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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대니얼 길버트)

현실에 대한 면역

 우리는 우리에게 유리한 사실을 접하면 그것에 관심을 두고 그것을 잘 기억하며 그 사실의 진위여부에 대한 판단기준도 관대하게 적용한다. 우리가 이런 속임수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홀로 된다는 것, 직장에서도 물러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나고 홀로 남겨진다는 것이 가장 우리를 슬프게 할 것이다.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병들어서 버림 받는다는 기분이 가장 우리를 힘들게 할 것 이다. 버림받는 것 역시 그것을 지금 상상할 때는 고통스럽지만 지난 일을 회상할 때는 덜 고통스럽다. 우리가 버림받는 것을 상상할 때는 그 경험에 대한 가장 부정적인 관점이 떠오른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친지와 친구들 앞에서 그런 일을 당하고 나면 우리 뇌는 상대적으로 덜 불쾌한 관점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미 언급한 것처럼 우리 뇌는 이런 것을 하는 데는 천재적이다. 하지만 뇌는 이런 것을 무의식적으로 하기 때문에 정작 우리는 뇌가 그런 일을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따라서 미래의 어떤 사건을 상상할 때 떠오르는 끔찍한 생각이 나중에 우리가 그 사건을 경험하고 나서 회상할 때도 동일할 것이라 가정한다. 즉  사람들은 자신의 관점이 어떤 사건에 대한 경험 후에 자연스럽게 변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런 관점의 변화가 무의식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점 때문에 미래 감정을 예측하는 것이 어렵다.

 

사람들은 어떤 사고가 누구의 부주의로 발생하든 아니면 그냥 우연히 발생하든 상관없이 똑같이 마음이 마음 상할 거라 예상하지만, 실제는 그 사고가 우연히 발생해 그 누구도 비난 할 수 없는 경우 사람들의 고통이 더 큰 것으로 밝혀졌다.

멜로 영화 속의 짧은 장면이 영화사에서 가장 인상 갚은 장면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배우들의 연기가 유난히 돋보였다거나 작가가 대본을 기막히게 잘 써서가 아니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 모두가 때로 비슷한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다.

 

후회란 우리에게 발생한 나쁜 결과가 우리가 과거에 다른 방식으로 행동했다면 피할 수 있었다고 느낄 때 경험하는 매우 불쾌한 감정이다. 따라서 현재의 행동은 미래의 후회를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결정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은 무언가를 했던 것보다 하지 않았던 것을 훨씬 더 후회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것, 유망 사업기회를 놓친것, 가족과 충분하게 시간을 함께하지 않은것 등을 가장 빈번하게 후회한다. 사람들은 왜 행동한 것보다 행동하지 않았던 것을 더 후회하는 것일까? 한가지 이유는 우리의 심리적 면역체계는 행동하지 않은 것보다 행동한 것에 대해 훨씬 더 쉽게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감정이 몹시 상하면 심리적 면역체계는 사실을 조작하고, 비난의 대상을 바꾸는 법 등을 동원해 우리로 하여금 긍정적인 관점을 유지하도록 해준다. 그러나 약간 슬프거나, 질투 나거나, 화가 나거나, 좌절하는 모든 상황에서,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실패와 실직은 우리의 심리적 방어체계를 발동시키기에 충분할 만큼 우리의 행복에 큰 영향을 준다. 그러나 전자제품의 고장, 찢어진 의복, 느린 엘리베이터 등은 방어 체계를 작동시키지 않는다. 극도의 어려움은 그 고통을 제거하기 위한 심리적 면역체계를 작동시키지만, 경미한 고통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우리가 미래의 우리 감정 예측을 어렵게 한다.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 상황보다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상황에 처해졌을 때, 우리의 심리적 면역체계가 작동한다. 친구는 언제라도 또 사귈 수 있고  지지후보자를 바꾸는 일은 양말을 바꿔 신는 것만큼  쉽다. 하지만 형제 자매나 현 대통령은 그들이 잘하든 못하든  이미 우리의 사람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일단 그들과 한 식구로 태어나거나 대통령으로 이미 선출한 후라면, 우리가 지금 할 일은 별로 많지 않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경험이 우리가 원하는 경험이 아닐 때 우리는 밖에 나가 다른 경험을 구한다. 

 

우리의 운명이 피할 수 없을 때, 도망칠 수 없을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운명에서 긍정적인 면을 발견하려 한다. 피하거나, 도망치거나, 뒤바꿀 수 없는 상황은 심리적 면역체계를 발동시킨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점을 인식하지 못한다. 자동차를 사서 교환할 수 있는 옵션이 없는 경우 소비자는 그 차에 대한 긍정적인 관점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환불조항이 포함된 계약을 하는 경우 구매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미 차를 소유한 차 주인은 그 차의 장점만 보고, 결점은 지나쳐 버리는 조작을 통해 큰 만족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언제라도 환불 가능성이 있는 구매자, 그래서 아직 심리방어체계가 발동하지 않은 사람은 새로 산 차를 더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되어, 그 차를 계속 소유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단점에 특별히 더 주의를 둘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은 자기가 정해 놓은 일을 마치지 못하면 그 일을 더 많이 생각하고, 기억할 가능성이 높다. 한 사건을 설명하고 나면 우리는 깨끗이 빨래를 마친 것 처럼, 그 사건을 기억의 서랍 속에 잘 접어넣고는 다른 사건으로 생각을 옮긴다. 하지만 어떤 사건을 설명하기 어려울 때 그 사건을 수수께끼로 남아 우리 마음 저편으로 넘어가는 법이 없다. 우리는 행동하지 않는것보다는 행동한 것에 대해, 단순히 약간 짜증나는 경험보다는 아주 고통스러운 경험에 대해, 그리고 빠져 나올 수 있는 상황보다는 그럴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심리적 면역체계를 발동시켜 긍정적인 관점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이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행동하기보다는 행동하지 않기를, 큰 고통보다는 약간의 짜증을 그리고 빠져 나올 수 없는 구속보다는 자유를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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