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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죽어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협상 그리고 우울

협상

 첫단계에서 슬픈 사실을 받아 들일 수 없었고, 두번째 단계에서 신에게 분노했다면 피할 수 없는 일을 조금 미루고 싶은 일종의 협상 단계에 도달하게 된다사실 환자들의 협상이라는 것은 죽음을 미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자신의 처한 행위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과 함께 스스로 정한 시한 같은 것이 포함된다. 또 그 소원만 이루어지면 더는 원하지 않겠다는 절대적 약속도 포함된다.

 

우울

 시한부 환자가 더 이상 자신의 병을 부정할 수 없을 때, 주위에서 수술이나 입원을 강조하고 명확한 신체적인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할 때, 수척해 지고 허약해질 때, 환자는 더 이상 자신의 상황을 웃어넘길 수 없다. 무감각, 냉정, 분노, 흥분 같은 것들은 곧 바로 엄청난 상실감으로 대체된다엄청난 치료비와 입원비로 경제적 부담이 가중된다. 처음에는 더 이상 사치를 할 수 없을 것이고, 나중에는 생필품까지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치료비와 입원비 부담에 환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유일한 재산을 팔아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 노후에 살기 위해 지어놓은 집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고, 자식을 대학에 보낼 수도 없고, 그외 많은 꿈들을 이룰 수 없다.

 

잦은 결근이나 신체기능 저하로 직장을 잃게 될 수도 있고, 어머니와 아내들은 갑자기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일을 해야하고, 아이들은 예전과 같이 관심을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된다. 환자가 어머니라면 아이들은 남의 집에 맡겨지고, 그런 경우 환자의 죄책감은 더욱 심해진다지금 말한 것들은 환자를 돌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우울증의 요인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자주 잊는 것은 우울의 단계야 말로, 시한부 환자들이 이 세상과 작별을 고하기 위해 스스로 준비시키는 시간이라는 사실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는 상실감을 이겨내고, 수용단계로 접어들기 위한 과정으로써 우울증에 빠질 때 용기를 주고, 격려하는 것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 그럴 때 환자에게 '상황을 밝은 쪽만 보라'고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곧 다가올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말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환자에게 '슬프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 한 명을 잃으면서도 슬프하고 있지만, 시한부 환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 을 잃어야만 한다. 환자 곁에서 끊임없이 슬프하지 말라고 말해주는 사람과 있을 때보다, 자신의 슬픔을 표현할 수 있게 해 주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마지막을 훨씬 더 편안하게 받아들인다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고 싶어 하고, 자신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과 그 의미를 나누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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