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미와 친미, 좌파와 우파, 노동자와 사업자로 세상이 갈려 시끄러울 때면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난다. 이념이 무엇이고, 명분이 도대체 무엇인가? 결국 우리 가족과 이웃이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면 되지 않는가? 전쟁터건 광산이건 감옥이건 오지건 망망대해건 가리지 않고, 돈 벌 수 있는 곳이라면 뛰어가 묵묵히 일해 온 우리시대의 숨은 일꾼들은 운좋고 아부잘해, 노력없이 성공하고 출세한 일들과 많이 다를 것이다. 이념의 덧도 따지고 보면 남들에게 보이는 가면, 즉 페르소나에 대한 집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념도 어디까지나 사람들이 잘 살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9.11테러와 이라크전쟁이후 미국인의 자신감은 급격히 위축 되었다. 한국은 전쟁의 상처를 딛고 기적적 으로 일어난 국가이다. 전쟁이나 자연재해 등 외적인 충격이 엄청났다. 공포와 불안은 사람들의 폭력적 경향을 조장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건전한 직업윤리, 교육, 가족 응집력으로 이를 잘 극복했다. 갑작스럽게 테러나 공격을 당하고 나면, 피해의식과 의심도 커진다. 특수인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반대 세력에는 무자비한 전체주의적 태도도 활개를 친다.
변화가 느린 농경사회에서 나이는 곧 지혜이자 경륜이었지만, 빛의 속도로 변하는 사회에서 나이가 퇴보와 뒤처지는 상징이 된다. 기술의 변화를 위시해 세상이 발전하는 속도를 젊은 세대만큼 빠르게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과거와 같은 연장자로서의 위엄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 할 수 밖에 없다. 아이돌, 걸그룹들이 대중매체를 접수하는 것은 그만큼 문화 핵심이 젊은이들이라는 뜻이다.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정보와 지식을 공부하므로, 아나로그방식으로 소통하는 기성세대에 비해 광폭의 행보를 진행한다. 동안 열풍의 진원도 나이많음이 곧 무능함으로 연결되는 이 시대의 심리적 특징이다. 문제는 아는 것이 많아도 정서적인 측면이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데 있다. 안정적 정서, 판단력은 정보나 지식만으로 얻을 수 없다.
과거의 기성세대라고 지금의 기성세대에 비해 엄청나게 윤리적인 삶을 살았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때는 적어도 그런 척이라도 하는 위선이 먹혀들었지만, 요즘 아이들은 너무 영악하고, 기성세대의 약점에 대한 정보가 많아 기성세대를 존경할 수가 없다. 권력도, 지식도, 윤리적 힘도, 갖추지 않은 채 나이만 먹은 이들은 존경해주는 사람도 없고, 스스로 존경하지도 않는 형국이다. 존경은 고사 하고, 어떻게 하든 무시당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하는 절박한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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