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와는 다른 비물질적인 존재인 영혼을 가정해야만 설명할 수 있는 그 특성이 있을까? 영혼의 존재를 가정할 때 우리 모두 익숙하게 알고 있는 '특성 F'를 설명할 수 있을 때, 영혼의 존재를 받아들여야 한다. 과연 어떤 것이 '특성 F'가 될 수 있을까? 사랑하고,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일상적인 현상이지만, 나는 이 중 일부를 영혼의 관점에서 설명해 볼 것이다. 그리고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이야기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육체가 살아있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특정기능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저 육체만 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기능을 해야 한다. 제대로 작동하는 오디오 와 망가진 오디오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차원을 초월한 특별한 존재를 끌어들일 필요는 없다. 우리는 물질적인 요소들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각 요소는 조화롭게 움직여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육체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것이다. 특성을 물리적 차원에서 모두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굳이 비물질적인 영혼을 끌어들일 필요는 없다. 물리주의자들은 인간의 육체가 무작위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명령을 내리는 존재가 필요하다. 육체의 특정기능 일부가 그런 기능을 담당하면 되지 않을까?
물리주의자들은 인간의 육체가 합목적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굳히 영혼을 끌어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열추적 미사일에는 누군가가 로봇과 미사일을 프로그래밍 한 것이다. 인간에게도 그런 외적존재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원론자들은 그게 바로 '영혼'이라 한다. 로봇 내부에 프로그램을 심는 것처럼 어떤 외적 존재가 인간의 머릿속에 명령시스템을 주입한 것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진화생물학, 유전학에 의하면 학습하고,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즉 합목적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선천적인 심리학 매카니즘을 갖고 태어나도록 하는 다양한 물질적 과정이 존재하는 것이다. 육체적인 활기를 설명하기 위해 영혼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대신 또 다른 '특성 F' 후보자로 시선을 돌려보면, 즉 자유의지를 설명하기 위해 영혼의 존재를 받아들여야 한다면? 인간은 다른 물질적 존재가 할 수 없는 특별한 기능을 할 수 있다. 인간은 믿음과 욕망을 갖고 있다. 그리고 어떻게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킬 것인가에 관한 믿음을 바탕으로 계획을 세우고 전략을 짠다.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한다. 우리는 그 어떤 기계도 믿음과 욕망을 갖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계획을 세우고 실천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오늘날은 정교한 프로그램을 구동시킬 수 있는 컴퓨팅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이제 기계들에 대해 적어도 일부 최첨단 기기들에 대해 믿음, 욕망, 판단 계획들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체스게임을 하는 컴퓨터를 생각해볼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컴퓨터가 욕망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즉 게임에 이기기 위한 궁극적인 욕망을 갖고 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 목표 달성을 위한 분명한 전략을 갖고 있다. 컴퓨터가 믿음과 욕망을 갖고, 생각하고, 전략을 세울수 있다는 차원에서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다. 진장한 의미에서 기계가 생각할 수 없고 정신적인 기능을 할 수 없다고 말할 때, 그것은 감성적인 기능을 할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여기서 욕망의 행동적 측면과 감성적 측면을 구분해야 한다. 행동적 측면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믿음과 욕망, 사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이는 결국 주변환경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이에 대해 합리적으로 반응하는 문제이다. 이제 컴퓨터나 로봇도 대충 할 수 있다. 하지만 감성적인 측면은 다르다. 인간은 감정을 느낀다. 우리는 분명 사랑을 하고, 두려움을 느끼며, 걱정을 하고 자신감 있어 하거나, 우울해 한다.
감정은 또 다른 말은 감각 또는 느낌이다. 감각과 느낌은 행동적인 반응이 진행되는 동안 내부에서 느껴지는 것이다. 두려움은 특유한 내면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사랑하고, 걱정하고, 우울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 각각의 감정들은 우리 내면에서 고유의 느낌을 만들어 낸다. 이런 특성을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특정한 감정과 연결되어 있는 특정한 경험이 존재한다고. (컴퓨터는 거의 정해진 프로그램대로 작동하지만, 인간은 감정에 의해 다양하게 대응한다. 대부분은 일관되게 반응하지만, 그것도 사람마다 상황에 따라 변한다. 좀 더 종합적이고 다양한 분석을 한다.) 세상 만물은 색깔을 띠고, 소리를 내며, 냄새를 풍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모든 자극을 인식할 수 있다. 이는 경험의 질적인 측면을 말한다.이런 경험의 질적인 측면에 대해 철학자들은 특질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감정에 질적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공포, 기쁨, 우울과 같은 모든 감정에는 저마다 고유의 느낌이 있다, 우리의 정신적 삶은 이처럼 경험의 질적 측면으로 가득하다. 기계는 경험의 행동적 측면을 가질 수는 있으나, 질적인 측면을 가질 수는 없다. 그래서 인간은 기계 이상이다. 물리주의자의 관점에서 의식이란 거대한 미스터리 같은 존재다. 물리주의 관점에서는 의식이라는 존재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생명에 대해 설명을 하기 위해, 결론을 내리기 위해 우리는 물리적 존재 이상의 존재를 끌어들여야한다. 즉 생명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비물질적이고, 물질을 초월한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는 육체가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그런 기능의 목록과는 별도로 또 다른 존재를 추가할 근거가 있는가이다. 로봇이 하는 일은 기계적 .자동적으로 프로그램 지시를 따르는 것뿐이다. 로봇에게 어떤 선택권도 없다, 다시 말해 자유의지가 없다.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다. 자유의지를 설명하기 위해 영혼의 존재를 끌어들일 수밖에 없다. (나는 인간 역시 자유의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자유의지라는것도 가만히 보면, 결국 미리 프로그램된 것을 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컴퓨터는 절대적으로 물리적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물리법칙은 일종의 결정론이다. 모든 물리적 사건들의 경우에 원인과 결과가 있고, 이때 원인이 주어지면 반드시 이에 상응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것이 바로 물리적 시스템이 작동하는 결정론이다. 물리적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것은 특정한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언제든지 초기로 돌아가서 실행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철저히 인과관계 원칙에 따라 특정한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결국 자유의지란 어떤 선택을 내릴때 그것과는 다른선택도 내릴수 있다는 뜻이다.
마음 속을 들여다보면서 그 속에 자유의지가 들어 있는지 확인할 수가 없다. 우리는 과거 어떤 상황에서 실제 다른 선택을 내릴 수 있었을거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그런 확신도 환상에 불과할지 모른다. 인간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느끼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자유의지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일상에서 느끼는 것이다. 이원론자들은 세상에는 임시체험 같은 우리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이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영혼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최근 과학자들은 생물학적 차원에서 임사체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임사체험'이라고 하는 현상을 죽음이 단계에 이르렀을 때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 대해 육체와 뇌가 반응하는 특별한 방식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영혼과 육체의 연결고리가 일시적으로 끊어졌다가 연결되는 현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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