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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죽어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비인간적인 죽음3

의사는 새로운 약이나 치료법, 새로운 기술, 새로운 연구 같은 것들은 이야기 함으로써 항상 희망의 문을 열어둔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환자와 대화를 나눈다는 것, 환자가 완전히 절망 상태가 아니라는 것, 그런 진단을 받았다고 해서 의사가 그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무슨 일이 일어나건 이 싸움에서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 환자와 가족, 의사가 함께 하리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환자들은 소외되거나 거절 당할까봐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이며, 의사의 정직함을 신뢰할 것이며,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 해주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의사의 그러한 태도는 엄청난 무력감에 시달리는 가족들에게도 큰 격려가 된다. 환자들은 의사의 말 한마디, 몸짓 하나에 크게 의존하기 마련이다. 환자들에게는 비록 의사가 자신의 생명을 연장할 수 없을 지라도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환자는 죽음을 예건하면서도 여전히 희망을 가질 수 있다. 희망이야 말로 죽을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하는 환자들까지 포함하여, 모든 환자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인터뷰를 통해 우리들은 모든 환자들이 살 수 있는 희망의 문을 열어 두었음을 알 수 있었다. 살 희망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불치병과 죽음을 대하는 우리 자신의 태도와 능력이다. 만약 죽음이 우리 삶에서 커다란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면, 죽음이 두렵고 끔직한 금기의 대상이라면, 우리는 결코 시한부 환자를 편안한 마음으로 대할 수 없다. 어느 순간 환자는 젊고 건강한 사람들에 대한 자신의 질투심을 시인했다. 환자의 눈에는 다른 사람이 모든 것을 다가진 것 처럼 보인다주위사람들을 몹시 힘들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여전히 버림받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환자는 서서히 자신의 분노의 본질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환자의 분노는 아직 젊고 못다 이룬 일들이 있는 자신에게 죽음을 선고한 신에 대한 원망에서 비룻된 것이었다.

 

악성종양이 전혀 살 가망이 없는 병이며, 이를 테면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데요" 라는 식으로 전달되면 그 순간부터 환자와 가족들의 힘든 시간은 시작된다. 환자는 점점 더 외로워 질 것이고, 담당 의사가 자신을 방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것이고, 점점 더 희망을 잃어 갈 것이다. 환자의 상태는 악화되고, 절망도 깊어져서 누군가 그에게 희망을 보여 주기전까지 결코 다시 일어서질 못할 것이다그리고 환자 가족들은 환자의 슬픔과 무력감, 좌절을 함께 느낄 것이고, 결국 환자를 편안하게 하는데 전혀 보탬이 될 수 없다. 그들은 길지 않은 시간을, 훨씬 더 풍요로운 경험을 할 수도 있는 그 시간을, 깊은 절망의 늪에 빠져 그렇게 허비해 버린다.

 

의사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환자와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분명하게 말을 했건 아니건, 환자는 언젠가 진실을 알게 된다. 자신의 주변상황을 정리할 여력이 있을 때 병의 심각한 예후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지 않은 의사에 대해 신뢰가 무너질 것이다환자들에게 끔찍한 소식을 전하는데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비록 말하는 그 순간 환자가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훗날 다시 되새겨 보게 되더라도 간단할수록 환자에게는 훨씬 받아들이기가 쉽다. 가능한 한 모든 치료를 할 것이며 그들이 결코 버려지지 않으리라는 것, 가능한 치료법이 남아있고 드문 경우이기는 하지만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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