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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와 그 적들 (이나미 지음)

불편한 진실

싸움을 하고 난 뒤 짐승의 뇌는 적이 눈 앞에 없어도 당분간 의심과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다. 언제든 다시 닥쳐올 위험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만든 자기방어 본능이다. 재난이나 강도, 강간 등으로 상처를 입은 후 생기는 외상후증후군의 발생기제이며, 전쟁후 냉전논리나 정치적 음모 이론이 팽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프로이드도 무의식 속의 본능과 파괴적 충동이 결국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큰 에너지 원천이라고 했다. 당연히 나와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해치지 않을까하는 의심을 가질 수 있다. 문제는 힘센

자들이 이런 편집증과 음모이론을 자신의 이익과 맞게 이용해 사회를 괴롭힐 수 있다는 점이다.  대중 역시 권력을 가진 이들과 다르지 않다.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피해의식을 부추겨 음모 이론을 확대 재생산 할 수 있다. 강자나 적들에게 속고 당했던 기억의 여파로 또 그런 일이 되풀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다. 젊은 사람과 늙은 사람, 가진자와 못가진자, 배운자와 그렇지 못한 자, 가해자와 피해자 식으로 이분법으로 나누면 여론조작의 술수에 휘둘릴 가능성도 많다. 상처는 분노의 감정을 유발한다. 어이없이 무시 당했다는 억하심정은 폭력을 낳고, 폭력은 다시 의심증을 유발시켜 끝없이 증오하는 악순화의 고리에 걸려든다. 적게는 이웃끼리, 또는 인터넷이나 트위터는 물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 이라크와 쿠르드족, 중국과 티베트 등 전세계 분쟁지역 사람들에게 팽배한 심리이기도 하다.

 

한국이라는 공동체에도 의심과 망상이라는 악령이 항상 허공에 떠돈다. 한국과 미국, 정부와 국민, 여당과 야당, 진보와 부수, 좌익과 우익, 젊은세대와 기성세대가 불신과 불만의 눈으로 서로 노려보면서 종착역 없이 위험천만 하게 무한질주 하고 있다. 욕망의 추구는 사회구조의 기둥이 붕괴될 수 있는 치명적인 원인이다. 사회란 어차피 각자 이익이 다양하게 충돌하는 거대한 가마솥이다. 사람끼리 다툼이 있을 때, 서로 기억하는 내용이 달라 난감한 경우가 많다.  실제로 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르게 기억하기도 하지만, 한쪽이 거짓말을 할때도 많다.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고 명백한 이득을  얻기 위해, 신체 또는 정신증상을 거짓으로 일으키는 것을 꾀병이라고 한다. 현실적으로 뚜렷한 이득이 없는 데도, 의도적으로 신체증상이나 정신증상을 만드는 것을 '가장성 장애' 또는 '문하우젠 증후군'이라고 한다.  또 스트레스 요인이 있을 때 무의식적으로, 선택적인 기억상실을 보이는 해리성 기억상실도 있다.

 

부부, 부모 자식, 형제, 친구들간 과거의 사건들이 머릿속에 다르게 입력되어 때로 의심도 하고, 의가 상하기도 하는데, 우리의 기억이 복잡한 모습으로 입력되어서 생기는 일이다. 우선 외부의 사건들은 정신의 여과장치를 지나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뇌세포에 저장된다. 말한바, 행동한 바가 대략의 골조로 기억되기 때문에, 전체 맥락과 상관없이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 감정이실리지 않은 사건들은 아예 등록이 되지 않는다. 해맑은 눈동자의 아이들도 곧잘 거짓말을 해서라도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형제간 싸움을 불사 하거나 몰래 게임을 하고, 심지어 돈이나 물건을 훔치기도 한다. 어찌보면 다듬어지지 않은 사람의 마음은 주인의 눈을 살살 피해 사고를 치는 개나 고양이와 다르지 않다자기에게 불리해도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선택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인 학습과 훈육, 의식의 결과이다. 다수가 바르게 살고 있으면, 범죄자와 가짓말쟁이가 우리 사회의 그림자라 하겠지만, 사회의 주류가 대체로 거짓말쟁이라면 바르게 사는 일들이 오히려 소외감과 가치관의 혼란을 느낄 것이다.

 

상담중에 환자가 말하는 내용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진실일 뿐, 객관적인 진실은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때가 대부분이다. 원래 사람들은 자신이 듣고싶은 것만 듣고, 보고싶은 것만 본다. 그러면서 자신이 인식하고 믿고 말하는 것이 절대진리인양 강변한다. 이렇다보니 같은 일도 서로 다르게 표현하여 이런저런 갈등이 생긴다. 만약 우리 모두가 자신이 듣고, 보고, 경험한 일이 절대적인 진실이 아닐 수도 있고, 또 내가 말하고 전하는 것 역시, 그런 오류를 범한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면, 훨씬 더 진실하고 신중한 소통이 되지 않을까. 모든 불경이 여시아문(如是我聞), 즉 ‘나는 이렇게 들었다’라는 구절로 시작된다. 경전의 저자가 부처님의 말씀을 들은 대로 적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개인주의적인 서구에 비해 한국인의 거짓말은 주로 불특정 다수에 의해 더 확대 재생산된다는 의미가 있다. 그만큼 남의 인생에 관심이 많다는 의미이다.  확인할 길 없는 그릇된 거짓말에 휘둘리지 않고 마음 편히 지낼수 있는 해결책은 나와 상관없는 남의 일에 쓸데없는 에너지 쏟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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