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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대니얼 길버트)

밖에서 안 들여다 보기

 

우리는”잘 지내시죠”에는 친숙하지만 “나는 잘 지내고 있나” 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세상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것이 아주 많다. 콩의 가격, 바퀴벌레 수명등…그렇다면 우리가 자신의 감정 경험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우리가 느끼지 않는 것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만큼 알고, 느낀다고 한다.

 

뇌는 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먼저 설계되고, 덜 중요한 기능은 수십만 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서서히 추가 되었다. 따라서 우리의 뇌에서 가장 중요한 부위는 뇌의 밑바닥에 깔려있고 생존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 부위 , 예를 들면 본능을 통제하는 부위는 콘 위의 아이스크림처럼 뇌의 윗부분에 있다.

 

진화과정을 통해 우리의 뇌는 '저게 뭘까?'라는 질문에 앞서 '내가 지금 뭘 해야지?' 라는 질문에 먼저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무서운 짐승, 우는 아이, 날아오는 돌, 서로 부르는 암수 동물 등 이 모두는 생존게임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런 것들을 만나면 즉시 적절한 행동을 취해야지, 그것에 대해 논의할 시간이 없다. 이처럼 우리의 뇌는 우선 어떤 물체가 중요한지 아닌지 결정을 내리고 그 다음에 그 물체가 무엇인지 결정한다. 즉 당신이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아주 짧은 순간에 당신의 뇌는 오소리라는 것을 알지 못해도 뭔가 무시무시한 것을 보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언젠가 소설가 그래함 그린은 “증오와 사랑은 같은 호르몬을 유발하는 것 같다”라는 말을 했다. 연구에 따르면 동일한 생리적 각성도 서로 다르게 해석될 수 있고 그 각성이 유발했다고 믿는 것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고 한다. 그래서 공포를욕정으로, 염려를 죄책감으로, 수치심을 불안으로 오해하는 일이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자신의 감정을 뭐라고 부를지 모른다고 해서 그 경험자체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은 아니다. 그 경험을 뭐라 불러야 할지 그리고 무엇이 그것을 유발했는지 몰라도 우리는 그게 어떤 느낌인지는 항상 알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시각경험과 그 경험에 대한 우리의 자각은 뇌의 서로 다른 영역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한 뇌 손상이 시각경험과 그 경험자각중  하나만을 손상시킴으로써 평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경험과 자각을 분리하는 경험을 가지게 된다. 중요한 점은 자각과 경험 사이의 이러한 불일치가 감정의 측면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기분과 감정을 예리하게 인식해 마치 소설가처럼 자신의 세밀한 감정까지 정교하게 표현한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괜찮아, 별로 정도의 표현만으로 자신의 감정세계를 표현한다.  감정표현 불능증은' 뇌의 대상피질 전두엽의 기능 저하로 발생한다'고 하며,  뇌의 이 영역은 우리가 자신의 내적 상태를 포함한 많은 것을 자각하도록 조절해주는 부위로 알려져 있다. 시각 경험과 그 경험에 대한 자각이 분리되면, 맹시가 유발되는 것처럼 감정 경험과 그에 대한 자각이 분리되면 이른바 무감각이라는 현상이 일어난다. 결론적으로 행복, 슬픔, 지루함, 혹은 호기심 같은 감정을 실제로는 경험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일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데카르트에 따르면 경험은 “우리가 완벽하게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며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이 경험으로부터 유추한 것”이라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우리는 행복을 말하면서도, 스스로 행복하다고 자신하는 두 사람의 느낌이 동일한 것인지 여전히 알 수 없고, 과거의 행복경험이 현재의 행복경험과 정말 다른 것인지 알 수 없다.

 

신경세포가 축색돌기, 수상돌기를 통해 전기적 신호를 상호 교환하는 현상은 의식이 아니다. 신경세포가 하는 일은 그들에게 도달하는 화학물질에 반응하여 또 다른 종류의 화학물질을 분비하는 것이다. 이런 단순한 장치가 백억개 모였을 때 이를 단순한 일 백억 개를 할 수 있다고 양적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렇게 모인 세포는 신경세포 수천, 수만 개로는 할 수 없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일을 해내며 그것이 바로 인간의 의식작용이다.

 

대중음악 중에서 나를 짜증나게 하는 노래가 이런 가사로 시작된다. Feeling, nothing more than feeling. 느낌일 뿐이라…대체 그 무엇이 인간의 느낌보다 중요하다는 것인가? 전쟁과 평화같이 거창한 것, 그것 또한 마찬가지다. 전쟁이 고통과 괴로움을 유발하지 않는다면, 평화가 기쁨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전쟁, 평화, 돈, 결혼, 죽음, 질병, 종교와 같은 중요한 주제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모두가 인간 감정의 강력한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들뜨고, 절박하고, 감사하고 ,절망적인 감정을 느끼도록 만들지 않았다면, 인간이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느낌 그 자체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그것이 어떤 것의 중요함을 결정짓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화상을 입어 고통을 느낀다면 그 경험이 나쁘다 할 것이고, 음식을 먹고 기분이 좋다면 먹는 행위를 좋다고 부를 것이다. 인류가 좋다고 평가하는 많은 사물과 경험을 모두 가져다 놓고 과연 그것이 무엇을 위해 좋은 것인지 묻는다면, 그 대답은 오직 한가지다. 그 모든 것은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데 좋은 것들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무엇이 우리를 미래에 행복하게 만들어 줄지 모르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