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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 (로버트 스

성장의 한계2

17세기의 과학혁명은 베이컨이 ‘인간의 제국’이라 부른 것을 건설하기 위해 분투했다. 19세기 미국 경제학자 헨리 케어리가 지구를 “ 자기 목적에 맞추어 조작할 수 있도록 인간에게 주어진 거대한 기계”라고 말한 것은 그 시대의 상식을 표명한 것이었다. 베이컨의 기획과 이후의 산업발전은 시인과 작가들로부터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생태학은 삶의 상호의존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인간의 개입이 위험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도록 했다. 생태학은 자연이란 어떤 평형을 구현하고 있어, 우리가 그것을 파괴하면 그 댓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는 신비적인 옛사유에 과학적 근거를 부여했다. 심층생태주의자는 자연의 가치를 목적 그 자체에 두었고, 표층생태주의자는 자연을 인간의 목적을 위한 도구라는 데 두었다.

 

환경운동의 두 측면, 낭만적 성향과 과학적 성향은 특정 개인에게도 통합된 형태로 공존한다. '가이아 가설'의 저자인 러브록은 지구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와 비슷한 하나의 자기조절 체계로 볼 수 있을 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생각을 소설가 골딩에게 이야기하자 골딩은 “이 생명체를 그리스 대지의 여신 이름을 따서  ‘가이아’라 부르라”고 권했다. 신화속에서 가이아는 자녀를 기르지만, 자기 뜻을 어기는 자에게 무자비한 어머니로 행동한다. 환경주의 운동을 밀고 나가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감성이다. 표층생태주의는 자연을 인간의 자원으로 간주하며, 심층생태주의는 자연을 인간의 효용과는 무관하게 그 자체로 가치있는 것으로 여긴다. 

 

우리는 미래세대가 누려야 할 복지가 지금 사는 복지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고려 되어야 하며 사막이 되어버린 세계를 후세에 물려주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인정한 바 있다. 그러나 복지주의적 고려가 자연에 대한 우리의 모든 관심을 차지해 버려서는 안된다. 우리는 북극곰과 눈표범의 생존이라는 문제를,  그것들로부터 우리가 얻는 어떤 이익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서 귀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분명하다. 또 지구에 늘려있는 멸종위기에 처한 수많은 생물종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에게 인간이 아닌 생명체들의 번성을 그 속에서 우리가 얻을지도 모르는 일체의 장단기적 이익과 무관한 목적 그 자체로 보라고 한다. 인간이 아닌 생명체들의 번성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단지 인간이 아닌 유기체와 종들이 수없이 많이 있고, 그것들의 대다수는 살아남기 위해 경쟁할 뿐이다.

 

인간이 아닌 생명체들을 하나의 전체로서 번성하게 돕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관심이 있는 것은 모든 생물종이 아니라 종의 공동체이다. 우리는 전체의 좋음을 최대화 해야 하는 입장에 있다. 설사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그 일부분을 멸종 시키거나 해를 입히더라도 말이다. 유기체란 종이나 속 등에 속하는 것으로 그것이 아픈지, 건강한지의 기준 또한 해당 종이나 속에 고유한 기능이나 생존방식에 의해 규정되어야 한다. 자연의 가치가 우리 관점과는 별개로 존재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가치는 도구적이든 본질적이든 인간의 관점에 따라 상대적이다. 가치평가는 오직 인간만이 하기 때문이다. 다른 동물에게도 좋고 나쁜 것이 있다. 인간이 아닌 동물에 대한 관심은 사실 인간 삶의 참된 일부분이지만,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가 기준이 될 때에만 관심을 받고, 키워나가고, 가르칠 수 있다.

 

예술은 우리와 같은 감수성과 관심을 공유하는 존재에게만 가치를 가진다. 예술의 가치는 명백히 근원적인 것이다. 인간의 인식이라는 창을 통해서만 세상에 들어오는 것이지만 말이다. 자연의 가치가 인간 중심적이면서 근원적이기도 하다는 점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면, 자연과의 조화가 인간을 위한 좋은 삶의 일부라고 말하는 것이다. 자연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우리의 장기적인 이익에 따라 관리하거나, 아니면 내버려둔다는 의미 외는 없다.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해보면, 활동 가운데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것이 있고, 거스르는 것도 있다. 

 

좋은 삶환경은 자연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고, 우리 자신을 위해 녹색삶의 방식을 조장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좋도록 자기가 사는 지역의 식물과 동물에 대한 지식을 얻고, 그 지역에서 셍산된 식품을 먹고, 다른 활동을 통해 생산하는데 참여하도록 권장할 것이다. 좋은 삶 환경은 그것이 어떠한 의미든 간에 자연의 좋음 자체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관심에 따라 결정된 역할이다.만약 자연에서 인간적으로 중요한 부분을 지워버린다면, 우리에게는 석탄이나 원유처럼 어떠한 근원적인 가치도 없는 것만 남을 것이다. 모든 가치는 인간이 씌운 상징의 베일을 통해 중재 된다. 이 베일을 치워버리,면 우리에게는 그저 황량하고 헐벗은 자갈밭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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