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하루에 늙게 만드는 것도 정년에 의한 퇴직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퇴직 직전까지도 사람들은 자신이 퇴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깨닫는다해도 그것을 인정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리고 아직은 얼마든지 몇년 더 일할 수 있고,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가지고 있는 것이 사람들 심리이다. 그런 환상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게 바로 정년퇴직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정년 퇴직이 코앞에 와서야 자기가 퇴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단지 퇴직후 아무 할 일도 , 갈데도 없고, 자신을 찾는 사람도 없어, 그저 온종일 집안에서 이리저리 뒹굴며 천덕꾸러기 신세가 될 것이라는 것을 실감하지 못할 뿐이다.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부정하고 싶어서 일지도 모른다. 늙은이를 가장 처량하게 만드는 것은, 자기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잉여인간이 되어버렸다는 느낌이다.
미국 의학협회도 이러한 취지에 따라 정년퇴직제를 반대하고 있다. 강제적인 퇴직이 신체적 정서적 질병과 결부되어 죽음을 앞당기게 할 수 있다는게 주요 이유이다. 하지만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에게 나이의 제한은 없다. 그런가 하면 경망스러운 정치를 펴가며 나라를 어지럽히는 함량미달의 권력자들도 있다. 정년퇴직자는 이처럼 직위에 비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위인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나라에 크게 해를 끼칠 우려가 없는 평범한 회사원이나 일반 공무원들에게만 능력에 관계없이 나이에 따라 정년 퇴직시킨다는 것은 매우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제도처럼 느껴진다.
직장생활을 할때는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일요일이 월요일부터 기다려지지만, 막상 매일이 일요일이 되면 그 많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걱정거리가 된다. 정년퇴직을 하고 나면 달라지는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전화는 심심할 때는 좋은 말동무가 되어주지만 한창 바쁠때는 응당해야 하는 것 조차 귀찮아진다. 하지만 정년퇴직을 하게 되면 그렇게 쉴사이 없이 걸려오던 전화가 하루가 다르게 뜸해진다. 그렇다고 한창 바쁘게 일할 옛동료에게 전화를 거는 것도 미안한 일이라, 자연히 이쪽에서도 전화를 걸지 않게 되니 고립이 아닌 고립이 되어버린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그러니까 가족과 어울리는 시간보다 직장동료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더 긴 셈이다. 그런데 가족이상으로 친밀하게 지내던 회사동료들도 퇴직을 하고 나면 그만이다. 굳이 정년퇴직을 해서 좋은 점을 꼽으라면 먼저 매일 아침 만원 뻐스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허둥되면 아침 식사를 거르지 않아도 되고 늘어지게 아침 잠을 잘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행복감은 오래가지 않는다. 얼마지나지 않아 만원전차 속에서 이리 밀리고 저리 밀려가면서 출퇴근하던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혹은 가정생활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동료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즐거움도 사라지니 정년퇴직이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견딜 수 없는 무력감과 고독감에 사로잡히는 것뿐만 아니라 , 새로운 형태의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년퇴직을 하고 나면 순식간에 늙어버리는 사람이 많다. 평소 밤낮없이 회사일에 열중하던 사람일수록 그 충격은 더 크게 느껴질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일이 너무 많은 것보다 훨씬 나쁘다. 사람이 한가해지면 스스로 자기 마음을 파먹게 되는데 인간이 먹는 음식중에서 가장 나쁜 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