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죽음과 죽어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분노1

끔찍한 소식을 접했을 때 첫번째 반응이 "아니야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어"였다면, "이 반응은 사실이구나, 정말 나한테 이 일이 일어났어" 로 바뀐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죽는 그 순간까지 건강한 척 연기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부정의 단계가 더 이상 유지 될 수 없을 때, 단계는 분노와 시기, 원한의 단계로 넘어간다. 그 다음 이어지는 물음은 "왜 하필이면 나일까?" 이다이러한 분노의 단계는 가족이나 병원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무척 힘든 시기다. 왜냐하면 그들의 분노는 종종 예측 할 수 없는 곳에서 무작위로 표출되기 때문이다. 의사들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환자와의 면회는 고통스런 시간이 된다.

 

가족들은 환자를 슬픔과 눈물,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대하고 환자를 피하게 되고, 결국 환자는 더욱 극심한 분노와 불안감에 사로 잡힌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환자의 입장을 생각하고, 그들의 분노가 어디에 연유한 것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누구라도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의 삶이 너무 일찍, 너무 갑작스럽게 유린당하면 누구라도 그렇게 화가 날 것이다.

 

지으려고 했던 건물이 다 지어지지 못한 채 중단된다면, 열심히 돈을 벌어서 미래의 휴식과 즐거움을 위해 저축해 두었고 이제 막 여행을 하고 취미생활을 시작할 생각이었다면, 그런데 그 모든 것이 결국 나에게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린다면, 그 분노를 어떻게 표출하겠는가그 모든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다른 사람에게 폭발시키는 것 외에 달리 어떤 방법이 있겠는가주위를 둘러 보아도 온통 마음에 안드는 것 투성이다. TV속의 젊은 남녀들이 춤을 추는 모습들은 제약과 고통의 따르는 자신의 처지를 더 비참하게 만든다. 서부 영화를 보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함부로 총질을 해대고도 편안히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보인다

 

재해와 전쟁, 화재, 온갖 비극의 뉴스를 들어도 모두 자신과 동떨어진 얘기 같다. 의 고통과 투쟁은 쉽게 잊혀 질 것이다. 그런 생각에 환자는 목소리를 높이고, 이런저런 요구를 하고, 불평하고 관심을 가져 달라고 말한다. 어쩌면 그들이 마지막으로 내어보는 가장 큰 외침은 난 아직 살아 있어요, 잊지마세요 난 아직 죽지 않았어요.일지도 모른다. 적절한 존중과 이해를 받고, 관심과 시간을 누린 환자들은 곧바로 자신의 목소리를 낮추고 분풀이를 멈춘다. 그들은 자신이 소중한 존재이며, 사랑 받고 있으며, 자신의 여건이 허락하는 범위내에서 인간으로서의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환자들의 분노의 원인을 생각해보지 않고 그들의 그런 반응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때 비극은 시작된다. 사실 그들의 분노는 그들이 분노를 쏟아내는 대상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 병원 직원들이나 가족들이 이러한 분노에 감정적으로 반응하거나 심지어 더 큰 분노로 대응하면 ,그것은 환자의 적대감을 부추기는 것이다환자는 자신의 분노를 표현 할 수 없다면 그는 고통과 걷잡을 수 없는 분노 속에서 극도의 무력감을 느끼고, 외롭고, 소외감을 느낄 것이다. 분노를 인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말하고 싶다 . 우리는 환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때로는 그들의 비이성적인 분노도 받아주어야 한다분노를 표출함으로써 얻는 안도감이야말로 마지막 시간을 편하게 보낼 수 있도록 환자를 돕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 자신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파괴적인 욕망을 직시해야만 또 우리 자신의 방어 심리가 환자를 돌보는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환자들의 분노를 감수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음과 죽어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협상 그리고 우울  (0) 2009.07.02
분노2  (0) 2009.07.02
비인간적인 죽음3  (0) 2009.07.01
비인간적인 죽음2  (0) 2009.07.01
비인간적인 죽음1  (0) 2009.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