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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학교: 디지탈시대(톰 체트필드

우리 삶에 침투한 변화들

세계 최초의 전자식 컴퓨터는 1940년대에 개발되었다. 1950년대 말에 이르러 차세대 컴퓨터인 메인프레임 (대형컴퓨터)이 등장했다. 주로 연구소에서 사용되었고 전문가 전용물이었다. 1970년대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출현으로 연구소가 아닌 일반 가정에 컴퓨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1970년대 말 애플, 코모도어, 탠디에서 제품을 출시했을 때 수십만 대가 팔려나갔다.  대중 사이에 디지털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1970년대 이후 컴퓨터는 계속해서 성능이 막강해지고, 호환성이 높아지고, 시용하기도 쉬워졌다. 하지만 성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기기들이 제공하는 경험이었다. 이제는 손안의 스마트폰이나 책상 위의 테블릿을 이용해 아무 때나 전원만 켜면 네트워크안에 접속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디지털기술과 사이에 완전히 새로운 융합이 일어나고 있다. 이제 휴대폰은 아침에 눈을 떠서 가장 먼저 찾고 밤에 잠자리에 들때까지 손에서 놓지 못하는 물건이다.

 

'모든 기술은 우리가 그 기술을 사용하는 사이에 우리를 변화시킨다. 우리는 도구를 만들고 또 도구는 우리를 만든다'.  캐나다의 미디어 연구 선두주자인 마셜 맥루언의 말이다. 기술은 하루하루를 수렵과 채취에 의존하여 살며 원시농경 생활을 하던 인류를 도시와 문명의 수립을 하게 했다. 우리 인간은 도구적 동물이다. 우리 자신과 우리의 세계를 증강시키는 것, 즉 한계를 뛰어넘고 적응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본성이다. 문자가 발명된 이후 세계는 지적기술에 의해 발전해 왔다. 지적기술이란 무기와 의복이 신체적 힘을 확장시켜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지성을 확장시켜 주는 것을 말한다. 지도에서부터 영화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만드는 도구들은 세상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학습능력과 의사소통 능력을 확장시켜 주며, 지식을 후대에 물려주게 한다.

 

기술 중에서도 디지털 기술은 가히 독보적이다. 적절한 소프트웨어만 설치하면 소리, 영상, 이미지, 문자를 자유자재로 재현해 낼 수 있다. 정보의 홍수라는 말이 일상어가 되었다. 소비할 수도 없을 만큼 정보가 넘친다는 사실앞에 이제는 체념하게 된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디지털 정보가 계속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08년기준으로 월드와이드의 웹페이지는 대략 1조개였다. 이제는 수조 개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디지털 기기는 정보를 주는 것 뿐만아니라, 정보를 재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상호작용하고 탐험하도록 시스템을  활성화시켜 나가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또다른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어쩌며 이것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기적인지도 모른다. 지난 몇 백년에 걸쳐 도시가 자석처럼 세계의 수많은 인구를 끌어당겼듯, 지금은 디지털 영토가 그 어마어마한 가능성 안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우리가 사용하는 각각의 기기들이 아니라, 이 기기들이 만들어 내는 인간의 경험이라는 것이다. 디지털을 통해 문자 메세지를 주고 받고, SNS에 접속하고, 컴퓨터 스크린을 통해 자료를 찾고 쓰고 읽는다. 하루의 거의 대부분을 미디어에 접속하여 나는 무엇을 하는 것일까? 만약 한시간쯤 페이스북을 했다면, 내가 어떤 식의 만남과 상호적용을 겪었는가? 내가 그 시간동안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동기로 그런 일련의 행위를 하였는지에 대해 알수 있어야 한다. 그 사이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 느낀 감정은 그날 나머지 시간까지 나의 기분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리고 내 경험으로 축적된다. 그 경험은 삶에서 겪는 다른 사회적 경험이나 상호작용에 적용하는 그런 기준과 동일하다는 의미이다.

