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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대니얼 길버트)

마음의 눈에 존재하는 맹점

 

그것은 어떤 느낌일까? 하고 상상해 보는 것은 마치 허무맹랑한 공상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우리가 행하는 가장 중요한 정신적 행위 중의 하나이며 우리는 이것을 날마다 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와 결혼할 것인지, 어디에서 일할 것인지, 자녀는 언제 가질 것인지, 은퇴하면 어디로 갈 것인지 등 수많은 결정을 내린다. 이러한 결정은 대부분, 만일 우리가 상상하는 그 사건이 일어난다면 어떤 느낌일지에 대한 우리의 예상에 기초하여 이루어진다.

 

우리의 삶은 항상 우리가 희망하고 계획하는 대로 실현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원하는 모습 그대로 미래가 찾아온다면 우리는 무한한 행복을 느끼고 슬픔은 끝이라고 생각한다. 늘 원하는 것은 얻을 수는 없을지라도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처음부터 확실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직장에 있지 않고 골프장에 있는 것, 나의 연인 곁에 있을 때, 평범한 직장인이 아닌 예술가였다면, 한국이 아닌 태평양 휴양지에 있을 때 행복할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이유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머릿속에 떠올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상상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도 우리에게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 주는 도구다. 그러나 다른 모든 도구와 마찬가지로 상상이라는 도구에도 결점이 있다. 과거를 잘못 기억하고, 현재를 잘못 지각하게 만드는 그 결점이 우리로 하여금 미래를 잘못 상상하도록 만든다. 그 결점은 당신의 뇌가 매일, 매시간, 매분, 당신에게 걸고 있는 속임수 때문에 생겨난다.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의 뇌는 당신에게 그런 속임수를 펼치고 있을 것이다. 인간의 뇌도 착각을 연출한다. 세상의 것을 그대로 다 담으려면 얼마나 많은 저장 공간이 필요한지 알 것이다. 하지만 우리 뇌는 수백만 개의 스냅샷을 찍어내고, 수백만 개의 소리를 기록하며 또 수 많은 냄새, 맛, 감촉, 공간적 느낌, 시간적 순서, 그리고 거기에 붙은 자잘한 코멘트까지 기억 속에 추가하고 있다. 뇌는 기억의 저장고에 하루종일, 매년,  이러한 세상을 저장할 뿐 아니라 필요하면 어떤 장면이라도 즉시 재생시켜준다.

 

우리는 어떻게 그 방대한 양의 경험을 머리 속에 모조리 다 넣을 수 있을까? 우리는 경험 전체를 있는 그대로 기억 속에 저장하지 않는다. 그 경험들은 저장을 위해 몇 가지 중요한 실마리로 축소되고 압축된다. 이를테면 간단한 어구, 몇 가지 중요한 특징으로 압축한다. 그리고 나중에 우리가 그 경험을 기억하고자 할 때, 뇌는 그 경험을 실제 그대로 복원하지 않고 압축해 놓은 정보 덩어리를 재조합한다. 이러한 행위는 쉽고, 빠르게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전체 사건이 내내 머릿속에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마치 관객이 솜씨 좋은  마술사를 보면서 착각하듯.

 

눈동자는 시신경이 붙어 있는 곳에는 이미지를 입력할 수 없는데, 그 지점을 맹점이라 부른다. 맹점에는 시각 수용기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이 지점에 들어오는 사물의 상을 볼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어떤 사물을 볼 때 그 맹점이 자리한 지점이 검은 점으로 나타나진 않는다. 이는 뇌가 그 맹점 주변에 있는 정보들을 토대로 맹점 자리에 무엇이 보일지 추측하여, 빈 장면들을 절묘하게 채워넣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뇌는 없는 것을 발명하고, 창조하고 만들어 낸다. 자문을 구하지도 않으며 당신에게 승인을 받지도 않는다. 최선의 추측을 토대로 현재 빠진 부분을 알아서 채워 넣는 것이다. 뇌가 이렇게 창의적으로 만들어 낸 시각경험과 실제 이미지는 너무나 유사하다. 뇌는 무엇을 믿는 것이지, 믿는 척 하는 것이 아니다.

 

지각 현상은 눈에 보이는 것들이 우리가 이미 생각하고 느끼고 알고 원하고 믿던 것들과 합쳐지는 심리적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결국 현실 지각은 감각 정보와 현존하는 지식이 조화를 이루어 만들어낸 합작품인 것이다.

 

칸트는 이렇게 말했다. 그 무엇도 직관으로 이해할 수 없으며 감각 또한 그 자체 만으로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한다. 로지 그 둘이 조화를 이룰때 지식이 나타날 수 있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하나의 건축물이자 완성된 결과물이며, 그것은 하나의 제조된 물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어떤 사물이 형태를 만들어 내는데 자극제 역할을 한다면, 우리 마음은 그 형태를 만드는데 기여한다. 지각은 하나의 그림이지 사진이 아니며, 이 그림에는 묘사된 사물의 속성과 아울러 그것을 그린 화가의 재주도 담겨 있다.

 

아이들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만 사물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은 그 사물을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어린이는 세상에 있는 것과 마음속에 있는 것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 각자가 그들의 마음속에 각기 다른 생각을 품을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린이들은 성장하면서 극단적인 현실주의자에서 이상주의자로 옮겨간다. 그들은 지각경험은 세상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 아닌 일종의 관점이라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같은 사물에 대한 두 사람의 지각경험이나 믿음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어떤 사물에 대한 우리의 주관적 경험이 그 사물의 속성을 있는 그대로 담고 있다고 자동적으로 가정하고 있다. 우리의  머리는 단순한 기록 장치가 아니라 기막히게 영리한 컴퓨터이다. 이 컴퓨터는 정보를 모으고 재빠른 판단과 추측으로 최선의 해석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이러한 해석은 대개 매우 훌륭하고 실제 세계에 나타난 것과 놀랍도록 비슷해서, 우리는 우리가 해석판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 대신 우리는 눈을 통해 바깥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뇌가 기억과 지각의 조각을 다시 짜 맞추는 고도의 사기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