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죽음과 죽어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분노2

항상 남을 지배하고, 남에게 요구하고 통제해온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가 힘든 경우도 많다. 그런 사람은 사실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가장 까다로운 사람이고, 도움을 받는 것을 불편해하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처음에는 거절하지만 본인이 원할 때는 받는 사람이기 때문이다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부유하고, 성공한 모든 것을 손에 쥔 사람이야말로 이런 상황에서는 가장 불쌍한 사람이다자신의 삶을 편안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것을 잃어야만 하기 때문이다마지막에는 누구나 결국 똑 같은 인간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와 같은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몸부림치면서 죽음을 삶의 마지막 결실로 겸허하게 받아들일 기회를 놓쳐버린다.

 

"울고 싶거나 절망감에 휩싸일 때면, 제 자신의 처지를 잊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통증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제 자신를 끌어내서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그 사람한테 집중해야 해요.그래야 제 처지를 잊을수 있으니까." 

 

"사람들은 아픈 사람에게 가까이 오지 않아요. 몸이 아프면 얘기조차 하고 싶지 않을 거라 생각하죠. 하지만 대답을 할 수 없어도, 그냥 옆에 앉아 있어 주기만 해도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잖아요? 병문안 온 사람들이라면 그래야 하잖아요."

 

"제가 아무것도 줄 것이 없을 때 제 곁에 오지 않아요. 사람들에게 늘 뭔가를 베푸는 사람도 때로는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혼자 힘으로 숙소로 돌아가서 누울 수 있고, 옷을 입을 수 있고, 식사하러 내려 갈 수 있을 때, 제가 이 세상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외롭지 않다는 뜻이예요. 하지만 가끔은 너무 아파서 기도를 할 수 없을 때 조차도, 그저 다른 사람과 같이 있고 싶어서 교회에 앉아 있고 싶을 때가 있어요. 문제는 제 자신이 스스로를 돌볼 수 없을 때, 모두가 저를 버린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 때죠. 건강하다면 혼자 지내는게 힘들지 않을 거예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테니까요."

 

"제발 저한테 하느님의 뜻이라고 말하지 마세요. 스물일곱 살 된 엄마인데, 세 아이를 남겨두고 눈을 감아야 하는 상황이예요. 다른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할 때 정말 듣기 싫어요자기 몸이 아프면, 그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법이잖아요. 그럴 때 그저 '많이 아프시죠.' 같은 말이 훨씬 듣기 좋아요. 환자의 고통을 외면하면서 또 다른 고통을 주는게 아니고, 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의미니까요. 물론 고통이 사라지면 무슨 말을 들어도 상관없죠."

 

'죽음과 죽어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용  (0) 2009.07.02
협상 그리고 우울  (0) 2009.07.02
분노1  (0) 2009.07.02
비인간적인 죽음3  (0) 2009.07.01
비인간적인 죽음2  (0) 2009.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