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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대니얼 길버트)

내일로부터 온 삶의 보고

인간의 이점 가운데 하나는 모든 것을 스스로 부딪혀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다는 점이다. 수백만 년 동안 인류는 발견의 수고를 나누어 담당하고 발견한 것들은 서로 공유함으로써 무지를 극복해 왔다.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은 다른 사람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게 된 것이다. 지구는 60억 사람들의 120억 개의 눈을 가진 하나의 거대한 짐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의 눈으로 관찰한 내용은 몇 달, 며칠 아니면 몇 분 안에 모든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미래에 느낄 감정을 상상하는 우리의 능력에 결함이 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교사, 이웃, 동료, 부모, 친구, 연인, 아이들, 삼촌, 사촌, 택시기사, 미용사, 의사 등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들 중 누군가는 우리가 단순히 상상만 해 보는 어떤 경험을 실제로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고, 그 경험에 대해 우리에게 이야기 해주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상상해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경험, 그리고 상상해 볼 수 없는 경험에 대해 이들의 경험을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우리 주변에 상의할 사람들, 인생의 고수, 스승, 참견하는 사람들 그리고 친척이 많기 때문에 어디서 살지, 직장은 어디로 정할지, 누구와 결혼할지 등 인생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우리가 실수 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있지 않을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인류공동체를 우리가 미래에 어떤 일을 경험했을 때 느끼게 되는 감정을 알려주는 정보로 가득 찬 도서관이라고 한다면,그 도서관을 두고 우리는 왜 그렇게 많은 선택의 실수를 범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우리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수용하는 조언이 틀렸을 수도 있고, 다른 하나는 타인의 조언은 훌륭하지만 우리가 그 조언을 거부해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믿는다는 것은 우리 행위 가운데 가장 필요한 사회적인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우리와 닮은 사람을 만들어 내기 위해 유전자를 퍼뜨린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와 마음이 닮은 사람을 만들어 내기 위해 신념을 퍼뜨린다. 실제 우리가 남에게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우리는 그들의 사고를 바꾸려 한다. 그래서 세상을 보는 그들의 방식이 우리의 관점과 더욱 비슷해지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연구에 따르면 신념이 성공적으로 전달될 확률을 높혀 주는데는 몇가지 속성이 존재하는데, 그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정확성이다. 누군가 우리에게 시내 어디에 주차공간이 있는지 혹은 높은 고도에서 밥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려준다면, 우리는 그 지식을 수용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도 퍼뜨린다. 그러나 부정확한 신념도 꽤 빠른 속도로 퍼져나간다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부정확한 신념들도 전달하게 된다. 부정확한 신념이든, 정확한 신념이든 자기의 관점을 제대로 설득시킬 수만 있다면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전달될 수 있다.

 

수십 년간 부와 행복 사이의 관계를 연구한 경제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의 결론은 절대 빈곤 상태에서 중산층에 이르게 하는 동안에는 부가 행복을 증가시키지만, 그 다음부터는 부가 행복을 증가시키는데 별 기여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경제학자들은 부는 한계효용체감의 원리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쉽게 말해 굶주리고, 춥고, 배고프고, 아프고, 피곤하고, 두려움에 떠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이 상태에서 벗어나면, 그 다음부터 돈은 갈수록 쓸모가 없어지는 종이 조각과 같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실제로 즐길수 있을 만큼 돈을 벌고 나면 일을 그만두고 즐겨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부유한 국가의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더 오랜 시간 힘들게 일하고, 실제로 즐기고 누릴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번다. 미로 속을 달리는 쥐는 미로 끝에 있는 치즈를 보상으로 얻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 다닌다. 하지만 일단 녀석이 속을 든든히 채웠다면, 아무리 쥐의 엉덩이를 바늘로 찔러도 헛수고일 뿐이다.

 

음식과 돈을 충분히 얻어 더 이상 그것이 우리를 즐겁게 해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계속해서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일까? 인생의 진정한 행복에 있어서 가난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부유한 사람보다 열등한 서열에 있는 것은 아니다. 건강한 신체와 편안한 마음은 모든 계급의 사람들에게 대략 일정 수준에 있다. 아무도 부자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심각한 경제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경제가 활성화 되려면 사람들이 각자가 보유하고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끊임없이 구매하고 소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장 경제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소유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허기가 있어야 한다. 만일 모든 사람이 자신이 현재 소유한 것에 만족한다면, 그 경제는 점차 소멸되어 결국 정지 하고 말 것이다.

 

이는 심각한 경제 문제 이기는 하지만 심각한 개인 문제는 아니다. 대부분 보통 사람은 경제시스템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려는 욕구와 함께 아침을 맞는다. 다시 말해 활발한 경제 시스템의 근본적인 욕구와 행복한 개인의 근본적인 욕구가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라는 애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자신의 욕구가 아니라 경제시스템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매일 같이 열심히 일하는 동기는 무엇일까? 사람들이 원하는 단 한가지는 행복이다.

 

부가 주는 즐거움은 아름답고 고귀한 것으로 상상하기 쉽다. 그래서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기꺼이 감수하는 고생과 불안도 가치 있어 보인다. 바로 이러한 기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인류의 산업은 끊임없이 돌아가고 유지된다. 개인이 노력할 때 경제는 성장하는 법인데, 개인은 오직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만 노력하기 때문에 그들의 생산과 소비가 개인적인 행복의 필수요소라는 망상에 빠져야만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행복을 위해 자녀를 키우고 돈을 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그것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쉽게 파악 할 수 없는 어떤 이유 때문에 그러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 네트워크의 한 부분으로서 개인의 논리가 아닌 사회네트워크 논리의 지배를 받는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행복을 위해 끊임없이 수고하고 자녀를 낳기 위해 노력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런 일로부터 우리가 기대했던 즐거움을 얻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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