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삶을 얻으려는 열망을 던져버리면, 죽음이라는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죽음이 찾아온다고 해서 두려울 것이 없음을 충분히 깨달은 사람에게 죽음이란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따라서 죽음이 고통을 주기 때문이 아니라, 고통을 줄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에 두렵다고 말하는 사람이야말로 어리석은 것이다.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은 외부사건들이 아니라, 그것을 상대하는 사람들이 내리는 판단이다. 두려워할 것이 없음에도 두려워하는 까닭은 두렵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당신 자신을 당신이 통제할 수 있는 상태로 유지하라. 얻을 것은 얻고 버릴 것은 버릴수 있는 사람만이 자기에게 스스로 군주가 된다. 그렇게 되면 자유롭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 것이나 원하지 않고, 무엇을 원한다고해도 다른 사람이 좌지우지 하는 것을 피하고자 한다. 피하지 않는다면,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당신은 연극 배우임을 명심해라. 그리고 극작가가 그런 배역을 선택했음을 명심해라. 단역을 주면 단역을 맡아야 하고, 긴대사를 외우게 하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그가 가난한 사람의 역할을 주면 당신은 온 힘을 다해 그 역할을 맡아야 한다. 당신이 해야 할일이란 당신에게 주어진 성격을 잘 소화하여 훌륭한 연기를 하는 것이다. 배역을 선택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몫이다. 철학은 '죽음이 두려운가?'라는 물음과 함께 출발한다. 몽테뉴는 '어떻게 죽어야 할지 모르더라도 걱정하지마라. 그때가 되면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자연히 소상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일러줄 것이다. 자연이 그 일을 완벽하게 처리할테니 그 문제로 고민하지 마라.그냥 지금을 살아라. 변화를 있는 그대로 느껴라고 했다. 본디 삶이란 변화한다. 삶은 언제나 똑같을 수는 없다.
삶은 때로는 기쁨이며, 노여움이며, 슬픔이며, 즐거움이기도 하다. 희로애락이 곧, 삶이다. 삶을 어떤 방향과 목적에 따라 꾸며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삶이란 자아가 만들어내는 작품이 아니다. 삶이란 순간순간 바뀌는 의식흐름을 역어낸 우연스런 결과일 따름이다. 의식이란 믿을 것이 못된다. 판사도 개인취향과 그날 기분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기도 한다. 점심으로 먹은 음식이 소화가 잘 되었는 지에 따라 판결이 달라지는 때도 있다. 삶이란 언제나 결핍이다. 그러한 결핍을 느끼려면 상상을 이용하라고 몽테뉴는 권유한다. 약간 따분한 기분이 들때 상상은 무척 효과가 있다. 가지고 있는 것들이 지겹다고 느껴지면, 그것들을 모두 잃어버려 절실하게 그리워하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그 대상이 좋아하는 접시이든, 친구이든, 애인이든, 건강이든. 현재 가진 것들이 신기할 만큼 소중하게 느껴질 것이다.
무엇인가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면, 새삼 그것의 가치를 깨닫게 될 것이다. 야간에 통행을 금지하면 사람들은 야간에 통행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야간에 통행을 금지하지 않으면, 야간에 다니고 싶어 하지 않는다. 무엇이든 규제를 하면, 그 규제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결핍을 깨닫고 어리석음을 자각해야 비로소 에포케 epoche에 이른다. 에포케란 '판단중지'에 이른 경지이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밖에 없다. 그런데 '모른다'는 사실 조차 확인할 수 없다. 한 사물을 기준으로 다른 사물을 확실하게 규정할 수 없다. 판단하는 존재나 판단되는 존재 모두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판단을 하려는 사람들로 넘친다. 어떤 판단도 중요하지 않다. 인간은 스스로 불완전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방앗간에 가까이 사는 사람들이 물레방아 돌아가는 소리에 익숙해지듯이, 바가지 소리에 익숙해지는 법' 이라고 소트라테스가 말했다. 인간은 어리석다. 그런만큼 어리석은 인간이 살아가려면, 어떤 지혜든 터득해야 한다. 그 지혜란 곧 ‘모든 일은 자기관점에 달렸다’는 깨달음이다. 이 깨달음은 지금 관습에서 깨어남이다. 어떤 관습에서 살아가노라면, 그 관습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정해주는 기준 이나 표준이라 생각하기 쉽다. 루소는 ‘문명이 인간을 사악하게 만들고 노예로 만들었다. 문명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가진 본디 씩씩한 기상은 사라지고, 나약하기만 하고, 두려움에 떠는 인간만 남았다’ 라고 했다. 몽테뉴는 ' 사람 구실을 잘하는 것만큼 아름답고, 합당한 것이 없고, 이 삶을 자연스럽게 잘사는 법만큼 얻기 어려운 지식도 없으며, 온갖 병폐중 가장 나쁜 병폐는 우리를 스스로 경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일상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범속하고 평범한 이상으로 엮어지는 삶을 추구해라. 스테판 츠바이크 작가는 몽테뉴가 삶에서 받아들였던 원칙을 8계명을 재구성했다.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곧 시선을 밖으로 향함이 아니라, 바로 자기에게 스스로 향함이다. 나는 시선을 내면으로 향하고, 내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내면을 부지런히 살핀다. 누구나 자기앞만 쳐다보지만, 나는 내안을 본다. 내게는 나 자신말고는 상관할 일이 없다. 나는 끊임없이 나 자신을 관찰하고, 나 자신을 살펴보고, 나 자신을 음미한다. 나는 나 자신 안에서 뒹군다.’ 우리에게 펼쳐지는 인생게임을 모두 즐기고, 우리를 다채로운 현장으로 인도하여 직접 보고 깨닫게 해줌으로써, 우리가 스스로 배역을 맡아야하는 현장에서, 가능하다면 분별력있게 행동하게 해준다. 누구나 인생행로가 하나로 정해진 것은 아니다. 인생에 정해진 지도 같은 것은 없다. 인간탐사란 곧 스스로에게 향하는 성찰이다. 인생이란 마치 조각모음과도 같다. 우리는 한 조각 한 조각 잇대어 만든 조각보 같아 일정한 모양도 없고, 매우 다양해서 한 순간마다 각기 나름대로 행동한다. 모든 삶은 저마다 소중하다. 특별한 삶이란 없으니 고귀한 삶도 없고,신성한 삶도 없다. 오로지 삶만이 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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