 

온라인에서 무언가를 비교적 빠르게 얻을 수 있다. 온라인 공간에서 실체없이 활동할 때, 우리는 실제 물리적 환경에서 교류할 때보다 훨씬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래서 이타적이기도 쉽고, 기만적이고 까칠해지기도 쉽다. 디지털세상 밖에 존재하는 현실을 무시함으로써, 삶은 가볍게 여겨진다. 이런 맥락에서 다른 사람을 사물화시키고, 물건 다루듯 존중과 성실함이 우습게 될 위험이 있다. 온라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과 개인이 맺는 인간적 유대, 그리고 뜻밖에 느끼게 되는 기쁨이다. 무엇보다도 오늘날 디지털 영토는 그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인간의 경험과 가치관에 의해 팽창 되고 있다. 디지털 영토는 어지럽게 돌아가는 거대한 소용돌이이며, 때때로 상당히 혼란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새로운 공간에 들어가 다양한 경험을 하는 주체는, 인간애를 지닌 우리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깊이 있는 삶을 살길 바란다면 말이다.

 

우리는 기계의 필요를 우리 자신보다 위에 두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시대를 대변하는 말중에 '멀티타스킹' 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기술이 가져다준 능력 덕분에 여러가지 일련의 활동을 병행할 수 있으며, 최대한 효율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소한 일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경우 거의 예외없이 멀티타스킹은 오히려 속도를 둔화시키고 실수할 가능성을 늘린다. 우리 인간은 기계와 달라서 다수의 복잡한 일들 사이에서 주의력을 쉽게 이리저리 옮기는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기는 커녕 그 일들 사이에서 갈팡질팡 산만해져 작업들을 동시에 수행한다기보다는 주의력이 분산되어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분산된 주의력으로 사람들은 헤드폰을 쓰고, 문자를 주고받고, 통화를 하고, 주변을 촬영하는 행동방식은 드라마속에서도 일상적으로 보여지는 행동이다. 답답한 현실 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행동이다. 이것은 현대 삶의 일상이다.  관심을 어떻게 주지 않으며, 어떻게 주는지도 모른다. 반면에 우리는 주위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기를 원한다. 우리가 되려면 나 스스로에게 어떤 관심을 받아야 하고, 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가?

 

디지털에서 아무리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라 해도 우리 인간에게는 당연하고, 중요한 어떤 것이 결핍되어 있다. 바로 이야기다. 우리는 자연의 산물이지만, 살아가는 동안 스스로 만들어낸 저마다의 독특한 경험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 인간의 뇌는 단순한 기억장치와는 다르다. 우리가 경험하고, 행동하고, 배우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일부가 된다다음은 작가 니콜라스 카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한 말이다. “...기억은 시간속에 존재하며 육체와 더불어 변해간다. .... 그런데 개인적인 기억의 대체물로 웹을 이용하면, 내적통합의 과정을 무시하면서, 우리는 기억의 풍요로움을 잃어버릴 위험에 처해 있다.” 우리는 디지털시대에 녹아들면서 그 자유로운 상념을 키워내지 못하고 있다. 자유로운 상념은 생활 중의 비어있는 시간에 떠오르곤 한다. 디지털에 빠져있을 때는 불가능하다. 우리의 생각을 전적으로 우리 자신의 것을 만들기 위해 남용되는 도구로부터의 중독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나는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들고 다니며 틈틈이 읽으면서 뭔가 떠오르기를 기대한다. 책을 읽다가 어느 순간 생각이 집중되면, 책장을 덮고 글을 막 휘갈겨 쓴다. 우리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이와 동시에 환경이 우리의 관찰력, 사고, 감정 전반을 수용하도록 촉구함으로써 환경도 우리에게 적응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러려면 우리의 주의력을 분배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 즉 어떤 생각이나 '나' 아닌 다른 사람, 그리고 배제되었던 모든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시공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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