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기존 가치관과 삶의 방식은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지만 이미 익숙해져 있고, 새로운 대안은 낯설 뿐 아니라, 그 성공 여부도 대단히 불확실하며, 매력적으로 느끼지 않다는게 현실이다. 돈에 대한 사랑은 인간의 피할 수 없는 본능이지만, 이 본능이 어느 수준 이상으로 터져나오지 않도록 도덕과 교양으로 제어하는 게 이전의 사회적 규범이었다. 우리가 음식을 먹는 것이 더 뚱뚱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듯 돈벌이 자체는 인간의 진정한 목적이 될 수 없음을 논리적으로 주장한다. 그럼에도 자본축적과 경제성장의 논리가 만족을 모르는 인간의 나약한 본성을 부채질함으로써 돈이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은 교양과 도덕과 문화를 통해 일정한 한계안에서 제어해야 할 것으로, 경제성장은 인간의 좋은 삶을 가능케 하는 한도내에서 추구해야 할 것으로 그 위상이 새롭게 정립되어야 한다. 이러한 세상에서 어떤 목적함수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발상은 힘을 잃게 된다. 이곳에서는 그것이 이윤이든, 행복이든, 돈이든, 최대한 많이 얻는게 아니라 적당히 얻고 가치 있게 향유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가란 일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외적인 강제없이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일에 몰입하는 적극적인 활동을 의미한다.
기본재란 좋은 삶을 이루는 요소들이자 인간답게 살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모든 이들에게 골고루 돌아가도록 사회적 차원의 자원 배분과정에서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기본적인 권리라 할 수 있다. 기본재는 건강, 안전, 존중, 개성, 자연과의 조화, 우정, 여가 이다. 유토피아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고통과 불의가 없고, 일하지 않아도 풍요가 넘치는 시인과 예술가들의 찬란하면서도 순진한유토피아가 있다. 다른 한편에는 모든 이들이 노동과 소박한 생활, 그리고 규칙에 따라 공민으로 살아가는 철학자들의 정의롭고 엄숙한 유토피아가 있다. 외적인 자연을 탐구하는데 과학은 좋은 도구이다. 하지만 탐구의 주제가 인간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일 때는 독서와 여행과 대화를 통해 폭넓어진 우리 자신의 직관을 길잡이로 삼아야 한다.
이 책은 끝없는 욕구에 대한 반론이다. 개인차원에서든 사회차원이서든 '이제 그만하면 충분하다'는 말을 막아버리는 심리적 성향을 비판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 대상은 경제적 충족감이 결여된 상태에서 점점 더 많은 돈을 원하는 욕망이다. 수많은 시민들이 아직도 지독한 빈곤속에서 살아가는 가난한 지역에서는 끝없는 욕구라는 것이 아직 먼나라 이야기이다. 그러나 가난한 사회든, 부유한 사회든 최고 부유층이 대중의 생존수준을 까마득히 앞지른 정도의 사치를 탐닉하는 곳에서는 항상 끝없는 욕구를 목격할 수 있다. 우리는 그 현상의 뿌리가 인간이 본성, 즉 자신이 가진 것을 옆사람이 가진 것과 비교해 보고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성향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본주의가 그 성향을 엄청나게 강화시켰다고 본다.
자본주의는 양날의 칼이다. 한편으로는 물질적 여건을 엄청나게 개선시켜 주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욕심, 질투, 탐욕 등 인간이 가진 지극히 저열한 특징 몇가지를 높은 자리로 등극시켰다. 경제성장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을 위한 성장인가 만이 아니라, 무엇의 성장인지'를 묻고자 한다. 인류의 복지를 생각한다면 이 두가지를 다루어야 한다. GDP에는 이 두 가지중 어느 것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물론 최빈국에서는 GDP가 더 늘어나야 한다. 그러나 부국들은 이미 너무 많은 것일 수도 있다. 좋은 삶의 구성요소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이 책 에서 다룰 것이다. 케인즈가 명성을 얻은 것은 위대한 저서 ‘고용, 이자,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을 통해서 장기적인 경제성장이 아니라 단기적 실업에 관한 이론가로 부각되면서 부터이다. 부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좋은 삶을 살아가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한가? 돈을 버는 것 자체는 목적이 될 수 없다. 개인에게 진리인 것은 사회에도 진리다. 돈을 버는 것이 인류의 영원한 일일 수는 없다.
현재 시스템은 사회를 부자와 빈곤으로 최근 들어서는 매우 부유한 자와 매우 빈곤한 자로 나누는데, 자본주의 일부 견해는 그러한 상황을 '낙수효과'라는 발상으로 정당화 한다. 케인즈는 자본주의의 기저에 있는 동기가 ‘돈벌이에 대한 개인들의 강렬한 이끌림과 돈을 좋아하는 본능’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부가 충분한 시대가 되면 이러한 동기에 따른 충동은 더 이상 사회적으로 용인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는 그 임무를 다하고 나면 스스로 와해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우리는 재화란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워낙 익숙해서 풍족한 사회에서의 행동 원리와 동기는 어떠한 것인지를 거의 생각해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