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주의에 따르면 인간은 특정한 방식으로 기능하는 육체다. 대화하고, 사랑하고, 계획하고, 생각하고, 자의식을 가지는 그런 육체이다. 신체기능을 줄여서 'B기능'이라고 하자. 인지기능을 'P기능' 이라고 하자. 육체의 단계를 나누어 보면 어린시절을 A라고 하고, 성장하여 활발히 활동하는 시기를 B라고 하면, A 단계에서는 B기능이 활발하며 B단계에서는 P기능이 시작된다. 죽음 상태를 C라고 한다면, C단계에서는 아무 기능도 하지 못한다. 그런데 끔찍한 질병에 걸려 기능이 마비된 단계를 D단계라고 한다면, 이 단계에서 B기능과 P기능은 서로 다른 상태이다. C단계에서 '나' 라는 존재는 없다. 그럼 D 단계는 B기능은 하지만, P기능이 중지되어 믿음, 기억, 욕망 등 내 인격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사라졌다. 내가 살아있는가? 죽고나서 나는 잠깐은 살아있을지 모르지만, 내 육체는 썩어서 분해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 육체는 존재하지 않고 나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생존으로부터 무엇을 얻고 싶은가? 생존으로부터 얻고 싶은 것은 살아있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살아있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내가 원하는 것은 살아있는 인간이다. 예전에 나는 아이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아이는 내가 거쳐간 하나의 단계이다. 마찬가지로 육체관점에서 한 인간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나'또한 나의 몸을 거쳐가는 하나의 단계인 셈이다. 한 인간으로서의 존재는 내 육체에 특정한 기간동안 주어지는 상태이다. 한 인간으로서의 존재는, '나'라는 존재의 본질적인 전부는 아니다. 단지 '나'라는 존재의 일부에 불과하다. 인간의 정체성이라는 용어는 '나'라는 존재를 하나의 인간으로 가정하고 있다. 삶의 마지막에 대한 질문과 마찬가지로 삶의 시작에 대한 질문도 똑같이 던져볼수 있을 것이다. B기능은 하지만, P기능을 하기에 아직 뇌가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기간에 대해 어떤 설명을 내놓을수 있을까? 그 기간 동안 나는 존재하고 있는가? 인격 관점에 따르면,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 육체는 존재하고 있지만, 시간에 따라 진화해 갈 수 있는 내 인격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장은 뛰고, 폐는 호흡하고, 위는 소화하고 하고 있다. 그러나 생각하고, 대화하고, 사랑하고, 학습은 할 수 없다.
모든 인간은 생명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 삶에 대한 권리의 주체는 '나'인가 아니면 내 육체인가? 중요한 가치를 얻는다는 차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단지 살아있느냐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존재하는가이다. 인격관점에서 죽는다는 것은 P기능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혼수상태에서 뇌의 인지조직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그 스위치는 꺼져있는 상태이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그 스위치는 켤수 없다. 스위치를 다시 켜서 뇌의 인지조직들이 다시 P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들수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살아있다고 봐야 한다. 뇌 조직이 완전히 파괴 되었다면 살아있다고 볼 수 없다. 우리의 육체는 언젠가 파괴되기 시작할 것이다. 이에 따라 P기능을 위한 능력도 사라진다.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하나의 살아있는 인간으로 존재할 수 없다. 육체가 지속적으로 파괴 되면서 신체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만다. 이것이 육체적 죽음이다. 죽음이라는 개념에 더 이상 신비로운 것은 없다. 인간의 육체는 살아서 움직이다가 파괴된다. 결국 이것이 죽음에 관한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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