을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끝이 더 낫기 때문이다. 경험 자아의 이익을 염두에 둔 쾌락측정기 프로필의 객관적 관찰자는 당연히 다른 조언을 할 것이다. 기억 자아의 지속시간 무시, 절정과 종결에 대한 과장된 강조, 사후 확신의 취약성이 모두 합쳐져 우리의 실제 경험은 더욱 왜곡된 반영을 낳는다. 살면서 더 중요한 순간이 있고 덜 중요한 순간이 있다.  사람들은 기억할 수 있는 순간을 곱씹으면서 보내는 시간은 이런 지속시간에 포함 되면서 그 무게감을 높인다.  또 어떤 순간은 이후 순간들의 경험을 바꿔 놓는 중요한 시기이다.

 

'나는 항상 기억할거야' 혹은 '지금은 정말 의미깊은 순간이야' 같은 진술은 약속이나 예상으로 간주해야 하는데, 정말 성실하게 발언했을 때 조차 이 진술이 사실이 아닐 수 있다.  항상 '기억하겠다'고 말하는 수많은 것들은 분명 10년 후에는 까맣게 잊힌지 오래일 것이다. 인간의 소망을 무시하는 행복이론은 지속될 수 없다. 반면에 인생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무시하고, 인간이 자신의 인생에 대해 생각하는 것에만 전적으로 초점을 맞춘 이론 역시 유지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사람을 설득하는게 가능하다면, 사람의 믿음이 현실과 조화를 이룬다면, 사람의 선호도가 그들이 관심과 가치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면,  사람을 '합리적'이라 부른다합리적이라는 단어는 더 위대한 숙고, 더 많은 계산, 그리고 더 적은 따뜻함의 이미지를 전달하며 일상에서 합리적인 사람은 분명 이치에 맞는 선택을 한다.  합리성의 유일한 테스트는 어떤 사람의 믿음과 선호도가 이치에 맞는지 여부가 아니라, 내적으로 일관되는지의 여부이다.

 

합리적인 사람은 그가 선호하는게 일관적이라면,  사랑받다는 것보다는 미움받는 것을 선호할 수 있다. 합리성은 이치에 맞는지와 상관없는 논리적 일관성이다. 이콘들은 이런 정의하에서는 합리적이지만 인간은 합리적일 수 없다는 증거가 압도적으로 많다. 인간과 달리 이콘은 점화, WYSIATI, 편협한 범주화, 내부시각 혹은 선호역전에 취약하지 않다. 시민들이 균형잡힌 식단을 유지하고, 정서에 유익한 텔레비전 프로그램만 보게끔 강요하는 상태를 선호하는 행동경제학자는 단 한명도 없다. 그러나 행동경제학자의 눈에 보이는 자유에는 그 대가가 따른다. 이 대가는 나쁜 선택을 하는 개인과 그런 개인을 도와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는 사회가 함께 감당해야 할 몫이다. 따라서 개인을 잘못으로부터 보호하느냐, 마느냐의 결정은 행동경제학자의 딜레마이다.

 

디폴트 옵션은 자연스럽게 정상적인 선택으로 간주된다.  정상적인 선택으로부터의 일탈은 더 많은 수고가 드는 숙고를 요구하고 더 많은 책임이 필요하며,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 후회를 유발할 가능성이 더 높은 행동이다. 합리적 행동주체는 중요한 결정을 신중하게 내리고, 자신이 입수한 모든 정보를 활용할 것이다. 이콘은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에 계약서에 적힌 작은 글자까지 낱낱이 읽고 이해하겠지만, 보통 인간은 그러지 않는다. 이 책은 사고 작동 메카니즘을 자동적인 시스템1과 노력하는 시스템2라는 가공의 두 인물 사이의 불편한 상호작용으로 묘사했다. 이제 당신은 이 두 시스템의 특성에 매우 친숙해졌을테니 그들이 서로 다른 환경에서 어떻게 반응할지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의를 기울이는 시스템2는 우리가 '우리'라고 생각하는 누구이다.  시스템 2는 판단을 명시하고 선택을 하지만, 종종 시스템1이 만든 생각과 감정을 승인하거나 합리화 한다. 만일 설명을 요구 받으면 제시할 이유를 찾기위해 기억을 더듬다가 분명 어떤 이유를 찾을 것이다. 아울러 자신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믿을 것이다.

 

관심투자는 수많은 활동의 성과를 개선해 주며 비교와 선택과 질서정연한 추론을 포함한 과제에 꼭 필요하다. 시스템2의 능력은 제한적이며 그것이 접근 가능한 지식 역시 제한적이다. 시스템 1에서 우리가 저지르는 많은 잘못이 있지만,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옳은 일들도 여기에 기원된다. 살면서 우리는 대부분 옳은 일을 한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정기적으로 시스템1의 인도를 받으며, 이들은 일반적으로 적절하고 합리적이다. 기억은 우리가 평생 연습하는 동안에 얻었던 기술들의 광대한 레퍼토리를 유지해준다. 시스템1은 정보처리에 도움이 되는 인지적 편안함을 만들어주지만,  신뢰할 수 없는 정보일 때 경고의 신호를 보내주지는 않는다.  직관적 대답은 기술이나 휴리스틱 중 무엇에서 유래했는지 상관없이 머릿속에 빠르고 믿을만하게 떠오른다.  우리 자신뿐 아니라 우리가 섬기고, 우리를 섬기는 제도들의 판단과 결정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짧게 대답하자면, 상당한 노력을 투자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내 경험을 통헤 알 수 있듯이 시스템1은 쉽게 교육할 수 없다.

 

이성의 목소리는 질못된 직관의 큰 목소리보다 훨씬 더 희미하며,  중대한 결정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있을 때 자신의 직관에 의문을 표시하는 건 불쾌한 경험이다. 어려운 처지에 빠졌을때 가장 하기 싫은 것은 더 많은 의심이다. 개인보다는 조직이 더 오류를 잘 피할 수 있다. 조직은 개인보다 천천히 생각하고, 질서정연한 절차를 부과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생산하건 조직은 판단과 결정을 만드는 공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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