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퇴직이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자신을 속박했던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하기도 하고 제2의 인생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되기도 한다. 정년 퇴직이란 단지 직장생활을 끝낸다는 것일 뿐이지 삶 그 자체로 부터의 은퇴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철학자 '라 로쉬코프'는 노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인은 과거의 경험을 통해 모든 사람이 젊었을 때 바라고 있던 것들의 가치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으며, 또 젊은이들이 생각하는 것 만큼, 그것들을 보다 오래 즐기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젊은이에게는 활짝 열려 있는듯이 보이는 출세, 쾌락, 명성 그밖에 인간을 높여주는 모든 길이 노인에게는 운명 혹은 자기 자신의 행동 , 아니면 남들의 시기 그리고 온갖 부당한 압력에 의해 막혀있다. 한번 길에서 벗어나게 된 다음에 되돌아가려해도 너무나 험난하고 멀다. 우선 나이가 그런 시도를 용서하지 못한다. "
한때 그들의 가슴을 부풀게 만들었던 온갖 행복과는 이제 인연이 멀어졌다. 그들이 얻은 영광은 이미 세월의 흐름과 함께 희미해지고, 나이를 먹어갈수록 영광을 얻기보다는 잃게 되기 쉬운 것이다. 매일매일 그들은 그들 자신의 일부를 잃게 되며,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즐기기에 충분한 수명도 남아 있지 않다. 그들의 앞길에는 우울과 병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그들은 남들의 구애를 받지 않고 취미생활이며 학문이며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그것들은 세상으로부터 자기를 해방시켜준다. 쇠약한 몸은 그들로부터 욕망의 고통을 제거해 준다. 세상은 그를 잊게 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노인 자신도 세상을 잊고 살 수 있게 된다.
입으로 '언제 죽어도 좋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정말 내일 혹은 다음 달에 죽어도 좋다는 뜻일까? 아니면 단순히 더 이상 재미나는 일은 없을거라는 낙담에서 비릇된 푸념일까? 또하나 의문이 드는 것은 이 땅에 여한 없이 죽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며 그 사람은 진심으로 언제 죽어도 한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은 70년이 넘는 세월을 살면서 대부분의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세속적인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죽음을 앞두고 자기 지난 일생을 돌이켜 보면서 얼마나 많은 허송 세월을 했으며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했는지 생각한다면,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생각없이 흘려버린 시간들… .노년을 맞이한 사람들 중에는 특히나 시간을 아무 의미 없이 그저 흘려 보내는 사람이 많은데,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넋놓고 허송 세월 보내는 것은 결코 바람직 하지 않다. 늙어가는 나이를 막을 방법은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어떻게 늙을 것인지에 대한 선택권은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