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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40억년의 비밀( 리처드 포티,

생명의 역사

석회암은 퇴적암의 일종이다. 고대 바다 밑바닥에 퇴적물이 서서히 쌓여 생긴 것이다. 각 층의 위쪽은 편평한 층리면이다.  과거에 해저표면이었던 부분이다. 우리를 탄복시킨 암석층들은 고대의 사건을 기록한 책의 책장과 같다. 그 시간을 기록한 석회질 진흙은 시간이 흐를수록 단단해지다가 이윽고 암석으로 변했다. 오르도비스기(4억8천만년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을지 생각해보라. 세번의 빙하기가 있었고, 10여개의 대륙이 죽고,  그만큼 대륙이 탄생했고, 지진과 지각변동이 이어졌고,  산맥이 솟아올랐다가 침식되어 바닥에 남기도 했고, 어류와 공룡이 번성했다가 공룡은 멸망했고, 우주에서 천체들이 날아와 지구에 충돌했고, 육상세계가 변화할 때 모든 생물이 함께 변화했다. 지질시대라는 장구한 역사는  영웅과 역사가들이 밝혀낸 것들을 짜맞춘 이야기,  즉 단편적으로 밝혀진 색다른 이야기들을 하나로 이어붙은 조각보 같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나름대로의 언어로 적혀 있다. 역사 시간표에 익숙한 사람들도 지질시대 명칭을 읽다보면, 혀가 꼬이게 마련이다. 캄브리아기, 오르도비스기, 실루리아기 같은 지질시대들은 다시 점점 더 작게 세분화 되면서 역사를 점점 더 세부적으로 다룬다. 이것은 35억년이 넘는 세월을 다루는 놀라운 이야기다.

 

발견의 흥분은 돈으로 살수도, 위조할 수도, 책을 통해 배울 수도 없다. 그것은 의식을 지닌 동물인 인류가 초창기부터 지니고 있었을 감정이 분명하다. 그것은 먹이에게 몰래 다가가는데 성공했을 때의 감정과 비슷하다.  그것은 솔직하고 단순한 기쁨에 속한다.  비록 소유욕과 탐욕이라는 인간의 다른 욕구에 오염되고 말지만,  지층에 들어있는 아름다운 신종을 발견하고 나면, 손가락이 얼어붙고 있다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몰아낼 수가 있고, 긴하루가 짧다고 느껴질 정도의 감동이 솟구친다. 세계를 이해하려면 사물들을 분류할 필요가 있다. 구별과 동일화는 먹을 수 있는 것과 독성이 있는 것,  가치 있는 것과 가치없는 것, 안전한 것과 위험한 것 등 명백한 것들을 구분하는 수준을 넘어서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그것은 환경의 다양성과 그 안에서 인간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다. 세계의 다양성은 수억년에 걸친 진화, 격변들,  생태적 팽창의 산물이다. 이런 복잡성을 이해하고자 할 때, 맨처음 할 일은 구성 요소들을 구별하고 파악하는 것이다.

 

우리의 수명은 본능적인 잣대 즉 우리의 죽음과 세월의 변화를 재는 수단이다.  우리는 몇세대 사이에 이루어지는 역사적 변천을 이해할 수 있고, 조부모의 삶에 공감할 수 있고, 심지어 그때의 현안을 실감할 수도 있다. 그 기간은 지질시대로 보면 거의 한 순간  망치를 한번 휘두르고, 그 다음에 휘두르는데 걸린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  생명의 이야기는 30억 년이 넘는 장구한 드라마이다. 세계역사를 시계 문자판으로 나타낸다고 해보자.  즉 남조류는 기록상 약 2시에 일어난 반면, 무척추동물은 약 10시에 태어났고, 인류는 무도회가 끝날 무렵에 자정 약1분 전에 나타났다. 시간이라는 조각그림퍼즐은 그런 수많은 지층 단면들로부터 얻은 조각들을 이어붙인 것들이다. 시간은 한 시대씩 순서대로 쌓인다. 백악기, 쥐라기, 캄브리아기 같은 우리가 알고있는 명칭들은 각 시대가 몇 년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백악기가 지금부터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같은 것을 알기 훨씬 전에  이런 상대 시간척도를 큼직하게 나누어 붙인 꼬리표들이다. 절대시간 척도는 일정한 간격으로 짹깍거리는 불안정한 동위원소의 방사성 붕괴나  기타 수단들을 이용하여 측정한 암석의 연대를 말한다.  원래 물질의 절반이 붕괴하는데 걸린 기간을 반감기라고 한다.  반감기는 동위원소에 따라 다르며,  몇 초인 것도 있고, 수십억년인 것도 있다. 방사성 탄소연대측정법은 고고학 유물에 적합하다.  이 친숙한 원소는 반감기가 짧기 때문

이다. 반면에 우라늄 동위원소는 아주 느린 시계가 된다. 우리가 원래 있던 물질이 얼마나 많이 붕괴했는지 측정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붕괴 속도를 토대로 한 간단한 계산을 통해서 그 변화가 일어나는데 걸린 시간을 추론할 수 있다.  칼륨-아르곤 (K-Ar)이나 루비듐-스트론튬(RB-St) 등 다양한 방사성 동위원소들이 시계로 이용된다.

