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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 (로버트 스

좋은 삶의 구성요소들2

기본재는 독자적인 것이다. 다른 어떤 좋음에 속해 있지 않다는 뜻이다. 암으로 부터의 자유라는 좋음은 보편적이고 최종적인 기본재이지만, 건강이라는 좋음에 귀속된다. 가족의 경우 관계를 좋게 만드는 것이 좋은 것이며, 그것을 만드는 가치는 사랑, 신뢰, 안정성 등과 같은 것이므로, 공연히 범주를 따로 둘 필요가 없다고 판단된다. 기본재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그것을 갖지 못한 사람은 누구나 심각한 손실이나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문화적인 것이나 예술적인 특별한 경험이 없다고 그 사람을 우리는 장애인이라 하지 않는다.  예술이나 종교, 문화에 둔감하고, 다른 면에서는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것이 없음으로서 심각한 손실이나 피해를 입게 되는 그러한 좋음들만 기본적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가 말하는 건강은 신체가 온전히 기능하는 것, 즉 동물적 본성을 완수한다는 의미이다. 무엇보다도 건강은 마치 그 임무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도구처럼, 사람들이 자기 신체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행복한 상태를 뜻한다.  인간이 왕성하게 잘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상식적인 이해를 전제로 한다. 어떤 아기가 건강한지 아닌지는 직접 보면 다들 알 수 있다. 늙어서 죽는 것은 재앙이 아니므로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20-30년전이라면 신속하고 상대적으로 고통없이 죽을수 있었던 사람들이 점점 더 악화되는 만성질병상태에서 계속 생명을 연장하게 된다. 우리는 수명을 늘리고 있지만, 말년에 가면 삶의 질은 낮아진다. 품위있게 늙을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신체가 어떤 상태이든 그보다 더 나은 상태에 비해 상대적으로 결함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면, 우리는 모두 어떤 의미에서 병든 상태이다.

 

건강에 대한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곳에서는 의료비용이 소득 증가에 발 맞추어 또는 그보다 빠르게 늘어나고, 결국 우리를 일과 성장의 쳇바퀴에 묶어두게 된다. 우리의 목표에 입각해서 보자면, 건강은 요구에 기반한 상대적 의미로 정의 되어서는 곤란하며, 신체의 자연적인 완성이라는 과거의 의미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안전'이란 자신의 삶이 전쟁, 범죄, 혁명, 기타 심각한 사회적 경제격변에 의해 방해받지 않고, 대체로 늘 하던 경로대로 지속될 것이라는 한 개인의 기대가 정당화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다른 생물체와 마찬가지로 환경속에서 살아가야 하는데, 이때 환경이란 삶의 경로를 밟는 과정에서 당연히 주어지는 것으로 간주되었던 대상들의 집합을 의미한다. 이러한 환경이 갑자기 혹은 자주 변한다면 당혹스럽고 위협을 느끼게 될 것이다.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취향을 상실한 40세 혹은 50세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특히 힘에 겹다.

 

누군가를 존중한다는 것은 형식을 갖추어서든, 다른 방식으로든, 그의 견해와 관심사를 고려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즉 무시하거나 짓밟아버리지 않아야 할 것으로 간주한다는 뜻이다. 존중한다는 것이 반드시 동의하거나 좋아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적을 존중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사람의 관점을 어느 정도 인정하거나, 고려함을 의미하는 것이다노예 상태는 사실 일종의 사회적 죽음이다. 노예란 생물학적인 의미에서는 여전히 인간이지만 인간의 지위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자존심은 존중이 사라진 상태를 그리 오래 견디지 못한다. 존중은 평등하거나 상호적일 필요는 없다. 우리의 가장 깊은 소망은 자신이 존중하는 사람으로부터 존중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존중은 여러 원칙이 있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문화에 따라 저마다 다르다. 힘, 돈, 땅, 신분, 교육, 관직은모두 한때 존중의 원인으로 부각되었다. 근대 부르주아 사회에서 존중의 기본원칙은 시민권과 개인적 성취이다. 지위와 직함은 더 이상 그 자체로 존중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현대의 귀족은 자선단체의 이사회에서 참여하는 식으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려 한다. 모든 대상에게 똑같이 베푸는 형식적인 존중은 어느 정도까지만 가능하다. 상호존중을 위해서는 불평등이 어느 한도를 넘어서지 않도록 해야 한다일반 대중과 완전히 별개의 세상에 살고 있는 특권층은 보통 시민들과의 유대를 전혀 느끼지 않을 것이다완벽하게 평등한 것이 아니라, 평등한 부와 소득의 분배는 민주주의적 연대감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부자들은 무법적으로 거만하게 처신하고, 빈민들은 무능력한 원망을 품고, 정치인들은 돈에 복종하는 사회에서는 불평등이 한도를 넘어선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개성이란 자신의 취향, 기질, 좋음의 개념을 반영하여 삶을 계확하고, 실행할 모든 능력을 의미한다. 이것은 칸트주의자들이 '자율성'이라 불렀고,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이 '실천이성'이라 부른 것이다. 수도원이라든가 혁명연대 같은 공동체를 상상해보자. 그곳은 모든 재산은 공유되고 모든 의지는 공동선에 굴복된다. 공동체 구성원들은 서로를 존중할지 모르지만, 개인의 개성이 결여된 존재들이다. 개성이 결여된 사회 곧, 개인들이 각자의 사회적 역할을 긴장이나 저항도 없이 받아들이는 사회는 도저히 인간적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기보다는 지성을 가진 사회적 곤충군집, 공상과학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곤충집단에 가까울 것이다. 사유재산은 개성의 핵심적인 보호막이다. 재산이 있어야 개인들이 후원자와 공공여론의 독재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이상에 따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경제학자 마르셀 라보데르는 케인즈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 한 사람의 생계를 위한 재정적 안정은 계획된 여가와 체계적인 사유를 누릴 필요조건이다. 계획된 여가와 체계적인 사유는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라, 참된 문명의 필요조건인 것이다. 교황 레오는 '모든 가정은 자신과 가족을 영구히 부양할 수단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면, 사적인 개인이든, 공직자든 자본의 관리자들에게 굴욕스럽게 의지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법률은 소유권을 보호하고, 그 정책은 최대한 많은 사람이 소유자가 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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