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영혼을 받아들일 마땅한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뭔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근거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龍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자. 우리는 용이 실재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론적으로 존재할 가능성은 있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이 믿지 않을 뿐이다. 龍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자 용의 존재를 반박해야 할까?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근거를 제시할 의무는 없다고 생각한다.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증명할 필요는 없다. 영혼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다양한 주장을 살펴보고, 그 주장을 반박해 나가면 된다. '죽음으로부터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두가지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이뤄져 있는가? 그리고 다음 질문은 '죽음으로부터 살아남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이다. 이번 주말이 지난뒤에 살아남아 있다는 말은 정확히 무슨 뜻인가? 살아남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 지난 월요일에 키보드를 두드리던 사람이 지금 여기서 글을 쓰고 있는 사람과 동일 인물이라는 말은 정확히 무슨 의미인가? '나'를 '나'라고 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 있는가? 내 정체성의 핵심은 무엇인가?
여러분은 나와 함께 기차옆을 지나고 있다. 5분후 나는 기차의 맨 끝에 달려있는 기관실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한다. '긴 기차네. 5분전에 봤던 기차네'. 객실과 기관차는 같은 기차가 아니다. 어떻게 그 둘을 같은 기차로 말할 수 있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기차는 5분 전에 본 동일한 기차다. 공간적으로 이어진 전체적인 기차를 말한다. 우리는 기차의 정체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잘 이해하고 있다. 1990년구입한 여기 있는 내자동차는 2006년도 상태와 1990년도 상태가 같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두 자동차가 동일한 자동차라고 말할 때, 그것은 시간에 따른 서로 다른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적 으로 이어진 하나의 자동차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어쨌든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적으로 이어진 사물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시공간 벌레'라는 표현을 해보자. 나는 벌레 자체와 벌레를 구성하고 있는 조각들을 혼돈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시간적으로 확장된 상태 또는 시간적 조각이 연결되어있다는 말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동일한 시공간 벌레를 구성하고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자동차란 무엇인가? 그것은 금속, 풀라스틱, 고무, 전선 등 다양한 부품의 집합체이다. 시간적 차원에서 정체성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연결은, 자동차 사례에서 동일한 조합의 덩어리인 셈이다. 그 덩어리가 파괴 되면, 더 이상 자동차라 할 수 없다면, 그 연결은 당연히 끊어진 것이다. 먼 훗날의 나, 특정 시점의 그 사람을 X라고 부르자. 누가 X가 당신이 맞느냐고 묻는다? 이 질문의 의미를 당신은 알고 있다. 특정 시점에 해당하는 X의 상태와 현재에 존재하는 나의 상태와 동일한지 묻고 있는 것은 아니다. 편의상 현재에 존재하는 나를 ME라고 부르자. X의 상태와 현재의 나 ME의 상태는 동일하지 않다. 여기서 우리는 X의 상태가 현재의 ME상태와 동일한가를 묻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시간적으로 이어지면서 존재하는 두 사람이 동일 인물인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인간을 이루고 있는 전체적인 시공간 벌레를 설명할 수 있다. 우리가 던지고 있는 질문은, X를 통해 설명하는 시공간벌레가 ME를 통해 설명하는 시공간벌레와 같은 존재이냐는 것이다.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핵심은 무엇인가? 형이상학적 연결이란 무슨 의미인가? 이런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우리는 두 사람이 동일인물인지, 아닌지를 분명히 대답할 수 있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먼저 우리는 시간에 따른 인간의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야 한다. 인간의 정체성에서 핵심은 동일한 영혼이다. 영혼이 그대로 존재한다면 비록 육체가 죽었다 하더라도, 나는 살아남은 것이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영혼을 믿는 사람들은 육체의 죽음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영혼의 관점에서 말하는 인간의 정체성에서 핵심은 '동일한 영혼인가?'이다.
육체 관점에서 동일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 핵심근거는 동일 몸을 갖는 것이다. 갑작스럽게 체중이 줄었다해도 육체는 그대로 남아있다. 동일한 육체를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핵심이라고 볼 때, 우리는 이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인간의 몸에서 어느 부분이 핵심인가? 육체관점에 따르면,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핵심은 동일한 육체이다. 그러나 육체의 모든 부분이 똑같이 중요하지는 않다. 육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뇌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뇌는 인격을 관장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믿음, 욕망, 기억, 두려움, 야망, 목표 등 한 사람의 인격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뇌에 들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뇌라고 생각한다.
이제 뇌를 이식한 경우를 예를 들어보자. 내 뇌를 떼어서 A씨의 육체에 이식했다. 내가 A씨를 육체를 이식 받았다고 해야 맞다. 육체 관점에서 이런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핵심이 동일한 몸통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몸통이 아닌 뇌의 동일성이다. 나와 동일한 믿음, 욕망, 목표, 기억 등을 갖고 있다면, 즉 동일한 인격을 갖고 있다면, 그 사람을 '나'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이와 같은 새로운 관점에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핵심은 육체적 동일성이 아니라, 인격적 동일성이다. 나는 인격을 믿음, 기억, 욕망, 목표 등의 집합체로 정의했다. 그런데 이런 각각의 요소들은 끊임없이 변한다. 열살 무렵의 아이는 지금 사라졌다. 그는 결혼을 했고 많은 기억들이 변하는 과정에서 사라졌다고 한다면, 우리는 하루살이에 불과한 존재가 된다. 지금의 나는 불과 2시간 전에 없었던 새로운 기억을 갖고 있다.
인간의 인격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한다. 열살무렵 나는 특정 욕망, 기억,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는 동안 새로운 기억이 등장했고, 오랜 기억들이 사라졌다. 새로운 믿음이 생겨났고, 과거의 믿음이 사라졌다.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핵심을 동일한 인격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믿음과 욕망등의 요소들을 특정한 조합의 형태 그대로 보존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동일성을 유지하는 한도내에서 천천히 변한다는 뜻이다. 중복 및 연속성의 패턴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면, 끊임없이 진화하는 하나의 동일한 인격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계속해서 새로운 기억이 등장하고, 과거의 기억은 사라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남아있는 믿음, 욕망, 목표는 거의 없다. 그래도 올바른 형태의 중복, 연속 패텬이 이어지는 한 우리는 동일한 인격을 유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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