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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죽어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환자의 가족1

가족은 환자들의 투병 생활에서 중대한 역할을 할 뿐아니라,가족의 반응은 자신의 병을 받아들이는 환자의 태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만약 남편이 심각한 병에 걸려 입원했다면 아내는 그로 인한 집안의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아내는 갑자기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고, 더 이상 남편에게 의존할 수 없게 된다. 예전에 남편이 맡아서 해 주던 일들을 떠 맡아야 하고 새롭고, 낯설고, 부쩍 많아진 일들에 적응해야만한다. 갑자기 취직을 해야 할 수도 있고, 예전에 무심했던 재정적 문제를 떠안게 될 수 도 있다서서히 남편에 대한 근심과 걱정, 가중된 책임감과 집안 일, 외로움, 그리고 분노까지 밀려든다. 기대했던 친구나 친지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되고, 이웃들의 충고는 그들의 짐을 들어주기는 커녕 오히려 가중시킨다. 새로운 소식을 듣기 위해 오는 이웃이 아닌, 짐을 덜어주기 위해 찾아오는 이해심 많은 이웃들이 먹을 것을 만들어 오거나, 아이를 돌보아 주는 것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고맙다

 

아내가 누워 있거나 활동이 제한되는 경우 가사일은 곧바로 남편들의 몫이 된다. 이러한 역할의 반전은 여자들보다 남자들에게 더 견디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남편들은 이제 시중을 받기보다 시중을 들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일을 마치고 집에서 쉬는 대신, 그의 자리에 앉아 TV를 보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있어야 한다나는 가족중 한 명이 항상 환자 곁을 지키도록 강요하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숨을 들이쉴 때가 있으면 내 쉴 때도 있어야 하듯이, 사람들은 병실 밖에서 때로는 충전할 시간이 필요하고 정상적인 삶을 영위해 나갈 필요가 있다. 항상 환자만 생각해서는 효율적으로 간호를 할 수없다.

 

나는 집안에 환자가 있다고 해서 가족들이 즐길수 있는 일이 모두 사라지고 파괴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환자와 환자 가족 모두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 믿는다그런 행위들은 환자가 세상을 떠나고 없을 때 집안에 일어날 변화에 주변사람들이 서서히 적응해 가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환자들이 항상 죽음만을 생각할 수 없듯이 환자의 가족들도 오직 환자하고만 시간을 보내기 위해 다른 것을 포기해서는 안된다환자의 가족들은 자신들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분배하여, 정작 그들의 에너지가 가장 필요한 시간이 오기도 전에 지쳐 쓰러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런 것을 이해하는 사람이 가족 곁에서 환자의 간호와 그들 자신의 욕구 충족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면, 환자 가족들에게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병의 심각성에 대한 얘기를 듣는 사람은 종종 환자의 남편이거나 아내이다. 환자에게 사실을 알릴 것인지 말 것인지 또 알린다면 어디까지 알려야 할지는 그들이 결정해야 할 몫으로 남는다. 아이들에게 언제 어떻게 말해야 할지는 부모가 결정해야 한다. 아이가 어리다면 그것이야 말로 결정하기 힘든일이다. 며칠이건, 몇 주건, 이 중대한 시간은 가족간의 결속력이라든가, 대화능력 도움을 줄 수 있는 친구가 있는지 여부에 따라 상당히 달라진다. 중립적인 외부인 즉,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가족들의 근심과 소망, 욕구에 귀를 기울여 주는 사람이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죽어가는 환자의 문제는 끝이 있는 것이지만 가족들의 문제는 계속된다. 그러나 문제의 상당 부분이 환자가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의논함으로써 해결 될 수 있는 것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환자를 대할 때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웃음지으면서, 조만간에 무너지고 마는 억지 즐거움으로 가장한다. 환자 자신이 슬픔을 이겨 낼 수 있다면 환자 자신이 침착하게 자신의 죽음을 맞이 할 수 있다면, 가족들은 그의 용기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보다 품위있게 자신들의 슬픔에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죄책감이야말로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의 동반자이다. 가족중 한사람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심각한 병이라는 진단을 받으면, 가족들은 종종 혹시 내 잘못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 잡힌다. 만약 내가 의사에게 일찍 데려갔다면, 좀 더 일찍 증상을 알아차렸더라면과 같은 말들이 주로 환자의 아내, 남편이 하는 한탄이다.

 

사람들이 죽음과 죽어감에 대해 얘기하기 불편한 것은 당연하다. 사람들은 죽음이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일 때 조차도, 혹은 우리 코 앞에 닥친 일일 때 조차도 그런 얘기하기를 꺼린다.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 처했던 적이 있는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처음에만 힘들 뿐 반복이 될수록 점점 쉬워진다고 말한다. 죽음을 앞두고 소외되고, 고립되기보다 의미있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눔으로써 오직 고통만이 가져다 줄 수 있는, 부부간의 친밀감과 이해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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