 

우리는 지구의 나이가 46억년이며, 인류가 1만 5천년 전에 베링해협을 건너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갔다는 것을 이런 방법으로 알아냈다. 방대한 지질시대를 뭉텅뭉텅 덩어리로 잘라 이름을 붙이는 것이 더 쉽다. 지금으로부터 1악 5천만년전 같은 숫자를 기억하기보다  쥐라기 같은 용어를 통해서 살펴보는 것이 편하다.  우리는 6,500만년 전의 사건을 열거하기보다 백악기말 절멸을 이야기 하는 쪽을 선호한다.  연대나 명칭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사건이 일어났느냐 하는 것이다.  런던 대화재나 대역병, 파라오시대나 잉카시대를 우리가 기억하는 것처럼 선사시대의 사건들도,  그 시대를 대변한다.  지질시대의 명칭들은 이야기에서 그것을 가지런히 놓는 역할만 뿐이다. 공룡시대하면 역사의 한 측면을 뚜렷이 드러낸다. 오르도비스기는 빙하기 같은 특정한 사건을 담고 있고, 화석동물들도 다르다는 점에서 쥐라기와 구별된다. 우연이 발견과 우리의 삶에 관여하기도 한다. 종잇조각에 적힌 아주 사소한 내용에 운명이 바뀌기도 한다. 해변에 깔린 조약돌 처럼 역사도 무수한 세부사항들의 연속이며, 이것을 집을지 저것을 고를지 무한한 선택이 가능하다.  판매량을 계속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기업처럼, 동물이나 식물이 점점 더 나이지려는 의지를 지닌다는 생각은 우리의 흥미를 자극한다. 그와 반대 되는 견해는  진화의 거의 모든 것을  무심한 우연의 작용 탓으로 돌리며,  우연을 통해서 생물은 전쟁터에 있는 맹인처럼 더듬거리며 나아간다고 본다.  유전적 가치나 적응의 완벽성보다는  운이 생존을 지배한다.  운명에 난타 당하고  무수한 주사위 던지기에 지배 되면서, 운이 좋은 종들은 운명의 여과지를 통과해서 살아남는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사건들은 점점 더 모호해지며,  이야기도 두리뭉술해진다.  생명의 이야기를 가장 논리적 으로 전개하려면,  현재에서 출발하여 되짚어 가면서 올라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난 수천년 동안의 일들을 상당히 많이 알고 있으며, 방사성 탄소연대측정법과 수목연대학 덕분으로 당시 사건들의 연대를 정확히 알수 있다. 하지만 약100만년전인 플라이스토세 까지 올라가면 수천 년 정도 오차가 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사건들의 연대를 측정할 수 밖에 없다.  다시 더 올라가서 공룡시대 즉 ,  1억2천만년 전으로 가면 오차 범위는 수만 년 또는 수십만 년 단위로 커질 것이다.  그리고 삼엽충 시대 즉 4억년 전 으로 돌아가면,  사건들의 연대를 추정할 때 오차 범위를 아무리 적게 잡아도 최소한 50만 년은 가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생명의 역사는 거기서 더 멀리 훨씬 더 멀리까지35억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과거는 끊임없이 침식되고 가장 먼 과거의 화석기록은 오직 작은 기적들이 계속 이어졌을때 살아남는다. 흔한 화석들이 가장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  제1차 세계대전때 솜 전투에서 몇몇 정규 병사들이  상처하나 입지 않았던 것은  실력보다  운 때문 이었을 것이다.

 

우주의 초기역사 특히 처음 몇초간은 천문학자와 이론물리학자의 영역이며, 그들이 역사를 기술할 때 쓰는 언어는 복잡한 수학 방정식이다. 대폭발, 빅뱅은 시간과 물질을 대규모로 분출한 창조의 공장이었다. 그 공장에서는 그 뒤로 결코 일어나지 않을 듯한 일련의 핵반응들이 진행됨으로써,  가벼운 원소들로부터 무거운 원소가 만들어 졌다. 우주는 거의 130억년전에 말 그대로 자체적으로 만들어졌다. 물질들은 우리가 아직 어렴풋이 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과정을 통해서 폭발적으로 퍼져나가서 수많은 은하를 형성했다. 각 은하에서는 수백만 개의 별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은하들 중 하나인 은하수의 구석에서 성간먼지와 기체들로 이루어진 구름들이 중력에 끌려 뭉쳐지면서 태양이 탄생했다. 태양과 비슷한 별은 무수히 많다. 물질들이 모이자 열핵반응이 시작 되기에 적합한 조건이 되었다.  그 화로는 지금도 태양의 한가운데에서 타오르면서 열기를 내품고 있다. 그것은 생명을 부양시키는 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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