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몸을 지닌 동물들이 남긴 흔적들과 자국들보다 더 위의 지층들에는 작은 관 모양의 화석이 들어 있다. 관들중에는 인산칼슘으로 된 것들이 많다. 해면동물의 골격을 이루는 골편인 듯하다. 관, 껍데기, 골편들은 모두 단단하다. 즉 이 시기의 동물들은 골격 물질을 분비하는 법을 이미 습득한 상태다. 그것은 우리가 캄브리아기로 넘어왔다는 뜻이다. 캄브리아기 껍데기 화석들이 처음 나타나는 시기이다. 수백만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전세계에서 껍데기의 발달이라는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이때부터 5억4천만 년동안 아주 많은 화석들이 나타난다. 껍데기는 단단한 광물질이라서 보존이 잘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관 모양의 화석들이 처음 나타난 뒤 곧바로 캄브리아기초에 엄청난 다양한 변화가 일어났다. 관모양의 화석들은 클로우디나라고 한다. 방산충 같은 일부 단세포 동물들과 해면동물은 현재 그러하듯이 규산염을 이용하여 골격을 만들었다. 해면동물의 몸속에는 바닷물이 드나드는 방들이 있으며, 거기에서 먹이 입자들을 걸러 먹는다. 그 방의 벽은 채찍 같은 편모를 가진 세포들로 이루어져 있다. 편모들은 물이 방으로 들어오도록 유도한다. 이 세포 하나하나는 독립생활을 하는 원생생물종과 아주 비슷하며, 해면동물은 그런 세포들이 다소 느슨하게 결합한 연합체 성격이 짙다. 즉 일종의 원시조직을 형성한 것이다. 일부 해면동물들은 조각조각 잘라놓으면 스스로 재결합한다. 그들은 오늘까지 살아있다.
완족류는 두 개의 껍데기 사이에 있는 동물이다. 완족류는 바닷물에서 작은 유기입자를 걸러먹는다. 가장 눈에 많이 띄는 화석이 삼엽충이다. 삼엽충은 관절 다리를 지닌 절지동물이다. 거미, 파리, 벼룩, 게, 진드기, 딱정벌레 등 사실상 기어다니거나 놀라게 하는 것은 거의 다 절지동물이다. 그들은 잘 발달된 신경계 일종의 뇌, 눈, 다리, 아가미, 더듬이를 지니고 있으며 사냥하는 것도 있다. 삼엽충이라는 이름처럼 이들의 딱딱한 탄산칼슘 등딱지는 몸을 세로로 셋으로 나누고 있다. 소화관과 뇌가 들어 있는 가운데 축 부분이 있고, 그 양쪽으로 납작한 부분들이 있다. 생물은 에디아카라와 선캄브리아대의 세계를 뒤로하고, 생명의 역사상 되돌아갈수 없는 또 하나의 문턱을 넘었던 것이다. 세포들은 먹이사슬을 형성했고 탐식이 시작되었으며, 그 뒤로 식욕이 결코 사라진 적이 없다. 테니슨의 유명한 구절 “ 이빨과 발톱을 붉게 물들인 자연 ” 이라는 말을 맨 처음 적용할 수 있었던 시점은 역사적으로 포유류의 시대도, 공룡의 시대도 아닌 바로 이 시기였다. 아마 그 최초의 포식은 협력이 실패한 결과 였을지 모른다. 세균과 조류의 평화로운 공존과 수동적인 광합성의 시대는 지구에서 영영 가고 그 뒤로 힘들의 계층구조가 자리를 잡았다.
예전에는 캄브리아기에 절지동물은 거의 삼엽충 밖에 없다고 보았다. 그곳의 검은 셰일들은 마치 절지동물들을 늘어놓은 생선가게 진열대 같다. 큰 것, 작은 것, 눈이 있는 것, 없는 것, 발톱이 있는 것, 다리에 가시가 난 것 등 26 종류쯤 있다. 그중 진정한 등딱지가 없고 깃털이 달린 듯한 우아한 동물인 마렐라가 가장 흔했다. 아노말로카리스는 가시가 숭숭난 커다란 두 개의 앞발과 입 가장자리를 작은 판들이 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바닷가재만 한 큰 포식자였다. 할루키게니아는 뾰족한 가시들로 버티고 서 있고, 위쪽으로는 꿈틀거리는 창자들이 튀어나온 것처럼 보인다. 동물들을 나누는 가장 큰 범주는 문門이다. 연체동물은 문이며 절지동물도 문이다. 자포동물, 완족동물 등도 각각 별도의 문이다. 이 문門들은 거의 모두 캄브리아기 초나 그 직후에 갑자기 극적으로 출현한다. 바다 밑에서 돌아다니던 기묘한 생물들의 사라진 세계라는 개념은 왠지 낭만적으로 들린다. 일부는 아마도 아주 운좋게 살아남아서 수억년동안 자손을 퍼뜨렸을 것이다.
