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들은 적어도 어느 한도내에서는 욕구의 충족을 선호한다. 그러나 그욕구 자체에 대해서 말하라면, 그들은 애써 무관심한 표정을 짓는다. 로크는 이렇게 말했다. “ 과거의 철학자들은 최고의 선善이 부富인지, 신체적 쾌락인지, 덕성인지 그렇지 않으면 명상으로 이루어지는지를 헛되이 탐구해 왔다. 그들은 최고 맛이 사과인지, 자두맛인지, 호두맛인지에 대해서도 똑같이 이성적으로 논의했을 것이다” 로크는 '삶의 어떠한 방식도 다른 삶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욕구는 고대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죄책감도 없고, 잘못일 수도 없는 심리적 사실일 뿐이다. 본질적으로 바람직한 삶이란 없다. 단지 바람직한 삶의 방식들의 범위가 있을 뿐이다.
고전적인 사고방식에 따르면 필요는 객관적이다. 그것은 삶 또는 좋은 삶에 필요한 것을 가르킨다. 이와 달리 욕구는 심리적인 현상이다. 그것은 욕구하는 자의 마음속에 있다. 필요와 욕구는 서로 무관한다. 아이들에게는 약이 필요하지만, 그들이 그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좋은 삶이라는 개념을 버린 근대 경제학자들은 필요와 욕구를 구분하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집요하게 추궁한다면 경제학자들은 생계유지를 위한 필수품목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겠지만, 아마 그러한 것 조차 살아있고자 하는 욕망이 있는 한 필요하다고 덧붙일 것이다. 고전적인 의미에서 필수품은 삶이나 좋은 삶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다. 필수품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아무도 잘 살지 못한다. 이와 달리 사치품은 사람들이 원하기는 하지만,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어떤 사물의 사용가치는 좋은삶에 기여하는 그 사물의 고유한 가치였다. 가령 포도주는 음식과 우정이라는 중요한 인간적 좋음의 가치를 높여준다. 카를 멩거는 이렇게 썼다. “ 가치는 원천적으로 재화속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고, 그 자체의 특성을 갖고 있지 않으며, 그것 자체로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사용가치는 경제활동을 하는 인간이 자기가 쓸수 있는 재화의 중요도에 대해 내리는 판단이다.” 이와 같이 새로운 가치개념은 효용으로 알려져 있다. 내가 포도주보다는 코카인을 사는데 돈을 쓰고 싶다면, 그렇다면 코카인이 내게는 더 효용이 있는 것이다. 멩거에 따르면 ' 사용가치는 단지 소비할 때의 효용이고, 교환가치는 교환할 때의 효용이라면, 이 두 가치는 단일한 일반적 현상의 서로 다른 형태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난다'는 말이다.
근대 이전의 경제적 사유에 의해 그어진 필요와 욕구, 필수품과 사치품,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사이의 다양한 구분선은 모두 어떠한 삶의 방식이 다른 것들보다 원칙적으로 우월하다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근대 경제학은 더 이상 '좋음' 그 자체를 실현하고자 갈망하지 않고, 그저 사람들마다 자기들이 인식하는대로 좋은 것을 실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데만 관심을 기울일 뿐이다. 경제학은 우리 시대의 신학이며, 높고 낮은 모든 이익단체가 권력의 법정에서 제대로 발언권을 얻고 싶다면, 반드시 구사해야 하는 언어이다. 철학은 20세기초반까지만 해도 공적인 삶의 영역에서 강한 세력을 이루고 있었지만, 그 이후 언어 유희에 빠져들면서 힘을 잃었다.
정치적 역할을 빼앗긴 귀족계급은 부유층에 섞여 들었다. 지식인 사회는 규모도 작고, 영향력도 없는 무리들의 집단이 되어버렸고, 낡은 교회는 과거에 비하면 그림자에 불과한다. 노동계급은 뿔뿔이 흩어졌고 무력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자론적이고, 주관주의적인 신고전주의 경제학이 팽창하여 그 공백을 메운 것이다. 모임들이 활력을 계속 유지하려면 주변 문화로부터 인정 받아야 한다. 주변 문화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면, 그 모임은 불신과 원망속에서 소멸해 버리기 십상이다. 우리는 좋은 삶이 아니라, 삶 그 자체 -삶의 안락함, 편리함, 긴 수명- 를 향해 매진해왔다. 끝없는 욕구는 늘 있어 왔지만, 예전에는 욕구를 억누르고 상쇄하는 이상형들에 의해 제어될 수 있었다. 그러한 금지와 이상형들은 이제 사라져버렸다. 욕구는 인간의 '좋음'에 대한 일체의 비전과 동떨어져 시기심과 권태가 불러일으키는 신화속 히드라의 머리처럼 증식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과제는 좋은 삶의 이미지를 재구성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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