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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대니얼 길버트)

안에서 밖을 내다 보기

많은 사람이 샴 쌍둥이는 정상인보다 훨씬 덜 행복할거라 생각할 뿐 아니라 한 몸으로 사는 것은 가치 없는 삶이므로 그 위험한 분리 수술을 선택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은 결정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정작 쌍둥이 자신들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행복은 우리를 즐겁게 해 주는 무언가를 지칭하기 위해, 우리가 편의상 이름 붙인 단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것이 행복이라는 단어의 실체다. 문제는 사람들이 행복이라는 단어 하나로 각자 생각하는 무수한 것들을 지칭한다는 점이다. 감정적인 행복은 느낌, 경험, 주관적인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다. 따라서 그에 해당하는 물리적인 실체는 없다

 

외계인에게 색깔을 볼 수 있는 신체적 기능이 없다면 우리가 아무리 쉽게 설명해도 그와 노란색이란 경험은 결코 공유할 수 없을 것이다. 감정적인 행복의 본질은 경험이다. 그것은 오로지 선행되는 사건과 더불어 그 경험과 관련된 또 다른 경험과의 관계등을 통해서만 대략적으로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사람은 행복하길 원하고 행복 외에 바라는 모든 것은 대개 행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 의미를 지닐 뿐이다. 먹을 것이 있지만 다이어트를 위해 먹지 않는다거나, 잘 수 있지만 늦도록 일하는 경우 처럼 그 순간의 행복을 포기하는 경우도 사실은 나중에 더 큰 행복을 얻기 위함이다.

 

오판에서 비롯된 정당하지 못한 감정에 대해서는 당사자가 아무리 기분이 좋을 지라도 행복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한마디로 감정적 행복은 돼지에게는 충분하지만 우리 같이 고상하고 복잡한 존재가 추구하기에는 너무 하찮은 것이라는 입장이다.

 

모든 기억 행위에 대해 기억하려는 시간에 들어간 원래 시간과 동일하다면 혹시 누군가 우리에게 어린 시절이 어땠는지

물어보기라도 한다면, 그날 업무는 완전히 마비된다고 보면 된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행복하다’와 같은 단어를 써서 우리 경험을 압축한다. 이것이 반드시 적절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 방법은 살아가면서 수없이 경험하는 일들을 편리하게 정리할 수 있도록 해준다. 우리가 과거에 경험한 일들도 때로는 마치 다른 사람의 경험을 대하는 것처럼,우리 자신에게까지 불명확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경험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감지하는데 우리가 둔감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어떤 현상적 경험이 변화되는 바로 그 순간에 우리의 마음이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변화가 있었는지 없었는지에 대한 판단을 기억에 의존하게 된다는 점이다. 관심을 가지지 않은 부분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단 우리가 경험을 하고 나면 다시는 그 경험을 하기 이전처럼 세상을 볼 수 없게 된다. 우리가 어떤 경험을 하는 그 순간부터 그 경험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는 렌즈의 일부가 되어 우리가 보는 것들을 조성하고 왜곡한다. 이 렌즈는 안경처럼 밤에 벗어서 침대 곁에 놓아 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렌즈는 우리 눈에 영구적으로 붙어있는 콘택트 렌즈 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 홀로된 경험은 그들이 과거를 바라보는 관점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이 경험을 하지 않은 상태로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불행한 상황에 있는 사람이 스스로 행복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보통 '자신이 한번도 해 본적이 없는 경험이 어떤지를 모르기 때문에 저렇게 말할 수 있는거야' 라고 말한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핵심 포인트다.즉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비록 남들이 보기에는 우리가 불행해 보일지는 모르지만 우리 자신은 진실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다시말해 자신에게 부족한 경험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그 경험을 해 본 사람보다 반드시 덜 행복하다고 할 수 없다. 우리가 말 할 수 있는 것은 행복에 관한 어떤 주장도 누군가의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관점은 현재의 관점을 평가하기 위한 배경역할을 하는 과거의 경험들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개인적인 관점이 끼어들지 않는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단 어떤 경험을 하고 나면 그 후로는 그 경험을 하기 전처럼 세상을 바라 볼 수 없다. 비록 우리가 과거에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했던 것을 기억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다시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그 옛날의 마음 상태로 그것을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