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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E:수전블랙모어, 김명남

사회생물학의 한계

설원의 북극에서는 흰곰이 갈색곰보다 물개에 살금살금 더 잘다가갈 수 있으므로, 흰털을 만드는 유전자가 갈색털을 누르고 퍼지게 되었다. 유전자들은 서로 협력하기도 한다. 인체에서도 무수한 유전자가 협력해서 근육과 신경과 간과 뇌를 만들어 냄으로써, 유전자를 잘 품어서 효과적으로 운반해주는 기계를 빚어냈다. 유전자끼리 협력한다는 것은, 가령 고기 소화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사냥 행위에 관한 유전자와 협력하고, 채소 소화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풀을 뜯고, 되새김질을 하는 유전자와 협력한다는 뜻이다. 한 생물의 유전자가 다른 생물의 유전자에 영향을 미칠수도 있다. 쥐의 달리기 유전자 때문에 고양이도 갈수록 더 빨라지는 유전자를 갖게 된다. 이런 식으로 생물들이 생존을 위한 군비경쟁을 하게 된다생태계를 이기적 유전자의 상호작용이 빚어낸 결과로 바라보면 세상이 낯설게 보인다.

 

밈과 유전자의 상호적용에서도 경쟁과 협력이 가능하다. 도킨스가 종교를 정신바이라스로 취급한 것은 유명하다. 생물이 조금이라도 먹고 자라고 번식하려면 물체를 보고, 그것을 따라하고, 그것을 잡고, 개체를 인지하고, 성별을 구분하는 등등의 능력이 필수적이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게 아니다. 자연선택의 의해 유용하다고 확인된 방식으로만 인식한다. 도롱뇽처럼 생겼고 파리를 먹고 사는 동물이 있다. 높은 곳에 혀가 닿는 개체일수록 파리를 많이 잡아먹을 것이다. 그런데 한 개체가 점프를 하기 시작했다. 그 녀석은 파리를 더 많이 잡아먹을 것이고, 점프 못하는 개체들은 굶을 것이다.  따라서 점프 실력이 좋은 유전자가 유전자풀에서 확산 될테고, 곧 모든 개체들이 개구리처럼 뛸 것이다. 완벽하게 다윈주의적인 방식으로 행동이 선택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제 파리의 생김새와 영양이 제각각 차이가 난다고 상상하자. 가령 줄무늬 파리는 먹을 것이 못되고, 점박이 파리는 훌륭한 먹잇감이다. 개구리를 닮은 그 동물은 점박이 파리를 선호하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 점박이 파리를 민감하게 포착하는 시각계의 메카니즘이 필요 할 것이다.  그런데 파리 무늬의 진화가 동물이 따라 잡을수 없을 정도로 빠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떤 파리를 먹을지 학습하는 능력을 갖추는 편이 유리하고, 학습하지 못한 동물은 불리한 처지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학습능력을 뒷받침하는 유전자가 확산된다. 이것이 '볼드윈 효과'다. 볼드윈은 이처럼 유전 없이도 자연선택으로 학습능력의 진화를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데닛은 '생성과 시험의 탑'이라는 독특한 비유를 사용하여 이점을 설명했는데, 가상의 탑에서는 높은 층에 있는 생물일수록 더 훌륭하고, 현명한 책략을 발견하고, 더 빠르게, 더 효과적으로 발견해 낸다. 데닛의 탑 1층에는 다윈생물이 있다. 이들은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했고, 모든 행동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 실수는 엄청난 댓가를 초래하고 변화는 느리다. 2층에는 스키너 생물이 살고 있다. '자동적 조건화'다원주의적 선택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지적한 스키너의 이름을 땄다. 스키너 생물은 학습할 줄 안다. 그래서 개체 전체가 죽는 것이 아니라, 특정 행동만 죽는다. 어떤 행동은 보상이 따르면 그 행동이 반복되고, 보상이 없으면 반복되지 않는다. 한 개체가 생애중에 수많은 다양한 행동을 시험해볼 수 있으므로, 변화가 훨씬 빠르다. 3층에는 '포퍼생물'이 있다. 이들은 행동의 결과를 머릿속으로 상상할수 있고, '생각을 통해서' 문제를 풀 수 있기 때문에 스키너 생물보다 더 빨리 행동을 진화시킨다. 마지막 4층에는 그레고리 생물이 산다. 지능이 있어야 문화적 인공물을 만들수 있지만, 문화적 인공물이 그 소유자의 지능을 높이기도 한다는 점을 처음 지적했던 영국 심리학자 리처드 그레고리의 이름을 땄다.

 

가위가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펜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보다 더 많은 지능을 폼낼 수 있다. 한마디로 밈은 지능을 향상시킨다. 데닛이 말한 마음의 도구도 그런 밈이고, 가장 중요한 마음의 도구는 바로 언어다. 그레고리 생물은 남들이 만든 온갖 도구로 가득한 환경에서 살아가며 풍부하고, 표현력 있는 언어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런 것이 없는 생물보다 훨씬 빠르게 좋은 책략을 찾아내고, 새로운 행동을 진화시킨다. 우리가 아는 한 생성과 시험의 탑에서 꼭대기층에 거주하는 것은 우리 인간뿐이다. 인간의 뇌는 생물학적 이득으로만 설명하기에는 지나치게 빠르게, 지나치게 크게 자랐다. 큰 뇌는 유전자에게도 어마어마한 이득을 주는 발견이었고, 덕분에 인간은 온 지구를 점령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꼭 이래야만 했을까? 밈이 끝없이 더 큰 뇌를 요구하여 지나치게 많은 댓가를 치르게 함 으로써, 유전자를 멸종위기로 몰아넣는 상황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다만 호미니드중에서 오직 우리들만 살아남았다는 것이 확실히 이상한 일이기는한데, 혹시 다른 호미니드들이 그런 식으로 사라졌던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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