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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와 그 적들 (이나미 지음)

디지탈 시대

국가건, 개인이건 정보를 어디까지 개방하고 보호할 수 있는가? 인간에게는 누구나 몰래 숨어서 관찰하고 싶은 본능이 있다. 한국인은 미니 홈피나 개인홈페이지에 자신의 사적인 것들을 겁없이 노출시키는 반면, 서구인들은 조금 더 신중한 편이다.  분석심리학자 융은 그리스 극작가 플라우투스의 말을 인용해  ' 집단 속에서 사람들은 언제든 서로에게 늑대로 돌변할 수 있는 존재'라고 했다. 일대일로 만났을 때에는 상대방이 잘못하면 비난하거나 화를 내는 정도에 그친다. 그러나 집단 전체가 한명의 목표로 공격하면, 그 잔인함이 도를 넘는다는 것은 인간의 다듬어지지 않는 본능이다. 모임에서 벗어나면 남에게 욕먹거나 놀림감이 될까봐, 남들이 다 하는 것을 못하면 뒤질까봐, 이 모임 저 모임 기웃거리고, 남하는 건 다해봐야 하는, 이른바 네트워킹에 집착하는 한국인들이 많다. 혼자 있을 때도 끊임없이 휴대전화를 들고 메시지를 보내고, 이 메일을 확인하고,  블로그를 찾아 다니고, 트위터를 기웃거린다.

 

닭이나 원숭이 같은 군락동물은 약하고 잘 어울리지 못하는 개체를 따돌려, 먹이를 먹을 때도 끼이지 못하게 해 비실거리다 결국 병들어 죽게 만든다. 인간의 유전자에는 짐승이었을 때의 기억이 내장 되어 있기 때문인지 의식과 지능을 갖춘 현대인들의 무의식속에도 이처럼 자신도 고립되어 병든 처지가 될까 두려워 하는 공포가 숨어 있는 것 같다. 타인과 정상적인 관계를 거부하고 고립되는  분열형 성격장애나 공감능력이 없는 야스퍼스 증후군도 건강한 것은 아니지만,  잠시도 혼자 있을 수 없다면 이것 또한 강하고 성숙한 자아라 할 수 없다. 인류역사에서 문화를 발전시킨 주역은 고독하게 남겨졌기 때문에, 결핍과 고독을 극복한 아웃사이더들이다. 홀로됨과 침묵을 즐길 줄 아는 배짱은 진짜 자기개성을 찾는 여유를 누리게 해주는 선물이다.  몰려다니면서 주류로서 즐거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특별히 아쉬울 것이 없으니, 창조의 수고로움을 참을 필요도 없다.

 

갑자기 가족을 잃었거나 사회적 재난이 닥친 경우, 인종이나 문화에 관계없이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큰 충격으로 인한 혼란, 상실감과 우울감, 운명에 대한 분노 등으로 한동안 정상생활이 불가능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낸후 이와 같은 애도반응을 보이는 것은 병이 아니다.  사고수습, 장례절차, 남은 빚, 가족부양 등 과도한 스트레스로 몸도 마음도 다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면역력이 떨어져 실제로 병을 얻기도 한다. 선진국에서는 애도기간을 잘 보내기 위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이때 간혹 주변의 시선이나 잘못된 간섭이 독이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대가족제도라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지금은 사회적 안전망이 없어 적절한 도움을 받기 힘들다. 죽음에 대해 더 깊이 분석하고 공부하는 것도 슬픔을 이기는 방법이다. 

 

임종을 일정기간 준비하면서 자리보전 시중도 들고, 고통스런 시술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 나름대로 이별을 준비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준비없이 망자를  보내고 나면 감정반응이 격하게 밀려올 수 있다. 아흔이 넘어야 장수한다는 소리를 듣는 세상이 되기는 했지만, 수명연장이 노년의 삶의 질에 비례하지는 않는다. 질병은 물론 치매뿐 아니라, 새로운 변화에 대한 적응과 순발력, 기억력 정보분석력 등 인지행동기능이 전반적으로 감퇴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인생을 깊이 볼줄 아는 지혜와 직관력은 발전할 수 있지만, 대부분 노인은 나이 먹을수록 작은 일에 서운해하고, 변화하는 과학기술사회에서 무력감과 공포를 느낀다. 농경사회와 달리 빠른 속도로 변하는 첨단기술사회에서 젊은이들에게 노인의 낡은 지혜는 그다지 쓸모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경제력을 잃은 노인은 설자리도 함께 없어지고 있다.

 

노인학대 발생건수도 증가하고, 절대빈곤층 노인도 늘고 있고, 확실히 대한민국은 노인이 살기 좋은 나라는 아니다. 젊은이들 역시 노인에 대한 거부감, 귀찮음, 이에 따른 죄의식이 섞인 복합적인 감정으로 노인을 멀리하려 한다. 그러나 고독한 노인들의 모습이 요즘 젊은이들의 미래이다. 차례상 준비와 가족들 눈치보랴, 운전하랴, 돈걱정하랴 파김치가 되는 남자들. 명절이 되면 우울증이 악화되거나 부부갈등이 심해지는 가정이 많다. 아이들도 설 음식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구세대의 명절과 관련된 낭만과 추억을 가질 수 없다는 말이다. 딸 가진 부모들은 자신의 딸이 불평둥하게 사는 것을 원하지 않고, 아들 가진 부모들은 예전에 비해 대우받지 못하는 아들이 안쓰럽다. 젊은 세대들은 하루빨리 자신들만의 영역을 쌓아 부모세대에서 벗어나고 싶고, 기성세대들은 품 안에서 조종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온 세계의 일반적인 현상이다. 추구하는 방향이 이처럼다른 부모자식이 어쩔수 없이 한자리에 모이는 명절은 구심력과 원심력의 팽팽한 대결의 장이기도 하다. 신세대도 그렇지만, 명절이 되면 마음이 불편해 친척들 모이는 자리를 피하고 싶은 기성세대들도 적지않다. 이혼이나 실직, 사업실패 등 이런저런 복잡한 상황으로 명절때 친지 만나기를 꺼리는 사람들도많다. 전통적인 축제의 장이었던 명절의 입지가 점점 줄어든 것 같다.

 

예전의 한국은 부계사회였다. 분가해서 대부분 살아가는 사회에서, 이제 모든 것들이 젊은 사람들 위주로 돌아가고 있으니, 돈없고 힘없는 시부모들은 젊은 며느리앞에서 항복할 수 밖에 없다. 옛날 부모와 함께 살던 시절같이 시댁이라는 우군이 없는 상황에서, 남편들은 마치 예전의 며느리들 처럼 설움을 참고 살아가고 있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힘을 얻게 된 여성들도 자기를 안락하게 만들어줄 사람이 아니라면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니,  그나마 아내가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모르겠다. 남자들은 오로지 자기능력으로 아내를 붙잡아 두어야 하니 힘에 부친다. 시부모들도 아들이 이혼당할까 봐 두려워 기득권을 내려놓는다.  은퇴후 상황은 더욱 나빠진다. 이제 남성들이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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