캄브리아기초에 진화적 폭발이 일어나 이후로도 유례가 없을 다양성이 펼쳐졌음을 나타내다. 그 이후의 역사는 이 많았던 체형들이 점점 적어지는 과정이었으며, 소수만이 남아 진화하여 현재의 세계를 차지했다. 역사를 재현한다면, 우연한 사건들을 통해서 전혀 다른 동물들이 제거되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생물 세계가 펼쳐져 있을 것이다. 생명은 정해진 길로 나아온 것이 아니었다. 동물의 초기 진화과정에서는 우리 눈에 아주 기이하게 보이는 동물들이 등장하여 번성하곤 했다. 생명의 역사가 어떻게 풍성해졌는지 이해하려면, 이 동물들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야 한다. 만약에 정말로 이 동물들중에서 이것이 아니라 저것이 살아남았다면, 그 뒤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 분명하다. 초기의 가지 하나가 다르게 뻗었다면 다른 나무가 되었을 것이고, 궁극적으로 다른 숲이 생겼을 것이다. 중요한 기로에 섰을 때 운이 방향을 좌우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운이 달라졌다면, 전혀 다른 결과가 빚어졌을거라는 것도 확실하다. 생명의 역사는 거의 논리의 진행처럼 종들이 차례차례 질서 있게 등장하는 서사적인 이야기와 누가 생존할지 여부가 오로지 우연을 통해서 결정되는 파괴적인 무질서와 격변을 헤치고 나온 종들의 이야기 사이를 오락가락 한다.
캄브리아기초에 일어난 변화가 빨랐다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동물들이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던 다양한 방식으로 형성될 수 있었던 시기였다. 아마 역사상 다른 어떤 시기보다 유전자들이 더 가변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기회, 즉 무작위적 행운이 이 동물이 아니라 저 동물에게 일어날 수도 있었지만, 아무튼 거기에는 일종의 질서도 있었다. 캄브리아기 화석들이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동물학적 기이함의 잡탕이 아니라, 동물세계가 생겨날 무렵의 상황을 이해할 열쇠이기 때문이다. 캄브리아기에 진화한 동물들은 포식자를 피하면서 짝을 짓기 위해서 최초로 다른 개체의 몸위로 기어 올라갔다. 생태계에 경쟁이 도입되었다. 거의 무사태평한 삶을 살았을 선캄브리아대에 끝없이 펼쳐져 있던 깔개 형성자들과 에디아카라 동물군과 달리 말이다. 이 변화는 한 번 일어나자 영구적인 것이 되었다. 사실 경쟁은 오늘날까지 모든 생물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얻고 쓰는 일’에 매진한다. 그리고 얻기 위해서는 다른 생물을 희생시켜야 한다.
생물의 세계가 에디아카라와 캄브리아기 사이에 변했다는 것, 그것도 대폭 변했다는 것이다. 최초의 포식자들이 나타나자 곧 먹이들은 몸을 보호할 골격을 갖추었다. 그러자 포식자들 능력이 향상되었고, 그에 따라 더 두꺼운 껍데기들을 지닌 동물들이 유리해졌다. 군비경쟁처럼 그런 식으로 경쟁은 점점 더 심해져 갔다. 하지만 화석이나 흔적을 보면 똑같은 시기에 부드러운 몸을 지닌 동물들도 번성했음을 알 수 있다. 껍데기는 몸 보호역할 외에도 다른 많은 일들을 한다. 먹이를 먹을 공간을 확보해 주고, 해저침전물 속에서도 숨을 쉬며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또 유성생식기관을 은밀하게 숨길 공간도 제공한다. 이런 기능들은 보호용 껍데기가 발명된 뒤에 나온 부산물, 우연한 덤일지 모른다. 원래 우연히 발견된 장점들은 주된 목적으로 변했고, 포도주들은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서 경쟁하면서 점점 더 맛과 향이 좋아졌다. 경쟁과 포식을 비롯한 동물들 사이의 새로운 상호작용들이 캄브리아기의 폭발적인 생물증가를 촉발시켰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보잘 것 없고, 눈의 띄지 않는 광합성 생물들 덕분에 산소 농도는 이미 큰 동물들이 호흡 할만한 임계수준에 도달 했고, 광합성 생물들은 그 이전의 기나긴 지질시대, 즉 한가로운 시대 내내 대기의 조성을 변화시켰다. 산소농도가 대기 상공에 오존층을 형성할 만큼 충분히 증가 했다. 오존층은 취약한 동물의 피부를 유해한 태양복사선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생물과 환경은 연결된 하나의 계이며, 탯줄로 연결된 것과 같다. 생물이 살던 바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대륙들이 어떻게 분포해 있었고, 바람과 물의 순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지 않고서는 생물이 역사에 나타난 돌파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생명 자체는 더 많은생물이 번성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고, 거기에서 생태계의 토대인 복잡한 상호의존성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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